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기에 의료 서비스·건보 이용하자” 돌아오는 老年의 재외동포

박강현 기자 2025. 6. 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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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국적제 활용 위한 국적 상실 신고 늘어나
전문가들 “우리나라 위상 올라간 덕분”
일러스트=이철원

올해 졸수(卒壽·90세)인 A씨는 1970년대에 미국인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결혼 이민’을 가 시민권을 취득했다. 얼마 전 남편이 별세하자 A씨는 한국행을 고민했고, 가족들의 오랜 설득 끝에 최근 귀국했다. 이후 A씨는 법무부의 ‘65세 이상 복수 국적제’를 활용하기 위해 지난달 국적 상실 절차를 시작했다. 복수 국적제의 전제가 되는 한국 국적 회복을 위해선 국적 상실 신고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미국 시민권을 딸 당시에 하지 않아 뒤늦게 한 것이다.

외국에서 오랜 기간 시민권자로 살아오다, 노년기에 귀국한 뒤 국적을 회복해 65세 이상 복수 국적제를 활용하려는 재외동포들이 늘고 있다. 법무부는 2011년부터 65세 이상의 외국 국적 동포에겐 ‘외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한국 국적을 회복해 국내 거주 등을 허용하는 복수 국적제를 시행 중이다. 이전에는 우리나라 국적을 회복하려면 외국 국적을 포기해야 했지만, 이제는 외국 국적도 유지하면서 다시 ‘한국인’으로 한국에서 생활하며 인생 ‘황혼기’를 보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국적 회복 위해선 국적 상실 신고 먼저...최근 큰 호응

젊은 시절 함께 캐나다로 이민 가 수십 년을 산 60대 후반 B 부부도 최근 한국으로 돌아와 친척들이 모여 있는 고향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기로 결심했다. 캐나다보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은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는 게 낫겠다는 판단도 했다고 한다. B 부부는 복수 국적을 염두에 두고 국적 회복 절차를 밟기 위해 마찬가지로 국적 상실 신고를 했다.

인천국제공항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1

한국 국적을 다시 취득하기 위해 A씨와 B 부부처럼 국적 상실 신고를 하는 노년층은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우리나라 국적법은 자진해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외국 국적을 취득한 때 한국 국적을 상실하고, 이를 법무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정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신고제’이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해당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국가가 이를 알 방법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특히 지금의 노년층이 주로 해외로 나간 1960~1990년대에는 해외 시민권을 받은 뒤에 별도로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국적을 잃었다는 ‘지각 신고’가 증가하는 이유다.

12일 본지가 확보한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국적을 상실한 60~69세는 1788명이었는데, 작년엔 4584명으로 약 2.6배 올랐다. 70~79세도 2015년(813명)에 비해 작년(1981명)에 2배 이상 증가했다. 80~89세 역시 2015년(195명) 대비 작년(488명) 약 2.5배 늘었고, 90세 이상 신고자도 2015년엔 35명뿐이었지만 작년엔 125명에 이르렀다.

전체 국적 상실자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작년에 약 31%(2만2887명 중 7178명)를 기록해 2015년의 17%(1만6595명 중 2831명)보다 14%포인트 가량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층 사이에서 ‘65세 이상 복수 국적제’가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셈이다.

관련 사건 경험이 풍부한 양연주 행정사는 “복수 국적을 인정해 주는 제도가 도입된 지 오래되지 않아 최근에 이 제도를 알게 돼 활용하려는 해외 동포들이 많다”며 “특히 가족이 있는 분들이 한국에 돌아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전문가들 “세계적인 의료·건강보험 혜택 덕분...경제 활성화에도 도움될 것"

이들은 왜 모국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여러 편의 시설·제도 가운데 특히 의료 시설과 건강보험 혜택 등을 꼽는다. 또 이들의 ‘귀환’이 궁극적으로 국가 경제와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 시절 이들이 한국을 떠날 당시에 한국은 최빈국 중 하나였는데, 지금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고 의료 인프라는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의료 수요가 커지는데, 한국만큼 접근성이 좋고 비용이 합리적인 곳이 없다. 이들이 돌아온다는 건 그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구 교수는 나아가 “오랫동안 이민 생활을 하면서 소수민으로서 차별도 경험하는 등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며 “인생 ‘말년’은 익숙한 곳에서 친숙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구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지목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지낸 김우현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돌아온 고령의 동포들이 사회보장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소비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국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면 국가에 실질적인 이익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국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관련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러한 복수 국적제를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도 있다. 국적 상실 및 회복 과정에서 이들은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고 국내 거소 신고 등을 해야 한다. 국내에서 외국인의 지위를 포기하고, 우리나라에 영주할 목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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