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강인 유감(遺憾)

"우~~~"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내 대형 전광판에 모습이 잡히자, 일부 관중들은 야유를 쏟아냈다. 이날 현장을 찾은 취재진도 홍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여전히 싸늘한 팬심에 사뭇 놀랐다. 수준 높은 한국의 축구팬들은 지난해 축구협회가 홍 감독을 선임한 과정에서 불거진 공정성 논란에 대해 잊지 않고 경각심을 줬다. 분명한 사과나 책임도 없는 한국 축구의 뻔뻔함에 보내는 경고였으리라.
홍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통산 12회 월드컵 진출로 아시아 최초이자 최다 기록을 썼음에도 축구팬들은 오롯이 축하만 건네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뜻밖의 인물이 반응했다. 바로 이강인(24·파리 생제르맹)이다. 이날 쿠웨이트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최종전에서 득점하며 4-0 대승에 기여, 최우수선수로 뽑힌 그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감독님과 축구협회에 대해 공격적으로 일관하시는 분들이 있다. 우리는 축구협회 소속이고, 감독님은 저희의 보스이기 때문에 너무 비판만 하시면 선수들에게도 타격이 있다."
그는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도 해당 발언을 이어갔다. 이강인은 "기자분들, 그리고 요즘은 유튜브 쪽에서 축구협회 얘기를 많이 한다. 결국 팬들은 그걸 보고, 그 얘기를 들으신다"며 "비판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과도한 부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대표팀에 뽑힌 뒤 (경기장에) 가장 적은 분이 오신 것 같다. 한국 축구에 대한 관심이 줄면 선수들에게도 좋지 않다"고도 했다.
두 귀를 의심했다. 언론과 일부 유튜브 채널을 저격하는 모습, 이들의 비판으로 인해 관중이 들지 않았다는 위험한 논리에 기시감이 들었다. 지난해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비슷한 논리로 발언한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오버랩됐다.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않은 채 유튜버 등 남탓만 하던 정 회장의 모습이. 투명하지 않은 경영, 주먹구구식 행정 운영 등으로 당시 국감에서 "동네 계모임만도 못하다"는 비난을 들은 축구협회다. 지난 12년 간 장기집권한 정 회장의 4연임이 박수받지 못한 이유다.
최근 K리그1 광주FC가 국제축구연맹(FIFA)로부터 징계를 받는 등 일련의 사태만 봐도 그렇다. 축구협회는 지난해 12월 광주가 아사니 영입과정에서 연대기여금(해당 선수의 이적료 일부가 12~23세 사이 소속팀에 배분되는 금액) 미납으로 FIFA로부터 선수등록금지 징계를 받은 걸 인지하지 못한 채 광주의 선수등록을 받았다. 물론 구단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축구협회가 이 과정에서 징계 공문을 이메일로 보낸 뒤 크로스 체크를 하지 않았고, 한국프로축구연맹과도 소통하지 않은 무능한 행정 운영이 또 다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축구계에선 '만약 그 대상이 울산 현대나 전북 현대였다면 공문을 이메일로만 달랑 보냈을까'라는 의문까지 제기됐다. 정 회장과 권오갑 프로축구연맹 총재는 현대가(家) 사람이니 나오는 말이다. K리그1 일부 구단은 광주의 '몰수패'를 주장하는 등 여파가 심각했다. 그럼에도 협회는 잘못했다는 사과는커녕 "유감"이라고 표현하며 그전과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였고, 언론을 넘어 팬들의 비판 수위는 더 올라갔다. 정 회장 집권 이후 매년 정부 지원금 300억 원 이상을 받으며 1,000억 원 이상의 큰 돈을 주무르는 축구협회를 비판하는 건 과도하던 안 하던 국민과 언론의 당연한 권리다.
축구협회의 그늘 아래서 관리를 받고 혜택을 누리는 선수가 감독과 협회를 두둔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협회를 둘러싼 축구계의 복잡한 상황과 이해관계 등에 무지한 채 언론을 향해 '비판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발언은 공감을 살 수 없다. 무엇보다 대표팀의 막내급 선수가 해야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치기 어린 경솔함으로 보일 뿐이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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