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좁은 길에서 운전하듯 한 쪽으로 안 쏠리게 조심해야

2025. 6. 1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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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변호사의 ‘죄와 벌’] 유무죄 공방 이끄는 사람들
조폭 출신 무법(無法)변호사가 주먹 대신 법으로 악을 응징하는 변호사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무법 변호사’ 한 장면. [중앙포토]
변호사로서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법정이다. 나는 소수의 사건만 수임하는 입장인데도 일주일에 보통 두세 번은 간다. 성당·묘지·군함, 셰프의 부엌 등 특별한 공간이 참 많지만, 법정이라는 곳도 어느 장소 못지않게 아주 독특한 기능과 분위기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큰 법정도 있지만 대부분의 법정은 테니스장 한 면보다 좁다(테니스장 한 면은 261㎡이지만, 합의부가 재판하는 중형 법정은 100~150㎡이고, 단독판사가 재판하는 소형 법정은 50~80㎡이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당사자들이 만나서 일종의 다툼을 벌이면서도 이토록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짓누르는 공간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판사는 피고인 도덕성까지 판단
양측이 대결을 펼치는 ‘코트(court)’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테니스 코트와 비교해 보면 법정의 성격이 더 명확해진다. 경기를 치르는 페더러와 조코비치는 오로지 상대를 이기는 데 집중할 뿐, 심판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중도 두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뿐, 심판에는 별 관심이 없다. 테니스 코트의 심판도 높은 곳에 올라가 있지만 그 높이는 공이 선을 넘어가는지를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일 뿐, 그 권위가 선수들보다 높아서는 아니다. 심판은 공이 선을 넘었는지가 모호한 경우에만 개입한다. 그러나 형사법정에서 판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테니스 심판이 조코비치와 페더러의 실력이나 자질을 평가하지는 않지만 판사는 피고인의 법 위반 여부 외에도 도덕적 자질까지 판단한다. 그래서 당사자들은 재판 중에 서로를 보기보다는 판사를 쳐다보면서 말한다. 재판을 공개하고 모든 법정에 방청석을 30% 이상 확보한 것도 재판의 공정성을 국민이 감시하라는 취지이지 테니스 경기처럼 한쪽 편을 응원하라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가 된 지금은 판사였을 때와 법정에 들어가는 방식부터 달라졌다. 판사일 때는 재판 시작 시각을 정확히 맞추어서 옷장으로 가서 법복을 입고 법원 내부 복도를 통해서 법관 전용문으로 들어갔고, 법정 경위의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라는 구령에 따라 모든 사람이 서 있는 가운데 법대 위로 걸어 올라가서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변호사인 지금은 항상 충분히 이른 시간에 법정 앞에 도착한다. 법정 문밖 전자 전광판을 보며 기다리다가 경위가 문밖으로 나와서 출석을 확인하면 일반인들 출입구로 들어가서 방청석에서 대기한다. 마침내 재판장이 내 사건 번호를 부르면 방청석에서 보기에는 오른쪽에 있는 변호인석으로 나가서 선다. 나의 왼쪽 바로 옆자리에는 내 의뢰인이자 피고인이 앉는다.

피고인석 바로 옆에 변호인석이 있다는 공간적 배치는 내 입장이 판사 때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검사와 피고인 가운데 앉는 판사일 때는 누구의 편도 들면 안 되었지만, 지금은 피고인 편을 들기로 작정한 셈이다. 판사의 고충은 좁은 길 위에서 차를 몰며 좌우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신경 쓰며 운전하듯이, 어느 한쪽 편으로 쏠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애쓰는 데서 비롯된다. 반면 변호사의 고충은 편들고 싶은 쟁점에 대해서도, 편들고 싶지 않은 쟁점에 대해서도 무조건 피고인의 편을 들어야 하는 데서 비롯된다. 판사는 어느 한쪽 편으로 쏠려 있지 않은 지위에서 신뢰가 생기지만, 변호사는 무조건 한쪽 편을 들어야 하는 지위에서 마치 어느 한쪽 진영에 속한 정치평론가처럼 불신을 받기도 한다.

재판장이 사건번호를 부른 다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변호인의 출석을 확인하겠습니다”이다. 그러면 내가 “정재민 변호사 출석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로서는 판사의 얼굴을 보고 첫 말을 주고받는 중요한 만남의 순간이다. ‘재판장의 첫인상이 좋은 것 같다’고 기대하는 의뢰인들도 많은데, 내면은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경직된 경우도 많으므로 첫인상에 너무 큰 기대를 가지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변호인’은 형사소송에서만 쓰는 말이다. 민사재판에서는 변호사가 ‘원고 대리인’ ‘피고 대리인’이라 불린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유명한 연설가에게 변론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변론을 하고 돈을 받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로마 시대에 들어와서는 유상 변론이 허용되었고 동로마제국 때부터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변호를 할 수 있도록 해서 변호사 제도가 시작되게 되었다.

변호인이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검사의 공격에 대해 ‘방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장 재판을 할 때 변호인은 흔히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서 영장을 기각해달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변호인석에 설 때면 때로 투수가 되어 마운드에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투수는 방어의 핵심이다. 투수는 타자의 성향에 따라 적절히 직구나 변화구 체인지업을 골라서 던진다. 형사재판에서 입증책임 원칙이 검사보다 피고인에게 조금 유리하게 설계된 것도 투수가 서 있는 마운드가 볼을 던지기 쉽도록 조금 솟아 있는 것과 조응한다. 법정의 투수는 공격은 하지 못하고 오로지 수비만 해야 한다. 1점이라도 실점을 하면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된다.

재판장은 피고인을 세워둔 채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이름·생년월일·직업·주소·등록기준지 등을 묻는 인정신문을 한다. 이어서 주소가 변동되면 반드시 법원에 알려야 한다는 취지도 고지한다. 이어서 재판장이 검사를 쳐다보면서 “공소사실의 요지를 말씀해주십시오”한다. 그러면 검사가 공소장을 보면서 공소사실의 요지를 말한다.

공소장은 검사가 주장하는 피고인의 공소사실·죄명·적용법조가 적힌 공문서다. 공소(公訴)는 공익을 위해 공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이라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제기하는 사소(私訴)가 아니라는 뜻이다. 공소장은 수사의 결론을 제시하며 수사를 마감하는 자물쇠이자 형사재판의 문을 여는 열쇠다. 민사재판이 원고의 소장으로 시작되듯 형사재판은 검사의 공소장으로 시작된다. 형사재판은 결국 공소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절차이다. 공소장이 옳으면 유죄이고 그르면 무죄인 것이다.

검사는 근대 삼권분립제도의 산물이다. 근대 삼권분립제도가 생기기 이전의 법정의 모습은 판사와 검사가 분리되지 않은 채 심판관 앞에 피고인이 단독으로 앉아서 심판을 받는 구조였다. 조선시대 원님도 지금으로 치면 검사·판사·경찰서장·교도소장·구청장이 한 몸인 셈이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판사가 입법권과 결탁하면 국민을 자의적으로 통제하고 행정권과 결탁하면 폭력적으로 억압하므로 입법부·행정부 외에 사법부도 분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삼권분립 제도가 도입되면서 정부가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에 형사소송을 제기해서 판결을 받아야 했다. 이제 정부를 대표해서 소송을 수행할 공무원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마침 14세기부터 왕의 명을 받아 영주나 재력가를 찾아가서 벌금을 징수하던 ‘왕의 대관(代官)’이라 불리던 이들이 있어서 혁명 직후 프랑스 공화국이 이들에게 기소 권한을 주었는데 이것이 검사 제도의 효시다.

입장 다른 사람 말·글 묵묵히 들어줘 다행
형사법에는 불고불리(不告不理)의 원칙이란 것이 있다. 형사재판에서는 검사가 알리지 않으면 판사는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판사가 길을 가다가 대로변에서 묻지 마 칼부림을 하는 범죄자를 보더라도 그 사람을 재판할 수는 없다. 검사가 기소를 해야만 비로소 재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검사가 그 범인을 기소한 경우에도 판사는 검사가 기소한 범위에서만, 검사가 적용한 법조문에 대해서만 재판할 수 있을 뿐이다. 기소 여부는 오로지 검사가 결정한다. 이런 제도를 ‘기소독점주의’라고 한다. 그래서 검사가 기소할 것을 기소하지 않고 봐주고 기소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억지로 기소하면 권한을 남용하고 정의를 망가뜨리는 셈이 된다.

법과대학을 다니고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동안 내내 나는 검사 지망생이었다. 우리 사회에 해로운 사람들을 수사해서 잡고 싶었다. 그러다 법무관 때 국방부 정책실에서 일반 공무원들, 군인들과 일하면서 결국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은 결국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일하게 되는 것 같아, 피라미드형 상명하복 조직인 검찰보다는 개개인의 판단이 존중되는 판사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뒤 돌아본다. 젊은 나이에 수동적인 판사의 일을 하는 것이 보람도, 재미도 제한되는 면이 있었지만, 혈기 넘치는 나이에 법복 속에 내 개성을 감추고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말과 글을 주로 묵묵히 듣는 일을 해왔던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 뜨거운 나이에 검사로 일했다면 행여 공명심과 출세욕과 오만한 태도로 권한을 남용하며 무리한 수사를 해서 억울한 사람을 만들고 오히려 정의를 훼손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중천의 태양처럼 하늘을 찌르던 검찰의 위세가 석양처럼 저물어가고 있는 요즘에는 이런 회고도 무색해진다. 변호인석에 앉아 있으면 이렇게 과거에 가려 했다가 가지 않은 길과 이미 가본 길을 번갈아 보기도 하는 것이다.

정재민 변호사, 작가. 20여년간 판사, 법무부 송무심의관 등으로 일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세계문학상 수상작) 등의 소설과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범죄사회』 등의 에세이집을 냈다. 현재 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의 대표변호사로 형사·이혼·상속 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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