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으로 남겨진 죽음[꼬다리]

노동을 담당한 뒤로 누군가의 죽음을 많이 접하게 된다. MBC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김충현씨처럼 투쟁의 일환으로 사후에도 온전히 이름이 불리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일하다 죽는 대다수는 익명으로 남는다. 고용노동부가 매일 보내는 사망사고 알림 문자에도 재해자는 ‘성별, 출생연도, 원청 또는 하청 소속’으로 표기될 뿐이다.
최근 한 달 새 두 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지난 5월 19일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 크림빵 포장 공정에서 일하던 50대 여성 노동자 A씨가 기계에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다 냉각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지난 6월 2일에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정비동 기계공작실에서 김충현씨가 혼자 부품정비 작업을 하다 선반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
A씨도, 김충현씨도 산업재해로 스러졌지만 이후 진행 경과를 보면 사뭇 다르다. SPC 사망사고는 사측이 국회에 나와 안전 대책을 발표했으나 수사당국이 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세 번이나 기각되며 강제수사에 착수하지도 못하고 있다.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사유도 알 수 없다. 강제수사가 더딜수록 진상 파악은 어려워진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주축으로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사건 발생 직후 꾸려져 정부·수사당국·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초기부터 대책위가 자료를 확보해 언론 대응에 적극적이다. 노동부도 6월 10일부터 특별감독을 벌이고 있다.
SPC도, 태안화력발전소도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사업장인데 미묘하게 달리 흘러가는 두 사건을 바라보며 씁쓸했다. 원청 소속이든, 하청 소속이든 노동자의 이름을 내걸고 노조와 시민사회단체가 악착같이 싸워야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것인가. 수많은 익명의 산업재해 사망자들로는 사람보다 이윤이 먼저인 사회를 멈출 수 없는 것인가.
지난 6월 8일 찾은 김충현씨 빈소 앞에는 정치권, 노조, 시민사회단체가 보내온 근조 화환과 근조기로 가득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조문하고 사고 현장을 찾아 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장과 한전KPS(김충현씨 소속 하청업체의 원청) 관계자를 질타했다. 지난 6월 6일 김충현 사망사고 대책위가 대통령실에 진상조사 요구안을 전달할 때,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이례적으로 대통령실 앞까지 나와 요구안을 받았다. 강 비서실장이 눈물을 훔쳤다는 보도도 줄을 이었다.
‘노동 존중’ 이재명 정부는 ‘노동 탄압’ 윤석열 정부와 다르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소년공 출신에 산업재해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 국회 청소노동자들을 가장 먼저 만났다. 이 모든 것이 정부 출범 초기 퍼포먼스에 불과할지, 이재명 정부가 산업재해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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