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그리워졌다…토니상보다 큰 칭찬"

유주현 2025. 6. 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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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스테이지] 한국 최초 토니상 수상 박천휴 작가
토니상을 석권한 K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버전 배우 헬렌 J 셴(왼쪽)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대런 크리스. [사진 NHN링크]
지난 8일(현지시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의 토니상 석권은 K뮤지컬 전대미문의 쾌거였다.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6관왕에 올랐는데, 원작이나 실존 인물에 기대지 않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오리지널 뮤지컬이라 더 놀라웠다.

작품상과 극본상·음악상을 공동수상한 박천휴와 윌 애런슨 콤비는 2008년 처음 만났다. 한국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뉴욕대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던 박천휴는 같은 학교에서 뮤지컬을 공부하던 윌을 만나 절친이 됐다. 함께 노래를 만들다 2009년 윌이 먼저 한국 창작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에 참여했고, ‘번지점프를 하다’(2012)로 첫 뮤지컬 공동작업을 하게 됐다.

박천휴 작가는 브루클린의 한 커피숍에서 영국 가수 데이먼 앨번의 ‘에브리데이 로봇’을 들으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친한 친구를 암으로 잃고, 오랜 연인과도 이별한 상태였던 그는 점점 더 고독해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구상해 곧바로 윌에게 문자를 보냈다. 공감대를 얻은 둘은 일사천리로 한국어와 영어 대본을 동시에 써내려갔다. 해피엔딩의 시작이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초연됐다. 초연배우 김재범(왼쪽)과 전미도 등의 AI로봇 연기가 교과서가 됐다. [중앙포토]
서면으로 만난 박천휴 작가는 이 작품의 의미가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첫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데 있다”며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한국에선 윌을 작곡가라고 하지만 미국에선 저희 둘 다 작가로 통해요. 음표든 활자든 구분하지 않고 저희는 계속 쓰는 사람들입니다. 제 아이디어라고 해도, 함께 이야기를 짓고, 음악의 정서와 질감을 정하고, 매일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협업하죠.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나 정서도 비슷하고, 서로의 예술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있고요.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내 할 일’ ‘네 할 일’을 구분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작업합니다.”

브로드웨이 버전은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이 대극장으로 옮겨간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대극장과 소극장 뮤지컬은 문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박했던 대학로 버전과 달리 브로드웨이에선 무대전환이 많고 꽤 화려해졌다. 그런데 관객 반응은 놀랄만큼 비슷하다고. “뉴욕에서 먼 도시에 사는 어느 미국인 관객분 이야기를 읽었는데, 출장을 왔다가 10개 공연을 볼 예정 중에 우리 공연을 5번째로 보셨대요. 공연을 보는 내내 아내가 그립고, 함께 손을 잡고 이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서 결국 남은 5개의 공연표를 팔고, 항공권을 바꾸면서까지 일찍 집에 돌아갔다고 해요. 그리고 밸런타인데이에 아내와 함께 다시 이 공연을 보기로 했다더군요. 제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이었습니다.”

박천휴(左), 윌 애런슨(右) [사진 NHN링크]
스물다섯에 유학을 간 그는 뉴욕에 살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훨씬 더 자각하게 됐단다. 1930년대를 배경삼은 ‘일 테노레’, 70년대 배경의 ‘고스트 베이커리’ 등을 만든 이유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친숙하면서도 묘하게 낯선 질감의 세상을, 해외 관객들에게는 낯설지만 묘하게 공감되는 세상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일 테노레’와 ‘고스트 베이커리’ 모두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할 계획이고, 좋은 파트너를 찾아야죠.”

‘한국인 최초 토니상 수상 작가’가 됐으니 그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지만, 지난해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만큼이나 핫해진 건 사실이다. 전세계 뮤지컬 시장의 러브콜이 예상되는데, 그는 경계 없는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국에선 ‘일 테노레’와 ‘고스트 베이커리’의 재공연을 해야 하고, 미발표 드라마 프로젝트도 있어요. 지난해 제 연출 데뷔작이었던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처럼 한국에는 덜 알려진 의미있는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하는 일도 계속하고 싶고요. 뉴욕 배경으로 한국인 커플 이야기를 몇 년전 시나리오로 써둔 게 있는데, 더 늦기 전에 단편영화도 꼭 만들고 싶어요.”

토니상 당일에도 레드카펫부터 작품상 발표까지 7시간이 걸렸지만, 지난 석 달간이라는 긴 ‘어워즈 시즌’을 마친 그는 다시 출발선에 섰다. “비평가상, 드라마리그와 드라마데스크를 거쳐 토니상까지 무수히 많은 행사에서 작품을 홍보해야 했어요. 브로드웨이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던 제가 얼굴을 비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해서, 내성적인 성격에도 열심히 사람들을 만났죠. 토니상 무렵에는 마라톤의 피니시라인에 다다른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수상 이후 한 명의 창작자로서 생활이 달라지는 건 없어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의지가 계속되는 한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제 평생 서울과 뉴욕에서 보낸 시간이 거의 50:50에 가까워졌는데, 두 문화를 오가는 창작자로서 조금은 다른 관점이되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이야기들을 만들어야죠.”

그가 물길을 튼 브로드웨이 진출은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2015년 트라이아웃 공연부터 꼬박 10년의 마라톤 같았던 여정이었다. 급변하는 세상에 요즘 세대들이 버티기 힘든 긴 호흡일지 모른다. 그는 “빠른 성공을 위해 뛰어들기 좋은 직업은 아니”라고 했다. “공연은 평균 5년 이상 걸리는,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긴 시간 매달려야 하는 일이지만, 창작자 대우는 보잘 것 없는 게 현실이죠. 한국 뮤지컬 산업 역사가 짧으니 지금 흥행하는 공연들을 교과서처럼 따르기도 충분하지 않고요. 뮤지컬이란 창작진이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진심으로 이야기와 음악을 쓰고, 진정성있는 제작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제작해야 버틸 수 있는 과정입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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