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이야기- 진주 대동공업] 6부 김삼만과 기공일생(機工一生) ⑭ 대동공업사 국내 최초 경운기 제작
1960년 논밭 농사 지게·소달구지 이용
日은 경운기·트랙터·콤바인 사용 충격
일상 속 폭넓게 활용돼 보급 성공 확신
사회 급변 농업개혁 필요성도 절실해져
진주 주약동 1만평 생산공장 설립 준비

1960년대 후반 대동공업사 진주 주약동 공장 주변 전경./경남자동차고등학교/
◇ 기술제휴 파트너 기업을 찾아서
1961년 유럽 견학을 끝내고 귀국한 김삼만은 경운기 생산 기획을 실행하기 위해 곧바로 일본에서 디젤엔진 생산으로 이름난 얀마회사를 찾아갔다. 기술제휴를 해주면 경운기와 선박용 엔진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을 했다. 얀마회사에서는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돼 있지 않아 기술제휴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김삼만은 다시 도쿄의 미쓰비시중공업을 찾아갔다. 이곳도 역시 처음에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이유로 거절했다. 김삼만은 좌절하지 않고 미쓰비시에 계속해 제안서를 제출했다. 가끔은 직접 일본 공장에 찾아가 대동공업사의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결국 수개월 후 미쓰비시도 한국 농촌의 변화에 따른 농업기계의 시장성을 예측하고, 대동공업사와 기술제휴로 경운기를 만드는 것에 동의를 했다.

경운기는 인력운반, 화물운반, 탈곡, 양수, 경작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전천후 농기계였다. 사진은 대동공업의 경운기./대동50년사/

대동공업의 경운기./대동50년사 /
◇ 도전, 그 험난한 길
김삼만은 경운기에 대해 책을 보고, 전문가를 통해 학습해 기본 지식을 알고는 있었다. 경운기는 논과 밭을 갈 때만 사용하는 기계로 인식했는데, 실제로 일본 농촌 현장을 보고 난 후 일상에서도 폭넓게 활용되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이 경운기는 물론 트랙터, 콤바인을 사용하는데, 한국 농촌에는 아직도 지게와 소 달구지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일본의 경운기 생산공장을 세세하게 견학 후 경운기 부품을 한국에 가져가면 대동공업사에서도 충분히 조립 제작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1960년 초 진주 주약동 대동공업사 공장 전경./대동50년사/
◇ 진주 주약동에 경운기 생산공장 계획
김삼만은 수년 전부터 미래의 한국 농촌 변화를 예상하고 대동공업사가 생산해야 할 농기구, 농기계 제품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다. 농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소를 이용해 인력으로 밭을 가는 대신 기계로 논과 밭을 갈아서 농사를 편리하게 지을 수 있는 것이 경운기라고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김삼만은 ICA 차관 자금 34만 달러 중 일부는 독일에서 기계를 도입하고 일부는 경운기를 생산할 공장 증설에 사용했다. 진주역 남쪽 주약동에 철도 묘포장으로 쓰던 땅, 국유지 3만8000평을 불하받아 건평 1만평의 대규모 공장 설립을 추진했다. 경운기를 생산할 주조공장, 단조공장, 기계공장과 사무동을 설립했다.
경운기를 제작하는 기계가 도입되면 인재도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고, 앞서 기계 전문 대학졸업생을 공개모집했다. 그리고 조직 기구로 경운기 생산 전담 부서까지 신설했다.

대동공업의 경운기./대동50년사 /

대동공업의 경운기./대동50년사 /
◇ 오직 대한민국 농촌 변화를 위해
그렇다고 대동공업사의 경운기 생산 추진은 김삼만의 계획대로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대동공업사의 성장을 함께한 간부 중 몇몇은 “경운기는 가격이 높아 한국 농촌에 보급이 쉽지 않을 것이다. 초기 투자 자본이 많아 회사에 심한 자금 압박을 가져올 것이다. 현재 주력 생산품인 발동기와 동력 탈곡기, 엔진류 생산으로도 충분한 수익이 창출되고 있다.” 등등 이런저런 사유로 대동공업이 경운기 제작을 연기하자는 요구도 많이 있었다. 여러 갈등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김삼만은 실제로 일본 농촌 현장을 보고 난 후 경운기는 논과 밭을 갈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도 폭넓게 활용돼 의외로 전국 농촌에 급속도로 보급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가 추진하는 농촌근대화 정책에도 부합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 경운기의 다양성
김삼만이 한국에서도 경운기가 급속도로 보급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에는 일본 농촌에서 활용되고 있는 경운기의 다양성을 보고 난 후였다.

대동공업의 경운기./대동50년사 /
◇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정책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한국 사회는 정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에 급변하는 시기의 연속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62~1966년) 중 농업 분야에는 농촌근대화와 식량 증산에 큰 비중을 두고 많은 예산을 배정했다.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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