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배낭 골퍼' 이일희가 사는 법

방민준 2025. 6. 12.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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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숍라이트 LPGA 클래식 우승에 도전했던 이일희 프로. 사진제공=Getty_LPGA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10세 때 골프 배우기 시작. 아버지가 골프 커리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침. 취미는 사격, 드럼, 롤러브레이드 타기, 등산. 프로골퍼가 안 되었으면 군인이 됐을 것. 프로골퍼 이후 배낭여행자(back packer)가 되어 자연 탐험에 나설 계획.>



LPGA투어 홈페이지 선수소개 페이지에 나온 이일희 선수(36)의 바이오그래피 내용이다. 그의 지나온 발자취와 앞으로 갈 길이 압축돼 있다.



 



그러고 보니 이일희의 LPGA투어 생활은 배낭여행자(back packer)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그는 마음 가는 대로 발길을 옮기는 배낭여행자처럼 LPGA투어에 임했다. 꼭 우승해 성공한 모습을 보이겠다는 욕심 없이 LPGA를 떠돌았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2006년 KLPGA투어로 프로에 데뷔한 이일희는 2009년 LPGA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에 도전, 20위로 통과했다. 풀시드가 아닌 제한적인 출전 기회가 주어지는 카테고리11로 미국 무대에 섰다.



신지애, 박인비 등 1988년생 동갑내기들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2010년 LPGA 투어챔피언십에서 공동 7위에 오르고 그해 신인상도 받았다. 2013년 5월 퓨어실크 바하마 LPGA클래식에서 생애 첫 승을 거뒀다. 당시 그는 국산 볼빅의 컬러 볼을 사용해 우승했다. 국산 골프 볼로 LPGA투어에서 우승한 첫 사례다.



 



시작이 화려하지 않았듯 이후 LPGA투어 성적도 부진했다. 풀시드가 아니라 출전 기회도 적었다. 그는 월요예선을 거치거나 역대 LPGA투어 우승자 자격으로 출전 기회가 주어지는 대회에만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상금 순위도 20~40위권에서 100위권 이하로 떨어졌다. 어깨 부상까지 겹쳐 2019년부터 투어카드를 잃고 대학(이화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딴 뒤 잠시 다른 업종을 경험하기도 했다.



 



지난 7~9일 미국 뉴저지주 시뷰 베이코스에서 열린 숍라이트 클래식도 그런 대회 중 하나였다. 세계 랭킹 1426위의 이일희가 200번째로 출전한 LPGA투어 대회였다.



 



이일희는 첫날 공동 선두, 둘째 날 단독 선두로 치고 나서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마지막 3라운드에서 공동 2위에 1타 앞선 단독선두로 출발했으나 7번 홀까지 3타를 잃으며 한때 12위까지 떨어졌다. 9번 홀(파5) 첫 버디에 이어 후반에 버디 5개로 반등했으나 1타 차이로 컵초에게 우승을 내줬다.



 



이일희는 모처럼 준우승 상금으로 16만4136달러(약 2억2300만원)를 챙겼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10위 안에 든 것은 8년 8개월 만이고 컷 통과는 1년 8개월 만이다. 



 



경기를 끝낸 뒤 가진 이일희의 인터뷰 내용이 배낭여행자처럼 미련이 없다. "떨렸지만 빨리 이겨냈고 잘 끝냈다"며 "TV에서 보던 컵초의 경기를 옆에서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굿샷' '나이스 퍼트'라고 컵초를 응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골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게 됐다며 "LA에 나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경기를 끝내자마자 그는 한국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심정을 SNS에 올렸다.



"대회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주는 집에 오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지난 2주간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US오픈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멋진 골프장에서 플레이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요. 지난주엔 제 LPGA 대회 라베(라이프베스트 기록)를 또 한 번 기록했고, 3일 연속 언더파를 쳤고, 보기보다 버디를 훨씬 많이 해서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날 3번 홀 그린 옆에서 어이없이 공을 잃어버렸지만, 저는 그냥 "그게 골프지" 하고 툴툴 털어냈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제 스스로에게 저를 무너지게 두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일은 일어나는 거니까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매겨지는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 샷, 매 퍼트에 나의 모든 것을 쏟는 그 과정을 진심으로 즐겼어요. 그래도 마지막 날 선두로 나간 경험은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많은 응원과 관심,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는 관심 받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저를 응원하는 모습에 기뻤어요. 제가 한 사람에게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게 제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자아실현도 물론 크게 의미 있지만 역시 골프는 일요일 돈내기 골프가 재밌네요. 작은 내기라도 하시길 추천합니다. 당신의 골프에 대한 열정과 고민이 저를 고민하게 만들고, 결국 저를 더 성장하게 할 거예요."



 



과연 세계 오지를 누비는 배낭여행자를 꿈꾸는 사람답다. 결과에 연연해하는 모습이 아니다. 이일희는 숍라이트 LPGA클래식 준우승으로 세계 랭킹이 1426위에서 1208계단이나 뛰어 218위에 올랐으나 달라진 게 없다며 담담하다. 절친인 신지애(37)로부터 "너의 활약이 내게 큰 영감을 줬다"는 메시지를 받고 기쁜 정도였다.



대회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이일희야말로 진정한 골프 방랑자가 아닐까.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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