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명목을 찾아서(11)문경 주암정(舟巖亭) 박태기나무



예전에는 바로 밑으로 강물이 흘렀으나 홍수로 인하여 물길이 바뀌고, 제방 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연꽃과 능소화를 심어 운치를 더하자 문경의 명소가 되었다. 후손들이 매년 이곳에서 종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0세 종손(채훈식)이 관리하고 있다. 채익하는 본관이 인천으로 조선조 예종 1년(1469) 21세 때 문과인 관시(館試), 회시, 전시(殿試)에 모두 장원 급제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1511년 국내 최초 한글 소설 『설공찬전』을 저술한 나재(懶齋) 채수(蔡壽)의 6세 손이다. 강희(康熙) 12년(1673)에 생원시에 합격한 성균관 생원으로 학덕을 겸비한 인물로 충의위(忠義衛) 채극명(蔡克明)의 아들이다. 자는 비언((悲彦) 호는 주암(舟巖)이며 1633년 출생하여 1675년에 졸하였다. (2017. 4.3) "라고 했다.
이 안내문을 통해서 주암(舟巖)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이라고 알려진 허균(許筠, 1569~1618)의 『홍길동전』(洪吉童傳)보다 더 이전인 1511년(중종 6)에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은 문신 채수(1449~1515)의 6세 손이며, 아울러 주암 즉 배 바위가 영조 때 인물인 근품재(近品齋) 채헌(蔡瀗, 1715-1795)이 경영했던 석문구곡(石門九曲) 제2곡으로 18세기에도 이미 명소였다는 사실, 태평양전쟁 끝 무렵 일제의 수탈로 물자가 부족했던 때인 1944년에 후손들에 의해 지어졌으며, 능소화와 연꽃이 피면 경관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품재가 지은 석문구곡의 제2곡은 다음과 같다.
이곡이라 동쪽에 일월봉이 솟아있고(二曲東亞日月峯, 이곡동아일월봉)/
두 바위 물에 잠기니 형제의 모습이라.(雙巖枕水弟兄容, 쌍암침수제형용/
정자 앞의 부벽은 천년이나 되었고(亭前浮碧千年久, 정전부벽천년구)/
대숲을 바라보니 푸르름이 몇 겹인가.(望裏竹林翠幾重, 망리죽림취기중)/

4월 중순 찾았을 때 능소화는 물론 연(蓮)도 아직 잎을 내지 않았다. 다만, 산당화와 박태기나무만 꽃을 피우고 있었다. 특히, 박태기나무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즐겨 심는 나무인데 반해 산당화는 반가(班家)에는 심지 않았다. 전자는 형제간 우애를 돈독히 한다는 고사(古事)가 있고, 후자는 이른 봄, 화사한 꽃이 여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바람난다는 속설 때문이다.
박태기나무에 얽힌 고사는 중국 남북조 시대 『이십사효』(二十四孝) 이야기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남조(南朝)의 양(梁) 나라(502~557) 전진(田眞)이라는 사람이 부모가 죽고 두 명의 아우 광(廣), 경(慶)과 함께 살았다. 어느 날 분가(分家)를 하기로 하고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었다. 그런데 뜰에 있는 박태기 한 그루가 문제였다. 의논 끝에 3조각으로 나누어 가지기로 했다. 다음 날 현장에 도착하자 잎이 시들어버렸다. 이를 본, 형 전진이 두 아우에게 말했다.
"본래 한 뿌리에서 자란 같은 줄기인데 쪼개어 나누려 하겠다는 우리의 말을 듣고 시들어 버렸구나. 우리 3 형제가 나무보다 못하구나."하고 가르기를 그만두자, 다시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고, 잎도 무성해졌다. 이런 연유로 형제간에 우애를 상징한다. 그래서 선비들이 즐겨 심었다. 영의정 류성룡을 기리는 병산 서원, 영남 오현의 한 분인 정경세(鄭經世) 종택, 조선 후기 유학자 최흥원이 강학하던 옻골마을 동계정 등 모두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기 위해 심었다. 주암정 후손들도 같은 뜻으로 심었을 것이다. 그들의 깊은 속내가 주암정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정웅 사)대구생명의숲이사장/ 전 대구시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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