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올드보이'들이 언론개혁정책집단 출범한 이유
[인터뷰] 이강택 언론개혁정책집단 세움 준비위원장
전직 언론노조 위원장 주축… 첫 세미나서 징벌적 손배제 도입 제안
"TV수신료·연합뉴스 정부구독료 등 언론계 꺼려온 사안 논의하겠다"
[미디어오늘 윤수현, 박재령 기자]

'언론계 올드보이'라고 할 수 있는 최상재·이강택·강성남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언론개혁이라는 목표를 위해 뭉쳤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언론개혁정책집단 '세움'을 출범했다. 미디어 기구 개편·공영언론 재원 모델 개선·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언론계 현안 해결을 위해 언론인과 연구자 등을 한데 모으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안건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는 것을 넘어, 전문가들의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점에서 기존 단체와 차이가 있다.
세움에는 전 언론노조 위원장뿐 아니라 이근행 MBC PD 등 현직 언론인, 김춘효 미국 서던 일리노이 대학교 박사·탁종렬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등 연구자도 참여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미디어 비정규직 문제 해결·지역언론 지원 등을 언론개혁 과제로 선정한 세움은 가짜뉴스 규제 등 찬반이 첨예한 주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고 있다. 지난달 22일 세미나에서 이강택 세움 준비위원장이 조건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9일 이강택 준비위원장을 만나 세움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KBS 방송문화연구소 소장과 TBS 대표를 지낸 이 위원장은 세움을 중심으로 언론개혁에 대한 언론계 합의점을 찾고, 정책 변화를 끌어내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 위원장은 TV수신료 사용처 문제, 연합뉴스 정부구독료 적절성 등 언론계가 불편해할 수 있는 안건을 가감없이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 위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언론노조 위원장을 지내고 언론사 대표·임원 등을 역임한 원로 언론인들이 조직을 구성한 것에 대해 “세력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언론개혁이라는 안건 발의자로 봐달라”고 했다. 아래는 이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세움은 어떤 조직인가. 기존 언론단체와 차이점은.
“세움은 일반적인 언론단체와 차이가 있다. 언론을 연구하는 학술집단이 아니다. 오직 언론개혁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과거 정부에서 언론개혁이 실패했던 이유를 보면 전략적으로 선명하지 못했고, 과제도 합의하지 못했다. 언론개혁에 대한 요구만 평면적으로 나열됐다. 하지만 언론개혁 실행을 위해선 문제를 입체적으로 봐야 하며, 이를 위해선 학계뿐 아니라 언론 현업인, 시민단체, 정치권 등이 결합해 전략을 짜야 한다. 전문가들이 결합해 논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언론개혁이라는 산만 보고 걷는 게 아니라,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려 한다.”
- 문재인 정부에서도 언론현업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언론개혁을 요구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때와 차이점이 뭔가.
“당시 상황을 보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오해가 발생하고, 서로 목소리만 커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 방송3법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부작용도 꽤 있을 수 있다'는 대통령 한마디에 미뤄졌다. 당시를 생각해보면, 제도를 바꾸자는 논의를 하는 것을 넘어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 사전에 토론해야 했다. 이렇게 언론개혁이 실패하면서 불신이 커지게 됐고, 미디어 판도가 급변하면서 효능감도 저하됐다. 세움이 여러 의견을 한데 모으는 라운드 테이블을 마련할 계획이다. 총의를 모의는 것을 우리의 역할로 하려 한다.
기존과의 차이점도 분명하다. 세움은 성역 없는 논의를 할 예정이다. 예컨대 그동안 KBS 수신료와 관련된 불신, 연합뉴스 정부구독료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등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KBS나 연합뉴스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언론개혁을 주장한 언론현업인들이 정치적 상황이 좋아지면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그동안 꺼려왔던 사안을 이야기하려 한다. 큰 그림으로 사안을 조망하면서 경로를 잡는 역할 말이다.”
- 전임 언론노조 위원장 3명이 조직의 중심이 됐다. 위원장을 역임한 지 10년이 지났고, 당시와 현재의 언론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조직 구성이 식상하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우리를 '올드보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3명은 언론개혁 문제에 대해 가장 선두에서 논의해온 사람들이다. 전체적인 틀도 잘 알고 있고, 언론노조 위원장 역임 후 현업에서도 활동했다. 끝없이 언론개혁에 대해 고민해왔고, 진정성도 있다. 특히 우리가 세력화를 위해 '세움'을 만든 것도 아니다. 세 확장을 원하지도 않고, 우리가 '모여라'라고 한다고 다들 모이는 시대도 아니다. 단지 3명이 안건을 발의했다고 봐주면 된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무엇인지, 그리고 언론개혁을 어떻게 성공시킬 수 있을지 논의하기 위한 안건 말이다.”

- 세움이 제안한 '언론개혁 10대 과제'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포함됐다. 과거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 현업단체도 반대했던 사안이다.
“단순히 징벌적 손해배상제만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한 혐오표현 규제,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활성화 등 대안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공직자 등은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등 조건부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지금까진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된 경향이 있었다. 여러 정보를 놓고 논의하면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세움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 공영방송 이사 수를 확대하고 추천권을 다양화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도 화제다.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하고, 양쪽 정치진영은 충성도를 기준으로 사람을 선별해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사태 이후 이런 문제를 정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본다. 정치권이 자의적으로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언론계가 그 기회를 살릴 준비가 됐을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이 다양화된다고 해서 끝일까. 엄정한 내부 검증 절차나 기준이 필요하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는데 잡음이 나온다면 전체 시스템이 망가지게 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물론 중요하지만, 시스템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 윤석열 정부에서 결정된 '수신료 분리징수'가 다시 정상화됐다. 월 2500원의 수신료, 인상해야 한다고 보는가.
“궁극적으론 그래야 한다. 하지만 'KBS의 변화'라는 전제조건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KBS가 수신료를 바탕으로 어떤 역할을 해나갈지 상세히 설명하는 책무 이행서를 공개해야 한다. 선언적인 이행서가 아니라,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서. 그리고 이를 사회적으로 평가받게 하고, 이걸 바탕으로 시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지금 상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재원만 늘린다면 불신만 커진다. 구체적인 약속 없이 당위론적으로 수신료 인상을 요구한다면 수신료는 영원히 오르지 않을 것이다.”
- '비정규직·프리랜서 차별 해소 및 노동권 보장'도 과제로 선정했는데, 미디어 업계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원인은 뭘까.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아닐까. 구조조정에 대한 압박을 '외주'에 전가했고, IMF 이후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전체 산업계에 해당하는 이야기인데, 미디어업계도 전혀 다를 바 없다. 해결책이 명확하진 않다. 현재 비정규직 문제의 대안은 주로 '정규직화'로 귀결되는데, 현실적이진 않다. 따라서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차별이나 착취 같은 문제를 줄여나가고, 급여·복지 등 불합리한 문제를 점차 개선해나가야 한다. 비정규직 처우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공적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정규직화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 TBS 사장으로 재직할 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시도했지 않은가.
“언론노조 위원장으로 있을 때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하고 싶었지만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핑계로 들릴 수 있지만 미디어렙법에 이어 공영방송 파업이 있어 신경쓰지 못했다. 이후 서울시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가 나왔고 언론노조 위원장에 있을 때 못한 일을 TBS에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사장으로 가게 됐다. 당시 TBS에서 방송작가를 정규직화하는 등 성공한 부분이 있지만, 이 방식을 모든 방송국에 적용할 순 없다. 재원이 뒤따라야 하는데, 당시 TBS는 서울시의 지원이 있었기에 정규직화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정규직화 당시 승진 체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인사 평가 기준은 무엇인지 등 엄청난 과제들이 따라왔다. 문제를 너무 쉽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어려움에 대해서도 논의해봐야 한다.”

- 사장으로 있었던 TBS에 위기가 찾아왔다. 현재 정상적인 방송활동이 불가능하다.
“실질적으로 폐국 과정으로 접어들었다. 유례 없는 폭압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분노하지 않 수 없다. 그러나 TBS를 과거처럼 되돌릴 수 있을지. 이전으로 돌려놓기 쉽지 않고, 돌려놓는다고 해도 취약점이 여전할 것이다. 광고도 아직 허용되지 않는 등 시스템도 완전히 정비되지 않았고. TBS 정상화가 직원들에겐 매우 절박한 과제지만 시민사회 모두 충분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이나 시의회 구성이 바뀌면 변화가 생길 수 있지만, TBS 정상화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압도적이지 않다면 시장도 시의회도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결국 TBS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선 내부 구성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TBS가 왜 필요한지, 역할이 무엇인지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시정 감시 프로그램을 만들어 유튜브에서라도 송출할 수 있지 않을까.”
-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어떻게 개편해야 하는가.
“뉴스 플랫폼이 다원화됐는데, 왜 유독 방송에 대해서만 공정성 심의를 해야 하는가.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하기 때문에? 설득력 없는 철지난 논리라고 본다. 방송심의 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라고 본다. 적어도 공정성 조항 심의는 폐지해야 한다. 광고심의나 통신심의만 남기고, 방송도 선정성 등 일부에 대해서만 심의해야 한다.”
- 끝으로, 세움을 바라보는 언론 업계에 한 마디 부탁한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움이 판을 움직일 욕심도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경험도 많고, 시간도 많고. 현업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보니 형세가 어떤지 잘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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