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2030 남성 비난이 가리는 것
여성 청년 표심은 공론장서 소외
'불평등 조장' 기성세대 책임 은폐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980년대 극장가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 16세 비행 소녀가 부모의 몸을 던진 노력과 처절한 훈육 끝에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이다. 대선이 끝나자 ‘수렁에서 건져야만 하는 우리 아들들’ 타령이 쏟아진다. "20대와 30대 남성들이 단체로 '극우 수렁'에 빠졌다"며 개탄하고 이유를 찾느라 여기저기서 난리다.
지상파 방송3사의 대선 출구조사를 보면, 20대와 30대 남성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에게 37%와 26%씩 표를 몰아줬다. 20대 남성의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 후보 합산 득표율은 74%나 된다. 기성세대는 이들의 극우화와 우경화를 이해하려 애쓴다. 통용되는 서사도 이미 만들어져 있다. "열심히 살아도 희망이 없는 현실에의 좌절과 성공한 남성이 돼야 한다는 가부장적 압박에 이중으로 치인 나머지 약자들에게 화풀이하고 사회적 연대를 경시하게 됐다." 대책도 나와 있다. "부단히 계몽하거나 재정·정책으로 격려해 삶을 낙관하게 해야 한다."
불평등한 세상에 불만을 품은 젊은 남성의 극우화와 우경화는 세계적으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트럼프 재등장도, 유럽 극우 정당 득세도 이들의 지지가 최대 동력이다. 이번 대선에 나타난 2030 남성 표심을 거듭 분석하는 데 힘을 쏟는 사이, 2030 여성 표심은 별로 주목받지 않았다. 대선에서 더 튀는 선택을 한 건 2030 여성인데도 말이다.
2030 여성 표심은 방황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의 최대 지지층인 동시에 이준석 후보에게도 40대 이상 모든 세대 남성보다 표를 많이 줬다. 20대와 30대 여성 사이에서 권 후보 득표율은 각각 5.9%와 2.1%로, 모든 성별·세대에서 가장 높았다. 그러나 권 후보가 '성평등 대통령'을 공언하고 진보적 의제를 앞세운 것을 감안하면, 뜨겁다고 할 만한 지지는 아니었다. 이 후보의 20대 여성 득표율이 10.3%, 30대 여성 득표율이 9.3%인 것은 반전이었다. 차별·갈라치기 정치의 아이콘인 데다 TV토론에서 '그 발언'을 한 이 후보를 2030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심판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권 후보는 왜 2030 여성 득표율에서 이 후보에게 밀렸을까.
이에 대한 분석이 공론장에서 상대적으로 뒷전인 것에 심오한 이유는 없다. "남성의 행동과 생각이 더 중요하고 정치적·학술적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극우·혐오 정치 연구 권위자인 카스 무데 미국 조지아대 교수·영국 일간 가디언 칼럼)이다. 이런 편향성은 여성의 정치적 소외로 끝나지 않는다. 분노를 드러내는 극우 남성의 폭력적 방식이 '그럴 만한 것'으로 치부돼 청년들의 '악해질 용기'를 북돋는다.
2030 남성 극우·우경화 담론에 집중하는 것은 보다 본질적 질문을 은폐한다. "청년 극우화의 배경인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구조와 제도를 만들고, 다지고, 이용한 것은 누구인가." 기성세대다. 그 구조와 제도의 혜택을 오랜 기간 누린 남성의 책임이 더 클 것이다. 개개인은 깨어있을지 몰라도, 기성세대가 쌓아올린 세계는 여전히 후지다. 이재명 대통령이 구성 중인 대통령실과 행정부는 아직까지 5060 남성 중심이고, 가장 진보적이라는 방송사의 대선 개표방송 출연자도 남성 일색이었다. 이런 세계에서 2030 남성의 차별·혐오를 꾸짖기만 하는 것은 유체이탈적 모순이거니와 이들의 분노가 또래 여성 때문이라는 착시를 유도한다.
혐오, 차별, 불평등에 기생하는 정치는 고사시켜야 한다. 청년들이 극우에 기웃거리지 않는 세상, 남성과 여성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속단도, 왜곡도 하지 말고 정확한 진단부터 해야 한다. 2030 남성을 어루만지는 것으로도, 손가락질만 하는 것으로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
최문선 논설위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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