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뮤지컬 토니상…'아싸'들의 고생과 열정이 토양"

유주현 2025. 6. 1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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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대학로 초연 때부터 입소문이 자자했다.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AI 헬퍼봇들이 사랑을 배워간다는 판타지가 메마른 인간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각성시켰는데, 창작 초연답지 않게 만듦새가 빼어났다. 박천휴와 윌 애런슨 콤비가 만든 텍스트 자체도 아름답지만, 좋은 텍스트를 무대로 잘 옮긴 김동연 연출의 힘도 컸다. 2015년 트라이아웃 공연부터 줄곧 함께한 초연 연출가 김동연은 2018년 한국뮤지컬어워즈 연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동연은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등을 만든 블루칩 연출가로, ‘윌휴 콤비’와 또 다른 창작뮤지컬 ‘일 테노레’도 만드는 등 인연이 깊다. 지금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뮤지컬단 ‘더 퍼스트 그레잇 쇼’를 공연 중인데, 마침 ‘더 퍼스트 그레잇 쇼’의 줄거리가 한국 최초 창작뮤지컬 제작기다. 1960년대 국가의 명령으로 오합지졸들이 모여 “무조건 해피엔딩”을 외쳤던 뮤지컬 1세대들의 좌충우돌이 오늘의 K뮤지컬을 있게 한 토양이 됐다.

Q : ‘어쩌면’이 토니상을 휩쓴 특별함이 뭘까.
A : “대본과 음악을 듣기 전에 줄거리만 듣고 참여를 결정했을 정도로 소재가 좋다. 익숙한 듯 새로운 듯 되게 재밌겠다 싶은데다 사랑, 기억, 인간성 같은 보편적인 정서와 주제를 담을 수 있는 소재였다. 음악도 너무 좋다. 오리지널 뮤지컬답게 스토리와 음악을 함께 만들었구나 생각이 드는, 굉장히 귀한 작품이다.”

Q : ‘윌휴 콤비’의 협업 방식에 성공 비결이 있을 것 같다.
A : “스스로 ‘동업자정신’이라고 말하는 파트너십이 굉장히 좋다. 의견 충돌도 있지만, 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둘 다 미친 듯이 몰입하고 집중해서 굉장한 시너지를 낸다. 윌은 엄청 똑똑한 유태인 엘리트로 한국어도 수준급이고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한다. 휴는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다 뮤지컬을 시작한 거라 글 뿐 아니라 시각적 상상력까지 예민한 친구다. 스토리는 같이 만들고 가사는 휴가 쓰는데,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가사가 윌의 음악을 잘 이끌어낸다. 윌이 한국 문화를 이해하듯 휴는 미국에 살면서 미국 문화를 터전으로 활동하니 둘의 협업이 잘 융화하는 것 같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시그니처는 배우가 로봇과 인간 사이 어딘가를 연기하는 고유한 메소드다. 개발 당시만 해도 AI로봇 연기가 생소했던 시절, 송희진 안무가와 초연배우 전미도·김재범·정문성 등이 캐릭터 구축에 큰 공을 세웠다. “로봇인데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 톤앤매너는 안무가와 배우들이 많이 대화하면서 움직임을 찾아냈다. 개그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이면 안되니까. 비주얼적인 부분은 미래면서 낡았다는 컨셉트로 접근했는데, SF영화의 디스토피아적인 게 아니라 따뜻한 LP같은 낡음을 찾아내야 했다.”

Q : 창작뮤지컬이 브로드웨이를 점령한 시점에 ‘더 퍼스트 그레잇 쇼’ 제작이 절묘했다.
A : “서울시뮤지컬단의 전신인 예그린악단이 국가주도 사업으로 뭔가 대단한 공연을 만들어야 했던 건 사실이다. 1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건이 굉장히 열악했다. 핀마이크를 써야 하는데 기술도 예산도 부족했다. 라이선스도 없이 외국작품을 흉내내던 시절도 있었다. 그들은 아웃사이더였다. 성악가는 오페라를, 배우는 연극을, 무용수는 무용을 하는 게 정석이니, 순수예술하는 사람들은 제자가 뮤지컬 하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춤추고 연기하고 노래하는 걸 사랑한 사람들이 예술적 인정도 못 받고 대중들이 생소해 하는 시절을 견뎌낸 거다. 그들의 고생과 열정이 토양이 돼서 지금이 있다는 이야기다.”

Q : 한국에 유독 창작뮤지컬이 많은데.
A : “시장이 굉장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 ‘김종욱 찾기’ ‘빨래’등의 작품이 대학로에서 소극장 연극을 대체하며 시장이 형성됐고, 마니아들이 생기니 실력 있는 배우들이 활동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런 환경이 흔치 않은데, 지원사업의 역할이 크다. 아르코 창작산실과 우란문화재단, CJ 등의 지원사업에서 매년 쏟아져 나온다.”
‘어쩌면 해피엔딩’도 SK계열 우란문화재단에서 개발됐다. 창작 워크숍부터 트라이아웃, 뉴욕 리딩공연까지 우란이 제작비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Q : 초연 프로덕션의 지분(?)도 있지 않나.
A : “미국 프로덕션은 대본과 음악을 그쪽 제작진과 같이 많이 수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란에서 개발한 작품이고, 지원사업의 역할은 소중하다. 창작자들이 기대어 작품을 개발해볼 수 있을 만한 어딘가가 있다는 것부터 큰 기여라고 본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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