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무인지대

2025. 6. 1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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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지대_258, 김포, 2025. ⓒ김예현
역사적으로 ‘No Man’s Land(무인지대)’라는 말은 1086년 영국에서 출간한 토지조사부에서 처음 등장한다. 당시에는 런던의 밖,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라는 의미가 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 말은 연합군 참호와 독일군 참호 사이의 지대를 일컫는 군사용어로 굳어진다. 충돌과 대치의 긴장이 흐르는 이 땅은 지뢰와 철책, 포탄 흔적과 시체로 가득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아군의 참호를 넘어 적군의 참호로 침투해야만 했기에, 무인지대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죽음의 문턱이었다. 따라서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역설적인 의미가 더 크다.

김예현은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풍경을 이 무인지대에 빗대어 은유한다. 특히 사람이 살지 않는 비무장 지대보다도 그 경계를 이루는 경기 북부의 유인지대에 주목한다. 휴전선에서 가까운 이곳은 유사시 수도 서울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이곳의 군사적 장치들은 눈에 익어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한반도의 물리적 지형을 바꾸고, 실질적 삶의 방식에도 개입해 왔다. 예를 들어 신곡수중보는김포시 고촌읍 신곡리 김포대교 아래에 설치한 인공 둑이다. 1980년대 말, 바닷물의 유입을 방지하고 농업용수를 확보하는 등 한강 물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 잠수대교 아래에도 수중보를 설치했는데, 한강 양 끝의 이 보를 막으면 한강을 일종의 호수처럼 관리할 수 있는 셈이다. 한강 유람선 운항 구간과도 일치하는 이 보들의 또 하나의 목적은 북한군의 수중 침투 방어에 있다. 그러나 당초의 취지와 달리 한강의 녹조화, 수상 버스 운영의 걸림돌 등 여러 난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진 속 백마도처럼 신곡수중보를 관리하는 일부 구간은 장마철에 유실된 지뢰로 인해 그야말로 사람이 머물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군사학을 공부하던 작가는 안보 논리 이면에 내재한 필연적인 폭력성과 마주한 뒤 사진으로 전공을 바꿨다. 무인지대는 그런 김예현이 2022년부터 지속해 오고 있는 연작이다. 그는 중형 필름카메라를 들고 군사 이데올로기가 바꿔놓고 있는 국토의 지리를 사진으로 그려보는 중이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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