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계 두 젊은 천재들의 만남… 메켈레· 임윤찬의 산뜻한 여름밤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4번 듣는 기회

파리 오케스트라의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단원들의 머리칼은 곳곳이 은색으로 조명을 받아 빛났다. 그만큼 베테랑 연주자들이 대거 내한했다. 수석 바이올리니스트까지 입장하고 나서 더욱 커진 환영의 박수 속에서 눈에 띄게 젊은 마에스트로, 클라우스 메켈레(29)가 등장했다.
지난 1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클라우스 메켈레&파리 오케스트라’ 공연은 60대 이상 지휘자가 대부분인 클래식계에서 불과 20대에 최정상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해사한 얼굴의 메켈레와 돈이 있어도 티켓을 구하기 힘들다는 피아니스트 임윤찬(21)의 협연으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티켓 가격이 45만 원(R석 기준)에 이르지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내국인, 외국인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곧바로 시작된 이날 프로그램의 첫번째 곡은 모리스 라벨(1875~1937)의 ‘쿠프랭의 무덤’이었다. 이 곡은 라벨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목숨을 잃은 친구들을 추모하며 작곡했다. 이 곡에서 메켈레는 여러번 무릎을 깊이 구부려 앉아 현악기 연주자들이 선율에 깊은 감정을 담도록 이끌어 냈다. 지휘봉을 든 오른손 뿐만 아니라 왼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메켈레의 지휘법이 눈에 띄었다.

두번째 곡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이 바로 임윤찬이 협연할 곡. 연주를 위해 그랜드 피아노를 무대 중앙, 지휘자 메켈레의 앞쪽으로 옮기자 관객들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클래식 스타의 등장을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공연장이 떠나갈듯 울리는 박수 소리 끝에 임윤찬이 빠른 발걸음으로 땅을 보며 걸어들어왔다. 그는 다소 긴장한 인상을 풍겼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먼저 시작되고 나서도 손바닥에 난 땀을 바지에 닦는 모습이 보였다. 침을 삼키며 함께 긴장하던 찰나, 임윤찬은 기막히게 박자를 타고 들어가 피아노의 첫 건반을 쳤다. 그 이후로는 그의 시그니처인 풍성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건반 위를 날아다녔다.
메켈레는 자신의 등 뒤에 자리한 임윤찬을 위해 그의 파트가 다가올 때마다 몸을 완전히 돌려 섬세하게 지휘했는데 그럴때면 임윤찬도 고개를 들어 메켈레와 눈을 마주치고 감응하며 연주했다. 메켈레와 임윤찬의 교감하는 모습이 관객석까지 따스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24분간 이어진 두 젊은 천재의 협연은 그 자체로 산뜻하고 희망찼다.
한편 임윤찬은 이날에 이어 15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에서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한다. 사실 라흐마니노프의 기념비적 스테디셀러인 피아노 협주곡 2번(1901)과 3번(1909)에 비해 4번(1926)은 클래식 무대에서 자주 접하는 레퍼토리가 아니다. 심지어 라흐마니노프가 1927년 본인이 직접 연주한 필라델피아의 초연에서는 평론가들의 혹평이 이어졌다.

임윤찬은 여러번의 커튼콜 끝에 쇼팽의 왈츠 3번을 앙코르곡으로 골라 슬픈 선율을 연주했다. 앙코르까지 끝나고 나서도 재차 앙코르를 원하는, 임윤찬을 보내고 싶지 않아하는 관객들의 분위기가 여실히 전해졌다.

인터미션 이후 메켈레와 파리오케스트라는 마지막 곡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1839~1881)의 ‘전람회의 그림’을 라벨이 관현악으로 편곡한 버전으로 선보였다. 이전 두 곡에서보다 관악기의 도드라짐이 컸는데, 특징적인 대표 선율이 반복해서 연주되고 이를 플루트, 바순 등의 관악기가 솔로로 나서 주도했다. 곡은 후반부로 갈수록 엄청나게 빠른 템포로 치닫는데, 특히 ‘닭발 위의 오두막’부터 시작되는 피날레는 현악기의 활이 사정없이 공중을 가른다. 이어 큰 북, 팀파니, 심벌즈 등 타악기가 웅장하게 가슴을 울려가며 관객을 끝없는 감동에 머물게 한다. 메켈레는 여러번 위로 점프하면서 감정이 고조됨을 표혔했다. 착지는 눈으로 보기에도 가볍기 그지 없었고, 마치 춤을 추듯 경직된 부분 없이 모든 동작이 아주 유려하게 흘렀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모든 장기를 자랑하듯 내보인 35분의 마지막 곡이 끝나고, 뒤돌아선 메켈레의 얼굴에는 스스로도 느낀 환희가 가득했다. 커튼콜이 시간이 갈수록 소리가 줄어들기는 커녕 박수소리가 점점 거세지자 앙코르로 돌아왔다. 대중성있는 비제의 카르멘 서곡을 경쾌하게 연주하며 메켈레와 파리오케스트라는 서울의 초여름 밤을 수놓았다.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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