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지향’ 차별금지는 사회대개혁 기준선 [.txt]
내란 몸통인 극우 개신교 세력 압력에
‘혐오표현 금지법안’ 다시 후퇴한 국회
광장을 지킨 무지개 깃발을 기억해야

“내란 세력의 패배는 확정적이다.”
21대 대선의 기호 5번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나에게 온 모든 마이크 앞에서 나는 이렇게 반복했다. 과연 그랬다. 21대 대선에서 사실상 내란 수괴 윤석열의 대변인으로 전락한 김문수 후보를 앞세운 국민의힘은 패배했고 ‘국민주권정부’를 자임한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6월4일 취임 선서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조기 대선의 계기가 된 내란에 대하여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확고히 마련하겠다”고 확언했다. “빛의 광장에 모인 사회 대개혁 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불과 이틀 후에 벌어진 일은 이 말들이 또다시 공허한 말잔치에 그칠지 모른다는 불안을 고조시킨다. 대선 투표일을 며칠 앞둔 5월30일, 더불어민주당 조인철 국회의원 외 11명이 일명 ‘혐오표현 금지 법안’으로 불리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음란 정보나 범죄 교사, 방조, 명예훼손 등을 불법 정보로 규정해 유통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망법에 내란 선동과 혐오표현을 포함해 금지하겠다는 합리적인 법안이다. 이렇게 금지하려는 표현에는 인종·국가·민족·지역·나이·장애·성별·종교·직업 등에 더해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이나 폭력이 포함되어 있다. 언론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도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이 법안에는 극우 개신교 세력의 익숙한 조직적 반대가 따라붙었다. 국회 입법예고 홈페이지에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6월5일까지 달린 의견 1만7천여건 중 1만여건이 ‘사실상의 차별금지법’ ‘교회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라는 식의 반대 의견이었다. 찬성 의견도 5천여건으로 적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풍경이다. 놀라운 것은 이토록 지루할 정도로 익숙한 조직적 반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3일 만에 조인철 의원이 법안을 철회하고 해당 법안에서 ‘성적 지향’이라는 문구를 빼서 재발의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덜 되었고 개신교의 반대도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가 언론에 밝힌 법안 철회와 ‘성적 지향’ 문구 삭제의 이유다.

이것은 또 한번의 ‘나중에’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안일하고 위험천만한 대응이다. 윤석열 내란 세력의 몸통이 누구인가? 전광훈을 위시해 ‘반동성애’ 기치 아래 똘똘 뭉쳐 제도권 정치를 겁박하며 ‘거룩한 방파제’를 운운하며 세력을 키워온 극우 개신교 세력이다. 19대 국회에서 무려 51명의 국회의원이 공동발의했던 차별금지법이 이들의 반대를 못 이겨 철회된 후 이들은 승리에 도취하여 포괄적 차별금지법뿐만 아니라 ‘차별금지’ ‘성적 지향’ 등이 들어간 모든 종류의 법안들에 ‘~판 차별금지법’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반대 공작을 성공적으로 이어왔다. 양당 중심의 국회는 번번이 이러한 공격에 굴복했고 이들의 효능감은 극대화되었다.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할 최고 기구인 국회가 합리적 논리와 근거에 의한 법안 심사를 회피하니, 검증되지 않은 가짜 정보에 의한 왜곡과 선동은 날로 심해졌다. 더욱 심해진 선동 앞에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도 더 크게 몸을 사렸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윤석열의 파면과 이어진 6·3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를 통해 내란 세력은 심판되었다. 그러나 그 몸통이 된 세력은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반동성애’를 앞세워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에 맞서 12·3 계엄부터 윤석열 파면까지 123일간 광장을 지킨 이들의 요구는 분명하다. 내란 종식과 사회대개혁을 위해 다양성을 존중하고 약자의 평등을 보장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것이다.
12·3 계엄 이후 광장에 얼굴을 드러낸 수많은 시민이 누구인지 연구한 현장파 연구자 4인의 공저 ‘광장 이후’에서 이재정 윤석열퇴진을위해행동하는청년들(윤퇴청) 대표 겸 비상행동 공동대표는 광장의 청년들이 가장 강력히 요구한 1순위는 ‘사회대개혁을 위한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윤퇴청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청년들이 바라는 한국 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약자’의 ‘평등’을 보장하는 동시에, ‘차별금지법’ ‘동성혼 법제화’ ‘생활동반자법’ 등 실질적으로 차별을 해소”하는 사회다.
차별금지법은 단순히 차별의 피해자인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모든 시민의 인권을 증진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인권기본법이다. 이는 그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인권위원회가 법무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직접 만든 초안과 함께 권고하며 낸 보도자료에 적혀 있는 말이다. 노무현 정부의 법무부는 당시 교계와 재계의 반대를 이유로 인권위 초안에서 ‘성적 지향’을 포함한 7개 차별금지 사유를 삭제한 안을 추진하다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차별조장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당시 빠진 차별 사유를 온전히 채워 넣어 다시 법안을 대표발의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고 노회찬 의원이었다. 만일 당시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면 우리 사회는 윤석열이 12·3 내란을 애초에 꿈조차 꿀 수 없는 인권존중의 민주사회가 되었을지 모른다.
분명히 하자. 또다시 ‘반동성애’를 이유로 시민의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는 법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굴복하는 것은 내란 세력에 또다시 제도권 정치를 파고들 틈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더구나 놀랍게도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은 이미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래도 교회는 망하지 않았다. 나라도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적 지향’이라는 글자를 대한민국 법률에 집어넣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는 극우 세력이 나라를 망하게 만들 뻔했다.
최고의 내란 재발방지책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차별을 확고히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이다. 12·3 불법 계엄 이후 123일간 내란 극복과 사회대개혁의 광장을 맨 앞줄에서 굳건히 지키던 무지개 깃발을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정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깃발을 쥔 성소수자의 주권은 다른 모든 주권자의 주권과 동등한 주권이다.
장혜영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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