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맡긴 은행 '탈석탄' 실천하고 있나···감시하고 압박하려면?
'탈석탄 선언' 금융회사들, 신규 투자만 중단
선언하기 전 투자는 유지 중인 곳이 대부분
탄소배출량 분석하려니 산출 기준 제각각
"은행들 탈석탄 행보 꾸준히 감시·압박해야"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얼마 전 청소년기후행동 홈페이지에서 흥미로운 문구를 봤어요. "청소년기후행동의 주거래 은행 및 CMS(자금관리서비스) 거래는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석탄 발전 사업에 투자하지 않는 은행을 선택해 이용하고 있습니다."
저도 따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 청소년기후행동에 연락해 어느 은행을 이용하는지 물었습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2019년 전북은행 계좌를 개설해 지금까지 쓰고 있다"며 자세한 전말을 들려줬어요.
청소년기후행동은 계좌 개설에 앞서 국내 은행을 일일이 찾아 석탄 발전 사업 투자 여부를 물었다고 해요. "무슨 그런 기준으로 계좌 개설을 하냐"는 질문까지 들어가면서요. 당시 국내 은행 대다수가 석탄 발전 사업에 투자 중이었는데, 관련 투자를 하지 않던 전북은행을 어렵게 찾아냈다고 합니다. 전북은행 측은 "(2019년 이후) 현재까지 석탄 발전 산업에 투자한 적이 없다"고 전했어요.
소급 적용 안 되는 '탈석탄 선언'... 석탄 사업 투자는 진행 중

청소년기후행동이 국내 은행을 이 잡듯 뒤진 후, 2020년에야 KB금융그룹이 처음으로 '탈석탄'을 선언했습니다.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등 석탄 발전에 대한 신규 투자를 전면 중단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친환경 투자를 늘리겠다고 약속한 것이죠. 이어 다른 금융그룹들도 줄줄이 탈석탄을 선언, 2022년 6월 기준 탈석탄을 선언한 국내 금융기관 수는 104개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탈석탄 선언은 대부분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금융그룹의 탈석탄 현황을 추적해온 고동현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장은 "1, 2년 전까지 확인하기론 탈석탄 선언을 한 곳 대부분이 실제로 선언을 지키고자 신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탈석탄 선언 이전부터 해왔던 기존 투자는 계약상 문제 등을 이유로 유지 중인 곳이 많다"고 했어요.
결국 탈석탄 선언을 지킨다는 금융기관들도 여전히 석탄 발전 산업 투자를 지속 중이란 건데요. 한국사회투자포럼이 발간한 '2022 화석연료백서'에 따르면 기존 투자를 회수할 계획을 밝힌 곳은 2022년 기준 6곳(AIA생명·DB손해보험·미래에셋증권·하이투자증권·IBK기업은행·서울보증보험)에 불과했어요. 시민단체 '석탄을 넘어서'는 "사실상 국내에 추가로 석탄화력발전소가 세워지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신규 투자 중단은 누구나 선언할 수 있는 방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금융기관들은 신규 투자 중단에 그치지 않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힘쓰고 있단 입장이에요. KB금융그룹 관계자는 "2030년까지 ESG 상품·투자·대출 규모 50조 원 달성을 목표로 ESG 통합 등 관련 상품을 지속 확대하고 ESG 프로젝트 투자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죠.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뜯어봐도... 기준 제각각, 파악 어려워

내가 쓰는 은행이 탈석탄 선언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직접 알아볼 순 없을까요? 문진수 사회적금융연구원장과 함께, 유엔 산하 기구 탄소중립은행연합(NZBA)에 소속돼 있는 우리나라 주요 금융그룹(하나·신한·KB·우리·NH 농협) 5곳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2023년 기준)를 들여다봤습니다.
탄소배출량은 ①사업장에서 직접 배출하는 탄소량 ②외부 에너지원 사용에 따라 간접 배출하는 탄소량 ③기업의 가치 사슬 전 과정의 간접 배출 탄소량으로 구분돼요. 다행히 ①은 5곳 모두 큰 이상이 없었지만 ②, ③부터 기업 간 탄소배출량 차이가 이상할 만큼 큰 폭으로 벌어졌습니다.
탄소배출량 산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현황 비교가 사실상 안 되는 것이죠. 예컨대 ②의 산정 방식은 △기업이 위치한 지역을 기준으로 하는 '지역 기반'과 △기업이 구매한 에너지 배출량을 기준으로 하는 '시장 기반'으로 나뉘는데요. 두 방식을 구분해 적은 곳은 신한금융그룹 한 곳뿐이었어요. ③ 역시 금융배출량(대출·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발되는 탄소배출량)을 포함한 곳과 아닌 곳이 섞여 있었고요.
문 연구원장은 "탄소배출량 작성에 대해 표준화된 약속이 없다"며 "즉, 각 기업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적용해 산출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어요. 이어 "심지어 어떤 기준을 적용한 건지 안 적어두는 곳도 있다"며 "이 데이터 자체를 온전히 신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은행 역시 지난해 7월 '국내 은행의 금융배출량 관리 현황 및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은행들이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감축 전략을 자율 공시하고 있지만 금융배출량 측정 방법 등이 아직 개발 단계에 있다"며 "시점 간, 은행 간 비교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진단했어요.
탈석탄 선언을 넘어... '2030년 감축 목표' 이행 추적해야

탈석탄 현황 공시가 표준화된 지표로 거듭나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요. 문 연구원장은 "기업이 알아서 개선하도록 바랄 수만은 없다"며 "소비자들의 문제의식, 언론의 감시 기능이 강화돼 금융 업계를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 당장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기후행동이라 함은 결국 '국내 금융기관의 탈석탄 행보에 지속적으로 관심 갖기'인 것이죠.
이용 중인 곳 홈페이지를 방문해 1년에 한 번씩 발간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비록 탄소배출량 산출 기준은 갈 길이 멀지만, ESG 관련 정보를 포함해야 한단 점에서 '얼마나 환경에 진심인지'는 엿볼 수 있거든요. 고 팀장도 "각 기업이 탄소 중립 정책을 얼마나 마련했는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잘 이행 중인지 시민들이 다양하게 살펴보는 게 탈석탄 확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어요.
탈석탄은 선언보다 실천이 어렵고, 이를 꾸준히 감시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죠. 은행들의 탈석탄 행보가 누구에게나 더 투명하게 보이는 날까지, 지금 내가 쓰는 은행을 가만히 지나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요?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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