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퇴보하는 한국 남자골프. 세계 아마 팀 선수권 출전조차 적신호

한국은 지난해 파리올림픽에서 단체 구기종목으로는 여자 핸드볼만이 유일하게 본선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나마 예선 탈락의 수모를 떠안았습니다.
과거 올림픽 동메달을 따냈던 여자 배구나 4강 신화를 연출했던 여자 농구도 올림픽과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남자 축구의 올림픽 출전 무산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인구 감소와 엘리트 스포츠의 위축에 구기종목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진단도 나왔습니다. 구기종목의 부진은 국민 사기와 올림픽 특수를 통한 내수 진작에도 악영향을 줬습니다. 과거 올림픽을 보면 야구, 축구, 배구 등이 국민적 관심과 함께 흥행을 주도했습니다. 한 스포츠 산업 전문가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치맥과 함께 장시간 경기를 즐기는 데는 구기종목만 한 게 없다. 양궁, 사격, 펜싱 같은 종목에서 아무리 메달이 쏟아져도 긴박한 1대1 승부를 보며 먹고 마시기는 쉽지 않다”라고 하더군요.
한국 구기종목의 침체는 이제 골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 남자골프는 세계 최고 권위의 아마추어 대회인 월드 아마추어 팀 챔피언십(WATC) 출전이 쉽지 않게 됐습니다. WATC는 팀 국가대항전입니다. 남자부(아이젠하워 트로피)와 여자부(에스피리토 산토 트로피)로 나뉩니다. 3명이 출전해 4라운드를 진행합니다, 매 라운드 성적이 좋은 2명의 점수를 합산해 성적을 가립니다.

<사진> 월드 아마추어 골프 팀 챔피언십이 열리는 싱가포르 타나 메라CC 탬파인스 코스.
1958년 출범해 격년제로 열리는 아이젠하워 트로피는 올해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싱가포르 타나 메라 컨트리클럽 탬파인스 코스에서 열리는 데 한국 남자 선수들은 세계 랭킹에 따라 부여되는 출전 자격 커트라인에서 꽤 떨어져 적신호가 들어왔습니다.
대한골프협회(KGA·회장 강형모)에 따르면 WATC에는 36개국이 출전하는데 출전 자격은 1) 개최국, 2) 지난(2023년) 대회 상위 10개국, 3) 세계 아마추어 골프 랭킹(WAGR)에서 각국 상위 2명 선수 랭킹 합산으로 결정됩니다. 대륙 안배의 원칙도 있습니다. 대륙별로 최소 3개국을 보장해 주는 겁니다.

<사진> 대한골프협회 랭킹 1위 김민수. KGA 제공
한국 선수로는 11일 현재 김민수(17·호원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2학년)가 214위로 가장 높으며 그다음은 314위 유민혁(17·서강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두 선수의 랭킹을 합산해 매긴 출전 순위는 44번째에 불과합니다. 이 대회 출전선수는 7월 2일 현재 랭킹에 따라 결정돼 다음 날인 7월 3일 발표됩니다. 한국은 남은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랭킹을 최대한 끌어올려 36위 이내에 진입하거나 다른 경쟁국이 떨어지기를 기대해야 할 형편입니다.
한국은 1968년 처음 출전한 후 1988년 단 한 번을 빼고 지난 대회까지 매번 출전했습니다. 1988년 스웨덴 대회는 서울올림픽 기간과 겹치면서 불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상 개근하고 있었던 건데 이번에 건너뛸지 모릅니다.
과거에는 출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70개국 이상이 출전했기에 별도의 출전 자격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회를 주관하는 국제골프연맹(IGF)은 2023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대회부터 출전국을 36개로 축소했습니다. 2022년에는 71개국이 출전했으니 종전 대회보다 50% 이상 줄어든 겁니다.
애초 출전국 제한이 없을 때는 개최국의 2개 코스를 사용해 대회를 치렀습니다. 필자가 현지 취재하러 갔던 2006년 남아공 대회 때는 케이프타운 인근의 스텔렌보스와 드잘즈, 2개 코스에서 개최했습니다. 당시 남자 대표팀은 김경태 강성훈 김도훈으로 구성됐고, 여자대표팀은 유소연 최혜용 정재은이 나섰습니다.
이들 대표팀은 WATC를 통해 실력을 키운 덕분에 그해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에 걸린 금메달 4개를 휩쓰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때 대한골프협회 강화위원장으로 선수단 단장을 맡았던 강형모 유성CC 회장이 현재 대한골프협회 회장입니다.
하지만 WATC는 대회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개최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게 되면서 대회를 열겠다는 국가가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IGF는 국가별 출전선수 숫자를 줄인 데 이어 출전 국가 숫자까지 축소한 거죠.
한국 남자 대표팀은 지난 2023년 대회 때는 출전 자격을 따내 공동 25위 성적을 냈으나 이번에 출전조차 쉽지 않게 된 겁니다.

<사진> 한국 여자 아마추어 골프의 에이스 오수민. KLPGA 제공
남자 대표팀과 달리 한국 여자대표팀은 남자 대회보다 1주 먼저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10월 1일∼4일) 여자부 대회에 자동 출전권을 부여받았습니다. 2023년 대회에서 김민솔, 서교림, 이효송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한 디펜딩 챔피언이라서요. 설령 직전 대회 우승 팀이 아니더라도 자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입니다. 오수민이 11위이고, 정민서는 28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KGA의 한 관계자는 “우리 선수들의 실력 저하도 문제지만 아마추어 월드 랭킹 제도의 불균형 문제도 지적하고 싶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한동안 국제대회 출전이 여의치 못했다. 유럽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상위선수들이 대거 미국 학교로 유학을 떠나면서 상대적으로 한국 선수보다 랭킹을 높일 기회도 많아졌다”라고 말했습니다.
랭킹 산정 과정이 미국에서 활동하지 않는 경우 상위 랭커로 올라가기 힘든 구조가 됐으며 미국프로골프(PGA)투어나 미국 여자프로골프 투어에서 미국 대학(NCAA) 선수에게 특전을 제공하는 등 프로영역처럼 엘리트 아마추어 영역 또한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겁니다.

<사진> 박민지와 최혜진, 박현경(왼쪽부터)이 2016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 여자 아마추어골프 팀 선수권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로 활약한 세 선수는 프로 무대에서도 성공시대를 열었다. KGA 제공

<사진> 2012년 세계 여자아마추어 골프 팀 선수권에서 우승한 김효주, 김민선, 백규정. IGF 홈페이지
한국 여자대표팀은 1964년 시작한 에스피리토 산토 트로피에서 역대 5차례 정상에 오르며 세계 강국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1996년 첫 우승을 신고한 뒤 2016년에는 최혜진, 박민지, 박현경이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앞서 2012년은 김효주, 김민선, 백규정이 우승을 합작했습니다. 2014년 호주 우승을 이끈 주역은 교포 선수 이민지였죠.
반면 남자 대표팀의 최고 성적은 2012년 터키대회에서 거둔 동메달입니다. 당시 선수는 이창우, 이수민, 김시우였습니다.
아이젠하워 트로피는 60년 넘는 오랜 역사 속에서 숱한 골프 스타를 배출했습니다. ‘황금 곰’ 잭 니클라우스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톰 카이트. 마이클 캠벨, 루크 도널드 등이 과거 자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아마추어 기대주가 없는 국가에서 걸출한 프로가 나오기를 바라는 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낚는 일일 겁니다. 한국 남자골프의 앞날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입니다.

<사진> 5월 끝난 코오롱 제67회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 챔피언에 오른 태국의 사돔 께우까자나. 대회 조직위 제공
유독 한국 골프에서만 드러나는 ‘남소 여대’ 현상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대회 숫자와 상금 규모에서 호시절을 맞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와 함께 화수분처럼 계속 유망주가 쏟아져 나오는 여자골프와 달리 남자골프는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대한골프협회 등록 선수 숫자만 봐도 남자 선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선수 자체가 감소하다 보니 국제경쟁력 저하도 불가피해 보입니다.
불투명한 장래, 불합리한 과세 정책에 따른 과도한 골프 비용, 지나친 학습권 강조에 따른 훈련 부족 등이 한국 남자 선수의 경기력 저하를 불렀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바로 이런 원인을 반대로 뒤집으면 쉽게 해법을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재열 SBS 해설위원은 “세계적인 수준과 격차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꾸준한 국제대회 출전으로 경험과 기량 차이를 스스로 느끼면서 해답을 찾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은 또 “주니어 단계에서 여자 보다 남자 선수들의 경쟁이 훨씬 치열하다. 미국 주니어 대회의 코스 세팅은 성인 대회 수준이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천연 잔디에서 공을 치기도 쉽지 않은 환경 아닌가”라고 질타했습니다.
평소 쓴소리로 유명한 한 골프장 대표는 “인도, 태국의 남자골프가 급성장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중국도 경계 대상으로 떠올랐다. 월드 레벨이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한국 남자골프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선수 육성 시스템과 정책 지원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대한골프협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솔직히 우리 선수들의 절실함도 예전 같지 않다. 예를 들면 어렵게 버디를 하고도 너무 쉽게 보기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기술적인 부분과 함께 정신적인 부분도 다시 깨어나야 할 것 같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세계 골프 시장은 확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뿐 아니라 뛰어난 신체 조건을 지닌 아시아 태평양 선수들도 돈과 명예를 따라 국제 무대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끝난 한국오픈에서는 2명의 태국 선수가 막판까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한국 남자골프가 해외나 안방에서나 모두 들러리 신세가 되는 건 아닌가 안타깝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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