한 그릇에 모인 ‘베스트 일레븐’ 끝까지 불꽃튀는 매운맛 드리블 [웃기는 짬뽕]
교동짬뽕, 얼큰·일반 중 하나 선택 가능
장시간 숙성 ‘면’ 국물 속 흐트러짐 없어
태양초 고춧가루·해산물 등 재료 드림팀
결식아동엔 식사값 받지 않는 ‘따뜻함’



식탁이 높은 건지 의자가 낮은 건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음식 상이 다소 높게 느껴진다. 그래서 앉자마자 살짝 가라앉은 듯한 괴리감이 온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머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릴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젓가락으로 음식을 뜨는 순간부터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시간이 단축된다. 가깝게 빨리 먹을 수 있다.
짬뽕 국물이 튀는 반경도 줄어든다. 앞치마를 해도 그 틈으로 짬뽕 국물이 튀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얼굴을 최대한 음식과 가깝게 가져가야 하는데 이 부분이 구조적으로 보완된 셈이다. 생각을 바꾸니 장점이 보인다. 긍정의 힘이 이렇게 무섭다.
의자와 탁자 사이의 공간이 넓다 보니 자연스레 발을 들어올리게 된다. 신발을 벗고 가부좌를 튼 채 체내 모든 신경세포를 오롯이 짬뽕에만 집중하니 짬뽕 맛이 배가 된다. 역시 모든 일에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 집은 교동짬뽕만 취급한다. 얼큰한 맛과 일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여태 맵부심 하나로 버텨왔건만 점점 매운 음식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 짜장과 짬뽕 간 선택보다 매운 맛이냐 아니냐를 두고 훨씬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장고 끝에 얼큰한 맛을 주문했다. 먹는 중에 혼잣말로 ‘하나도 안 맵구만. 아직 살아있네’를 되뇌는 순간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땀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장고의 끝은 결국 악수다. 매운 음식을 못 드시는 아버지도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고 늘상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 확실히 매운맛 면역이 떨어지나보다. 인생의 매운맛이 더해져셔일까.

이곳의 짬뽕은 교동짬뽕의 정석이다. 과하게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한 걸쭉함을 뽐낸다. 국물에서부터 교동짬뽕 특유의 약간 고릿한 향이 느껴지는데 이게 또 반갑다.
입 안 가득 묵직하게 치고 들어오는 교동짬뽕의 전형적인 맛이다. 잘게 썬 돼지고기와 목이·표고버섯, 오징어·홍합·가리비 등의 해산물이 뒤섞여 있고 양파·배추·청경채 등과 함께 생부추와 다진 고추까지 올라가 있다. 아무렇지 않게 국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참깨도 고소한 풍미를 더해주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참깨 덩치가 작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치아 사이에 끼면 은근히 골치 아프다.
이곳에선 면을 장시간 숙성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교동짬뽕의 억센 국물 속에서도 면발이 흐트러짐 없이 쫄깃함을 유지한다. 여기에 국내산 태양초 고춧가루만 사용해 걸쭉하면서도 텁텁하지 않고 뒷맛이 깔끔하다. ‘한 번 드시면 100년을 잊지 못할 맛으로 모시겠다’는 주인장의 철학이 짬뽕 한 그릇에 고스란히 담겼다.

국물은 음식의 일부다. 다시 말해 남기는 건 옳지 않다는 말이다. 극장에서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뜨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뜨는 이들 때문에 마지막 여운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엔딩크레딧 또한 영화의 일부다. 영화도 끝까지, 짬뽕도 끝까지. 그릇 밑바닥 마지막 남은 국물 한 방울은 주인장이 거센 불길 앞에서 흘린 땀 한 방울과 다름없다. 그래서 ‘완뽕’은 기본, 웬만해선 음식은 남기지 않는다. 살찌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
매장 내에 재미난 액자 하나가 눈에 띈다. 짜증날 땐 짜장면, 우울할 땐 울면, 복잡할 땐 볶음밥, 고단할 땐 고량주 등 중식계 세기의 명언이 적혀 있다. 그런데 마땅한 문구가 없었는지 짬뽕은 없다. ‘짬이날 땐 짬뽕’을 추가해보면 어떨까.


이곳은 지역 내 결식아동을 대상으로 식사값을 받지 않는다. 동네 이모·삼촌이 밥 한끼 차려준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와서 먹고 가라는 주인장의 배려다. 이런 음식점은 시쳇말로 ‘돈쭐’을 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을 향한 안내문에 적혀 있던 ‘오늘도 크느라 수고했어’라는 글귀가 계속 맴돈다.

/황성규 기자 homer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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