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다시 쓰는 목재…늘어난 못 구멍만큼 확장하는 ‘이다음’의 가능성[수리하는 생활]
프리랜서에게 집은 곧 사무실이자 창고이자 휴게실이어서, 각각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함께 사는 친구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기에 그에게는 책상뿐 아니라 각종 미술 재료와 종이, 스케치북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다. 한편, 나는 수리에 쓰는 공구와 자재를 쌓아두고 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반드시 창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집이 좁고 방이 두 개뿐이라면 어떡할까? 고민 끝에 침대를 공중으로 올리고 아래에 수납공간이 있는 벙커 침대를 만들었다. 덕분에 안방에는 56칸짜리 창고가 생겼고, 다른 방 침대 밑에는 사계절 옷을 보관하는 옷장이 놓였다. 그중 한 칸은 회전하는 옷장으로 만들어서 자주 입는 옷을 한눈에 보고 고를 수 있다.
이전 집에도 벙커가 있었지만, 사정상 2년 만에 해체하고 이사해야 했다. 이는 노동의 낭비일 뿐 아니라 자원의 낭비이기도 해서 목재를 새로 구매하지 않고 기존 벙커의 목재를 재사용했다. 이전 집과 구조가 달라졌기에 목재를 재배치하고 재단하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덕분에 목재를 알뜰히 재사용할 수 있었다.
내가 만든 가구들은 못 구멍이 전부 드러나 있다. 이 가구들은 전동 드라이버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체와 재조립을 할 수 있다. 옛 작업실에서 책을 전시하던 전면책장은 이 집에 와서 벙커에 오르는 사다리로 다시 만들었다. 구조가 비슷해 따로 재단할 필요가 없었지만, 못 구멍이 두 배로 늘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사다리는 아름답지 않지만, 나를 침대 위로 데려다주며, 과거에 책장이었다는 사연까지 품고 있다. 나는 이것을 수리 행사에 가져가 시계를 전시하는 데 쓰기도 했다. 한때 키 큰 나무였던 존재가 ‘목재’로 가공돼 내게 왔으니, 나에게는 그 존재의 쓸모에 최선을 다할 책임이 있다.
이사하면서 망가진 옷장도 틈새 가구를 만드는 데 요긴하게 쓴다. 원목도 아니고, 파티클보드*를 재사용한다고 하면, 목공을 하는 사람 열의 아홉은 고개를 저을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아까워서 버리지 않는다. 필름 속에 압축된 목재의 부산물들, 그도 과거에 무수한 나무의 일부였지 않은가. 망가진 옷장의 판재를 톱으로 자르고, 밥솥 거치대로 다시 만들었다. 넣고 빼기 쉽게 언더레일을 설치하고 옷장 손잡이를 달아주니, 손잡이를 당겨 밥솥을 꺼낼 때마다 옛날 옷장을 여는 것 같아 재미있다. 옷장이 망가졌을 때는 속이 상했는데, 지금은 분해되고 재조립된 옷장의 부분들이 집 안 곳곳에 있어 반가울 때가 많다.
무언가를 만든다고 해서 무조건 ‘생산적’인 것은 아니다. 매번 새로운 자재를 사용하고, 쓰던 것을 버린다면 생산이라는 명목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일이다. 그러니 ‘만드는 사람’은 지속 가능한 만들기를 위해 자재를 다시 쓰는 방법을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 목재도 마찬가지다. 어수선하게 드러난 못을 매만지며 그들이 지닌 ‘이다음’의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상상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들은 언제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파티클보드(particle board·PB) : 목재 부산물을 분쇄 후 접착제와 함께 압착해 만든 가공재. MDF보다 가볍고 소리와 충격을 흡수하는 장점이 있다.
■모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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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
모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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