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무대 위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넘나들다…고선웅 연출, 14년 만의 오리지널 창작극 ‘유령’

이승연 시티라이프 기자(lee.seungyeon@mk.co.kr) 2025. 6. 1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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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도 연극이 될 수 있구나.” 무대 위에 오른 배우도, 이 극을 본 관객들도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아닐까. 연극 ‘늙어가는 기술’ 이후 14년 만에 발표한 고선웅 단장의 오리지널 창작극 ‘유령’이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새롭게 막을 열었다. 6년 만에 무대로 복귀한 배우 이지하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을 바탕으로, ‘사람’과 ‘삶’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가 ‘연극’이란 장르 속에서 섬세하게 표현된다.

분장실 또는 시체 안치실, 그리고 공연이 벌어지는 무대가 되는 네모난 공간. 그 위에 오른 배우 이지하는 이번 극에서 자신이 맡은 ‘하나의 삶’을 소개하며 막을 올린다.

등장인물 ‘배명순’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가출을 하고, 이후 주민등록도 없이 ‘정순임’이란 가짜 신분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정순임의 삶 역시 쉽지 않고, 우여곡절을 끝에 그녀는 말기 암 진단을 받으며 무연고자로 쓸쓸히 죽는다. 시신 안치실로 옮겨진 배명순은 그곳에서 화장되지 못한 채 떠도는 유령들을 만난다.

연극 ‘유령’ 시연 장면(사진 세종문화회관)
연극 ‘유령’은 ‘사람으로 났으면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처럼 죽어야 한다’는 화두 아래,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지고 지워진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극중극 형식으로 이야기는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넘나들며 등장인물 ‘배명순’ 역의 이지하는 배우 자신의 본질로 존재하기도, 다시 배명순과 정순임이 되기도 한다. 그 변화의 순간은 다소 모호하다. 무대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배우들 모두 허구적 인물의 연기와, 배우 자신으로서의 현존을 넘나들도록 설정함으로써 극의 생생함을 더한다.

이렇듯 존재감 없이 존재하다 사라진 무연고자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을 지운 채 새로운 인물로 살아가는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무대는 ‘삶’과 ‘존재’, ‘정체성’을 질문한다.

연극 ‘유령’은 고선웅 연출이 무연고자에 관한 기획 기사를 읽고 무대화하게 되었다. ‘세상은 무대, 사람은 그 속에서 배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볼 때, 자신이라는 존재가 지워진 무연고자라 할지라도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그런 배역을 선택해 맡았다면, 그 마지막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연극 ‘유령’ 시연 장면(사진 세종문화회관)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기획 의도를 담고 있지만, 작품은 고선웅 연출 특유의 적절한 완급 조절, 특유의 코미디 그리고 재기발랄함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각종 영화의 OST, 메가 히트송, 뮤지컬 넘버 등 ‘인생(Life)’을 주제로 하는 다채로운 배경 음악들은, 극중 장면과는 언밸런스하다 느껴지면서도 한 순간에 극의 주제를 꿰뚫는다.

무대 위 등장하는 소품들도 오브제 이상의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밝은 조명을 켠 분장실 거울은 극중 ‘배명순’이 자신의 현실을 마주하게 하는 요소이자, 때론 무거운 화장을 지우고 머리를 만지며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배우 이지하’의 모습을 보여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유령’의 모습을 귀엽게(?) 형상화한 소품, 시체 안치실 속 떠도는 유령 역의 배우들의 모습을 본 딴 데드마스크 등도 마찬가지다.

‘유령’에는 6년 만에 무대로 복귀한 이지하 배우를 주축으로, 서울시극단 단원 강신구, 김신기, 전유경, 이승우와 함께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이는 신현종, 주목받는 배우 홍의준이 함께한다. 6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만나볼 수 있다.

연극 ‘유령’ 포스터(사진 세종문화회관)
[ 이승연 기자 lee.seungyeon@mk.co.kr] [사진 세종문화회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84호(25.06.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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