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소년이온다] 유리는 깨지지 않는다 [독후감 학생부 동상 수상작]

정유진 기자 2025. 6. 12. 17: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정원 양(담양고)

처음 이 책을 접했던 건 3년 전, 도서부 활동을 통해서였다. 그 당시에는 한강 작가가 누구인지,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어서 그저 활동 때문에 읽는다는 의무감 하나로 책을 펼쳐보았던 기억이 난다. 광주와 가까운 담양에 살면서, 어릴 때는 5·18민주화 운동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어도 그 당시의 이야기를 선생님들과 부모님께 드물게 전해 들었다. 내게는 그저 듬직해 보이기만 하던 선생님이, 아빠가, 기억을 더듬어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주시던 모습이 왜인지 씁쓸하고 낯설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왜 5월의 광주에서는 슬픈 울음소리만이 가득한지, 왜 아직까지도 그 슬픔을 게워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지.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내게 있던 드물던 기억을 세세히 꿰어볼 수 있었다.

"5·18은 폭도들이 일으킨 사건 아닌가요?"

도서부 활동을 하며 선생님이 이 책에 대해 설명해 주시다가, 전남권이 아닌 지역 학교에서 일하실 때 한 학생이 5·18을 폭도들의 소행이냐 물었다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아예 모르는 것보다도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더 무식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도 5·18을 빨갱이 짓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요즘 SNS를 보다 보면 5·18운동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도 갖추지 않은 채 그저 지역감정을 가지고 비하의 말을 전하는 이들도 많이 보인다. 특히나 옛사람들에게는 5·18이 더 많이 왜곡된 채로 남아있어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광주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욕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진실이 바로 잡히지 못해 아직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는 그저 빨갱이로 기억되고 있을 5·18의 영웅들께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모르는 이들보다도 그 진실을 바로잡지 않고 숨기기에 급급했던 이들에게 더 큰 분노를 느꼈다.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구나를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며 수없이 했던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나도 저 당시 광주에 살았었다면 동호처럼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열여덟인 나로 생각을 해보아도 쉽게 동호처럼, 진수처럼 나서 총을 들 용기는 없었을 것 같다. 나서더라도 은숙과 선주처럼 도청에서 시신관리를 돕거나 데모를 했겠지. 그도 못한 채 무서워서 방 안에 들어가 벌벌 떨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학생부 동상 김정원 양(담양고)

80만발의 총을 가지고 그 총구를 시민들에게 겨눈 계엄군을, 스무살 남짓이던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살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쥐고도, 쏠 수 없는 총을 나눠가졌음에도, 도청에 남을 수 있던 건 모두 양심 하나 때문이었다. 죽은 이들만 보면 5·18은 슬프기만 한 일이다. 하지만 깨끗하고도 무서운 양심, 그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5·18은 그저 슬픈일이 아닌 대단하고 숭고한 일이 된다. 잊지 말아야하는, 잊어서는 안되는 기억이 된다.

유리는 잘 깨진다. 가시광선도 잘 흡수하지 못해 여리디여려 투명하기만한 벽은 쉽게 금이 간다. 동호의 말처럼 우리는 저마다의 유리를 마음에 품고 있다. 빛을 흡수하지 못한 채 다 통과하게 두는, 투명할 뿐인 유리는, 계엄으로부터 받은 그날의 고통을 마음속에 겹겹이 쌓아놓은 그날의 시민들의 모습과 같다.

하지만 유리는 녹일 수 있다.

녹이고, 모양을 바꾸고, 다시 굳혀 몇 번이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깨졌지만 깨지지 않았다.

유리는 강하다. 그날을 살아온, 지금을 버텨온 이들 또한 그렇다.

지난 12월, 우리는 또 한번의 계엄을 마주했다. 모두가 혼란과 고통에 빠졌지만 다시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누군가는 외면해도 누군가는 바른 사실을 밝혀야 한다. 외쳐야 한다. 기록해야 한다.

독서록을 작성하며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을 오랜만에 꺼내 읽었다. 독서록을 작성하기 전에 또 한 번 다시 읽었다. 세 번째로 읽은 건 독서대회를 위한 의무감 따위가 아닌 그저 읽고 싶어서였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자꾸만 보인다. 동호가, 정대와 정미가, 은숙과 선주가, 진수가, 영재, 성희가 보인다. 5·18의 모습이 보인다. 그날의 모습이 더 자세하게 꿰어진다.

소년이 오고 있다.

깨끗하고도 무서운 양심을 가진 채 나를, 우리를 응시한다.

동호와 그날 도청을 지키던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민주주의를 지켜내주어 고맙다고. 잊지 않겠다고.

너의 유리는 결코 깨지지 않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