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꺼낸 바다 <42> 집요한 탐구와 따뜻한 시선 사이 ‘우해이어보’

고지용 국립해양박물관 전시기획팀 학예사 2025. 6. 11. 19:2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물고기 백과사전은 무엇일까? 아마 많은 이들이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1803년 담정 김려(藫庭 金鑢, 1766~1822)가 쓴 '우해이어보'다.

그런데도 그는 왜 진해의 물고기를 기록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다 보면 김려의 기구한 삶을 만나게 된다.

시의 주제는 물고기지만 그 시구 속엔 진해 어촌 사람들을 바라보는 김려의 따뜻한 시선이 스며 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진해 특이한 물고기 다룬 ‘어류백과’

우리 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물고기 백과사전은 무엇일까? 아마 많은 이들이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1803년 담정 김려(藫庭 金鑢, 1766~1822)가 쓴 ‘우해이어보’다. ‘우해(牛海)’는 경상도 진해(현 경남 창원시 진동면 일대), ‘이어(異魚)’는 특이한 물고기, ‘보(譜)’는 족보를 의미한다. 즉, ‘우해이어보’는 진해에 사는 특이한 물고기들을 정리해 놓은 어류 백과사전인 셈이다.

‘우해이어보’는 김려의 시문집인 ‘담정유고(潭庭遺稿)’ 권8에 수록되어 있다.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흥미로운 점은 김려가 진해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는 왜 진해의 물고기를 기록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다 보면 김려의 기구한 삶을 만나게 된다. 김려는 15세에 국립학교인 성균관에 입학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성균관 유생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김려는 정조(正祖, 1752~1800)로부터 “그대의 시는 금과 옥의 소리처럼 아름답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임금의 눈에 들 만큼, 김려의 재능은 남달랐다. 하지만 그저 순탄할 것만 같았던 그의 앞길은 1797년 8월, 강이천(姜彝天)과의 대화를 계기로 완전히 꼬여버렸다. 김려는 동생, 강이천 등 여러 선비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유교 불교 도교 천주교에 대해 토론했다. 그러나 그날의 대화가 새어나가면서 문제가 불거졌고, 강이천의 평소 부적절한 언행까지 빌미가 되어 두 사람 모두 고발당했다. 결국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죄목으로 강이천은 흑산도로, 김려는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그는 시를 짓고 글을 쓰며 묵묵히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1801년 천주교 신자를 처벌한 신유박해가 일어나며 또 한 번의 시련이 그에게 닥쳤다. 김려는 천주교와 관련이 없었지만, 천주교 신자 강이천과 교류했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진해로 유배지를 옮기게 되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억울해서 세상이 싫어질 법도 하다. 그러나 김려는 진해에서 마음의 문을 닫지 않았다. 어촌 사람들과 어울리고, 물고기를 관찰하며, 질문하고 또 기록했다. 직접 낚시를 나가 며칠씩 물고기의 습성, 생김새를 관찰하고 약효까지 빠짐없이 적었다. 김려의 집요한 탐구는 사물을 연구하는 박물학자로서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우해이어보’에는 ‘자산어보’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각 물고기 설명 뒤에 붙은 짧은 시(詩), ‘우산잡곡(牛山雜曲)’이다. 시의 주제는 물고기지만 그 시구 속엔 진해 어촌 사람들을 바라보는 김려의 따뜻한 시선이 스며 있다. 그는 물고기를 낚는 어부들의 분주한 손끝과 생선을 파는 아낙네들의 일상을 시에 담아 200여 년 전 진해 어촌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 풍경 중 한 장면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다락배 선 나루에 부슬비 내리고 / 樓船津上雨霏霏(누선진상우비비)

대숲에 소슬한 바람이 일 때 / 淡竹蕭穇護石機(담죽소삼호석기)

삿갓 쓴 낚시하는 노인, 시작부터 좋았던지 / 笋笠釣翁端的好(순립조옹단적호)

교화 꽁치 어깨에 메고 돌아오네 / 蕎花魟鰣荷肩歸(교화홍시하견귀)

※ 국립해양박물관·국제신문 공동 기획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