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정상회의 참석, 논쟁의 대상 아냐…李 대통령 참석해야
● 공산권 무너진 1990년대는 실용 외교 가능했으나
● 북‧중‧러 군사협력 강화된 지금은 상황 달라
● 유럽 전쟁 벌어지면, 한국도 발 빼기 어려워
"나는 두 달 전 일본을 방문해 그곳의 모든 고위 지도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나토와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호주, 뉴질랜드, 이른바 '인도-태평양 4국'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6월 9일, 영국 런던에 소재한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초청 연사로서 발표한 마르크 뤼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이 채텀하우스 이사 겸 최고경영자인 브론윈 매독스와의 질의응답 시간에 한 말이다. 나토가 단지 유럽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와 맺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다음 발걸음이다. 6월 17일까지 열리는 G7 정상회담 이후 가장 중요한 국제 행사는 같은 달 24일과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나토(NATO) 정상회의다. 나토 회원국뿐 아니라 일본, 호주, 뉴질랜드 역시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은 나토 가입국이 아니다. 하지만 나토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중요성은 절대 작지 않다.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네 나라를 묶어 이른바 '인도·태평양 4개국'(IP4)라 부르는 것은 단순한 립서비스 차원의 일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 전반이 유럽, 더 나아가 세계의 안보 구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드러나는 표현이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적 쟁점 중 하나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거니와, 이 대통령의 지지층 내에서도 의견 차이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와 함께 거론되는 악동 북한
이 대통령의 외교관은 일관성이 있다. '실용 외교'의 기치를 내걸고 북한 및 러시아, 중국에 대한 유화적 태도를 표방해 왔다. 그 관점에서 보자면 나토에 굳이 참석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외교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한미동맹을 외교 안보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는 우리의 체제 구조 속에서 나토 참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볼 수도 있다.한국일보의 6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두 가지 조언을 두고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의 외교·안보 자문 창구는 '글로벌책임 강국위원회'와 '동북아 평화 협력위원회' 두 군데다. 이종석 국정원장 후보자가 주도하는 글로벌책임 강국위원회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을 고려해 G7과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위성락 청와대 안보실장이 주도하는 동북아 평화 협력위원회는 G7과 나토·IP 정상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일단 G7 참석은 확정됐다. 나토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그런데 이것은 논란이 될 사안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이 IP4로서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토의 공식 명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다. 소련과 공산권의 위협에 맞서 유럽을 지키기 위해 1949년 4월 4일 미국 주도로 설립된 안보 기구다. 그 창설 취지와 활동 범위 등을 놓고 볼 때 우리의 안보와 직접 관련이 없거나 거리가 있다는 것이 나토 참석 반대파의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 글을 시작하며 인용했던 뤼터 사무총장의 발언을 조금 더 들어보자. 그는 6월 9일 채텀하우스 초청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러시아는 이제 중국, 북한, 이란과 손을 잡고 있다. 이들은 군사력과 역량을 확장하고 있다. 푸틴의 전쟁 기계는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
북한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현재 안보 차원에서 중요해진 나라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만이 아니다. 북한은 지금 국제 안보 문제에서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다. 모두발언과 질의응답을 포함해 뤼터 사무총장의 발언에서 'Korea'는 총 7번 등장한다. 그중 다섯 번이 북한에 대한 언급이며 오직 두 번만이 대한민국을 거론한 것인데, 그마저도 'Korea'라고 한 후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곧장 'The Republic of Korea'라고 부연했다. 사실상 우리는 딱 한 번만 언급됐고, 나머지는 북한 이야기다.
물론 북한이 국제 사회의 문제아로 취급당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1년 9월 11일 '9‧11 테러'가 발생한 후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지목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이 누구와 함께 거론되느냐를 놓고 보면 당시와 지금의 위상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이라크와 이란이라는 지역 군사 강국이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글로벌 군사 대국과 나란히 언급되고 있다. 물론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북한의 군사적 위상이 1990년대, 2000년대와 전혀 다른 반열에 올라와 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실용 외교, 90년대엔 맞지만 지금은 틀렸다
북한의 군사적 체급이 이전보다 확연히 커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북한은 이미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만한 발사체를 완성하지 못했을 뿐 한국과 일본은 충분히 타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햇볕정책은 실패했다. 미국, 특히 오바마 정부에서 추진한 '전략적 인내' 역시 북핵을 막지도 지연시키지도 못했다. 그 결과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이란과 함께, 러시아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두 번째 이유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참전이다. 북한이 러시아에 군인을 보냈다는 것은 이미 다양한 경로로 확인된 사실이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어느 정도 활약을 펼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참전의 대가로 상당한 외화 및 현물을 받았고, 최첨단 현대전 경험을 쌓으며 한층 더 군사력을 강화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의 월남전'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요소를 지적하는 일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며 우리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시각이기도 하므로 짚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앞서 언급했던 이재명 정부 내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립으로 돌아가 보자.
자주파가 나토 참여에 부정적인 이유는 한반도 현대사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미국과 소련이 남북을 분단 점령하고, 미국의 후원하에 한국 내 일부 정치 세력을 중심으로 단독정부가 수립되었기에 한반도 분단이 이루어졌다는 관점이 깔려 있다.
그러한 시선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면 '외세'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은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게 된다. 외세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 외세가 벌이는 전쟁이나 기타 지정학적 결정에 대해서도, 물론 피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으나 가급적 거리를 두는 게 좋다. 굳이 반미주의로까지 나아가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중국에도 셰셰, 대만에도 셰셰' 하며 우리의 이익을 챙기는 '실용 외교'가 최선으로 여겨질 것이다.
실용 외교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단, 공산주의가 실패로 끝나고 동유럽이 무너지며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던 1990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 당시는 냉전이 끝나고 북한이 주저앉으면서 큰 전쟁의 위협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진보뿐 아니라 보수 진영에서도 그러한 관점을 공유했기에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서슴없이 북방외교를 추진할 수 있었다.
유럽 전쟁 위기, 우리와 무관한 일 아냐
지금은 상황이 아주 다르다. 전쟁의 위험이 눈앞에 다가왔다. 아니, 유럽의 경우는 이미 전쟁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뤼터 사무총장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탄약만 놓고 보면, 러시아는 나토 전체가 1년에 생산하는 양을 단 3개월 만에 생산합니다. 올해에만 러시아의 방위 산업 기반은 전차 1,500대, 장갑차 3,000대, 이스칸데르 미사일 200기를 생산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러시아는 향후 5년 안에, 나토에 대한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를 마칠 수 있습니다"러시아가 위협하는 대상이 유럽일 뿐이라며 안도할 수는 없다. 중국 역시 매우 빠르게 군사력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이 보유한 핵탄두만 해도 1000발이 넘는다. 게다가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그 전투함 규모는 435척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군함을 건조할 수 있다. 이대로라면 미국이 해양 지배력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천연자원을 수입해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수출 공업국 대한민국의 생명줄을 중국이 쥐락펴락하게 되는 셈이다.
나토 회원국 전체의 GDP 중 오직 2%만을 국방비에 쓰던 시대는 끝났다. 미국은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비율을 5%까지 올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도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더 나아가 세계의 안보를 지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꾸준히 전쟁 준비를 해온 러시아, 중국, 북한 등과 달리, 유럽은 오래도록 평화의 단잠을 자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북한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전시 동원 체제와 생산 역량을 유지해 왔다. 그것이 오늘날 이른바 'K-방산'의 수출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무기 세일즈' 차원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유럽에 무기를 본격적으로 팔아야 할 상황이라면 대한민국 역시 전쟁에서 벗어난 안전지대일 가능성이 그리 크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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