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 빨-파로 갈린 나라… 통합에 ‘직방’은 있다
“(나라가) 빨강, 파랑으로 나뉘었다. 통합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6·3 대선 결과를 놓고 말했다고 한다. 전국 250개 시군구 1위 득표 결과를 지도로 보면 나라가 둘로 쪼개진 느낌이긴 하다. 영남과 강원, 충남 일부는 국민의힘의 빨강색이고, 나라의 서쪽은 더불어민주당의 빛깔로 온통 파랗다.

최근 한국행정연구원의 2013~2024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꼽힌 것이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었다. 대선 지지 후보별로 갈라진 나라 색깔도 이를 반영한다. 대선 전 TV토론에서 이 대통령은 사회통합의 해법을 말했다. 근본적 해결책은 ‘성장’으로 양극화를 해소해야 하지만 단기적 방안으론 내란 극복, 엄격한 심판이 가장 중요하다고.
● 내란 특검으로 통합이 가능할까
승자의 해법에 따라 내란 특검은 곧 시작될 것이다. 그 결과 나라가 통합되길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적폐청산이 계속될 경우, 더 큰 분열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인사다. 이유는 간단하다. 특검이나 정책, 제도는 국민이 효과를 체감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반면 인사는 즉각 국민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파장도 무지 길다. 잘못된 인사는 새 대통령의 첫 출발을 ‘실패’로 낙인찍고 지지율을 끌어내려 국정동력까지 잡아먹는다.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 때도 취임 첫 직무평가에서 부정평가 이유 1위가 인사 문제였다. 윤석열 때만 인사가 2등이다. ‘대통령실 이전’이 근 한 달 간 부동의 1등을 차지했기 때문이다(인사를 잘해서가 아니라…).
● 인사가 직방…민정수석 사퇴, 잘한 일!
오광수 민정수석의 자진 사퇴는 늦었지만 잘한 일이었다. 3년 전 ‘인사 청문회에서 불거진 문제 중 가장 용납할 수 없는 것’을 물은 갤럽 조사에서 첫째가 탈세·재산증식 문제(52%)다. 부동산(35%)과 입시·취업문제(32%)가 그 다음이었고 전관예우(21%) 표절(20%) 병역문제(15%)도 못 참겠다고 했다(2개까지 중복 응답).

경로의존성은 역사에만 있지 않다. 인사에도 존재한다. 윤석열 때 검찰, 문재인 때 운동권 편향 인사가 심각했던 건 ‘우리 편 문제’는 문제도 아니라는 진영논리 때문이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대통령들은 민심과 상관 없이 자기 판단을 고집했고, 간신들은 그걸 또 결사 옹호했다. 이번 참에 이 대통령은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오광수 문제 없다”던 간신들을 멀리 해야 이 정부가 성공한다.
● 민심 깎아먹는 영남 패권주의 인사
측근 중심 대통령실은 과거 정권보다 강력해졌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고 대통령실이 재정전략도 주도한다지만 조직도만 봐도 내각은 필요 없을 만큼 거창하기 짝이 없다. 문재인 ‘청와대 정부’를 능가하는, 선출된 행정 권력에 의한 권력의 초집중화(executive aggrandizement)다.
헌법기관도 아닌 대통령실이 국정의 중추역할을 할 작정이라면, 장관들 출신지역 안배라도 확실히 해주기 바란다. 우리 국민이 유난히 민감한 대목이 지역문제다. 특히 영남 패권주의는 민주당 집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이 호남 기반이라지만 이 대통령 역시 TK(대구경북)다. 능력 위주 인사를 한다지만 ‘제 눈에 능력’이기 십상이다. 빨강 나라 통합이 중요해도 TK 편중인사는 막강 대통령실만큼이나 지나칠 수 있다.
● 적폐청산의 조선…류성룡 시대만 빼고
우리를 설명하는 단 한마디 키워드는 ‘지나치다’는 것이다-연세대 송복 명예교수가 최근 저서 ‘중용(中庸)의 길’ 서문에 쓴 이 말이 가슴을 친다. 임진왜란 뒤 ‘징비록’을 쓴 서애 류성룡(1542~1607년)의 리더십을 연구한 책에서 송복은 “조선조 500년만큼 정치가 없고 정치를 할 줄 모르던 시대나 사회는 다른 어느 사회, 어느 세계사에서도 찾기 어렵다”고 했다.
정치란 정치인끼리, 또는 그가 속한 당파나 정당끼리 ‘경쟁’하는 것이어야 한다. 조선은 달랐다. 경쟁은 없고 대결만 있었다. 상대를 맞수로 보느냐, 적(敵)으로 보느냐가 경쟁과 대결의 차이다. 맞수는 져도 다음에 또 겨룰 수 있지만 적은 한번 패하면 죽음이다. 백성은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조선은 내 편 아니면 모두를 적으로 몰아붙이는 적폐청산으로 인재를 잡아먹다 끝내 망해버렸다. 근대와 전근대를 구분하는 한 기준을 경쟁이냐 대결이냐로 보면, 우리는 아직 전근대 속에 살고 있는 꼴이다.

● ‘중용의 정치’ 류성룡도 TK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송복은 ‘중용’에서 찾는다. 성균관 학생 시절부터 류성룡은 극단의 태도와 언어를 피할 줄 알았다. 원칙을 고집하기보다 ‘방법’을 찾되, 상대와 상황에 따라 고침을 허락할 만큼 실용적이고 유연했다. 오만한 명나라 장군들도 류성룡 앞에선 순했을 정도다. 그가 쓴 ‘징비록’의 징(懲)은 과거에 매달리거나 아집에 빠지지 않는 것이고, 징비의 비(毖)는 나아가는 추세를 보는 것이다.

연기(演技)라도 좋다. “권력은 잔인하게 쓰는 것”이라던 ‘사이다 이재명’도 성심성의껏 중용을 연기한다면, 통합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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