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전문가 100명이 요구한 이재명 정부의 첫째 과제는?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뒤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일까? 참여연대가 전문가 101명에게 물어본 결과, 가장 강한 요구는 사회통합과 경제적 불평등 완화였다. 그다음으로는 권력기관·관료 통제, 제7공화국 수립, 지역 균형발전, 노동자 권리 보장, 소수자 권리 보장, 인구구조 변동 대응, 녹색·디지털 전환, 지속 가능한 성장,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외교의 자율성 확보 등이었다.
참여연대는 2025년 4월18일부터 5월9일까지 4개 분야 전문가들에게 3개의 물음을 던졌다. 4개 분야는 정치·사법·시민사회(22명), 경제·사회·인권(52명), 기후·기술(12명), 국방·외교·평화(15명)였다. 3개 질문은, 첫째로 새 정부의 국정 방향과 목표, 둘째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전략, 셋째로 새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전문가들은 모두 306개의 답변을 내놨는데, 참여연대가 내용에 따라 중복된 것을 묶고 다시 분류해보니 모두 4개 분야 43개 답변이었다. 첫째 답변은 내란 종식과 새로운 공화국 분야 9개, 둘째는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 분야 19개, 셋째는 전환의 시대 분야 9개, 넷째는 평화롭고 공존하는 세계 분야 6개였다. 참여연대는 2025년 6월11일 이 내용을 ‘새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참여연대가 묻고 100인이 답하다’라는 보고서로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참여연대와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웹사이트에서 6월11일부터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한겨레21은 이 보고서를 미리 입수했다. 전문가들의 43개 답변 가운데 10명 이상이 공통으로 답변한 16개 항목을 뽑았다.
정치 체제 개혁: 내란 종식과 새로운 공화국
이 주제에서 10명 이상의 전문가가 제시한 새 정부의 과제는 사회통합(18명)과 권력기관·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12명), 민주헌정 질서 회복(11명), 제7공화국 수립(10명)이었다. 사회통합이 이 분야뿐 아니라 전체에서 1위였다. 통상 검찰과 기획재정부, 사법부 등 권력기관 개혁이나 개헌을 통한 제7공화국 수립이 가장 중대한 과제로 꼽히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이소영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필연적이지만, 조정과 치유 장치가 없으면 사회통합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대통령과 입법부, 사법부, 관료 조직은 헌법 질서를 철저히 존중하고, 시민은 차이를 인정하면서 민주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갈등을 부추기며 헌법질서를 유린한 극우적 선동과 혐오, 지역과 세대 간 분열 조장, 남북 간 적대적 긴장 조성에 국민은 극도의 불안과 무력감을 느꼈다. 새 정부는 이를 치유하고 통합하는 국정 목표·의제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을 비롯해 군, 감사원, 기재부 등 ‘권력기관·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개혁 1순위로 꼽힌 관료 조직은 검찰이었다. 신상범 연세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지난 3년간 윤석열은 대통령이나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법 권력의 일인자로서 통치했다. 검찰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법의 집행이나 적용이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편향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이전 민주 정권들이 실패한 검찰개혁을 완결하는 것뿐 아니라, 행정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기재부의 민주적 책무성을 개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감사원과 검찰이 무리한 감사와 수사로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권력기관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혁철 한겨레 선임기자는 “12·3 내란은 박물관의 유물로 알았던 쿠데타를 현실로 끌고 나왔다. 시대착오적 쿠데타가 일어난 원인 성찰과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 ‘민주적 민-군 관계’ 설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료 개혁을 넘어 권력구조 개혁과 ‘제7공화국 수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홍재우 인제대 교수(정치학)는 “대통령 1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국회를 정치의 중심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은 책임정치와 합의제 정치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익 명지대 객원교수는 “현행 헌정 체제는 권력 집중과 정치적 갈등 심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후퇴가 반복될 것이다. 권력 분산, 지방자치 실질화,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헌법에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은 “우리 사회는 개헌을 통한 새로운 사회 계약, 사회체제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87년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대전환은 경제 불평 등뿐만 아니라 지방과 성소수자, 이주자 등 다양한 차별을 극복하는 새로운 사회적 대타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사회 구조 개혁: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
둘째 주제는 가장 광범위해서 제시된 과제도 19건으로 가장 많았고, 10명 이상의 전문가가 제안한 과제도 6건이나 됐다. 경제적 불평등 완화(19명), 지역 균형 발전(15명),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권리 보장(13명), 돌봄 사회로의 전환(12명), 차별 금지와 소수자 권리 보장(12명), 급격한 인구구조 변동 대응(12명)이었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 완화’는 전체 과제 가운데 가장 많은 전문가가 제안했다. 참여연대는 경제·사회적 불평등 심화를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이며 주요한 사회적 위기로 꼽았다.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 전반의 균열과 갈등을 심화하고 포퓰리즘과 혐오 정치의 토대가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불평등의 배경 요인으로 관료·정치·재벌·언론으로 이뤄진 ‘엘리트 카르텔’을 꼽았다.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은 “부유층과 빈곤층, 자산 수입과 노동 수입,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비수도권, 특목고와 일반고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불평등과 그에 대한 불만은 경쟁 격화, 각자도생, 혐오, 포퓰리즘 정치를 부른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교수(경제학)는 “불평등 심화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음 정부는 증세와 소득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개선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평등의 각론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문제는 ‘지역 균형발전’이었다. 참여연대는 수도권 집중이 저출생과 고령화, 기후위기, 일자리 양극화, 주거비 부담, 교육 격차 등 다른 문제를 초래했거나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방 쇠퇴가 지역 경제 붕괴와 공동체 해체, 지역 균형 발전 저해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이며 ‘제2의 분단’이라고까지 평가했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는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인구 가운데 청년이 70%, 그중 70%가 여성이다. 여성을 균등하게 대우하는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비수도권에 만드는 것이 저출생·고령화와 수도권 집중에 따르는 사회적 손실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은 “초고령화 사회에서 지역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지역의 산업과 일자리 전략을 재편하고,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곳에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등의 지역 균형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평등의 또 다른 해결 방안으로 ‘모든 노동자의 권리 보장’도 많은 제안을 받았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불안정·취약 노동자의 확대는 노동시장 불평등을 심화할 뿐 아니라 사회통합을 저해한다. 특수고용형태·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보편적 노동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사회 불평등 해소라는 과제에서 핵심은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특히 현재 가속화하는 녹색 전환과 디지털 전환은 산업 전환과 노동 전환으로 이어져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차별 금지와 소수자 권리 보장’은 윤석열 내란 뒤 광장에서 확인된 민주주의 확장 방안이자 시대적 요구였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12·3 계엄 이후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의 가장 광범위하고 공통된 요구였다. 차별금지법은 극우가 세력화하면서 사회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혐오에 맞서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라고 말했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지난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로 국가 성평등 정책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지난 30여 년 동안 힘들게 구축해온 국가의 성평등 시스템을 신속히 복원하고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 다. 성평등은 민주주의 발전과 사회통합을 위한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급격한 인구 구조 변동 대응’도 주요 과제로 꼽혔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저출생은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불행과 연결돼 있다. 국민의 낳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용 불안이 양극화와 불평등을 더 악화시키지 못하도록 보편적 노동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중 전환 대응: 전환의 시대, 미래로 나아가는 공동체
셋째 주제는 디지털화와 기후위기에 따른 이중 전환과 관련해 다뤘다. 10명 이상의 전문가가 제안한 과제는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시대에 걸맞은 정부 시스템(12명), 탈탄소 사회 전환(11명), 지속 가능한 성장(10명), 정의로운 기후 대응(10명) 등 네 가지였다. 가장 많은 제안은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시대에 걸맞은 정부 시스템’에 관한 것이었다. 김공회 경상국립대 교수(경제학)는 “현재 세계는 커다란 전환기에 있다. 그 전환에는 이른바 디지털·녹색 전환과 같이 생산의 내용과 방식의 전환뿐 아니라 세계경제 질서와 같이 규칙의 전환도 포함된다. 전환을 위한 인프라 구축, 우리의 전략적 위상 확보에서 국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기후위기가 환경 변화를 넘어 산업·경제 문화로 확대돼가고 있음에도 관련 국정 과제는 매우 피상적인 수준이다. 이에 따른 노동·산업·지역 전환처럼 세부 과제가 설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거대한 전환에 따라 수축과 저성장에 적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좀더 적극적인 성장 정책을 주문한 것이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수축과 양극화의 추이는 매우 위험한 국면으로 가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잠재력의 발현 없이는 대한민국은 장기 정체와 퇴행으로 갈 수도 있다. 새 정부는 이 추세를 역전시킬 소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소영 대구대 교수(사회학)도 “한국은 저성장과 양극화의 벽을 넘어,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 혁신, 녹색 전환, 지역 균형을 아우르며 성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폐쇄적 경쟁을 넘어 다양성과 포용을 가진 열린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관계 재설정: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
넷째 주제는 국방과 외교, 통상 등 국제관계다. 10명 이상의 전문가가 추천한 과제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11명)과 외교의 자율성 확보(11명)였다. 참여연대는 남북관계에서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모든 안전판이 사라졌고 통일이나 한반도 비핵화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의 패러다임을 평화적 공존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관련해 전용복 경성대 교수(국제무역통상학)는 “계엄 국면에서 북한과 국지전이라도 벌어졌다면 계엄은 더 강력히 시행됐을 것이다. 이렇게 남북 평화 체제 구축은 우리나라 내부의 민주주의에도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가장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안은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수준의 남북 평화 체제 구축”이라고 말했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도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고 대만-한반도 주변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역 평화뿐 아니라 남북한 평화 공존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의 자율성 확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많았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이 이념에 치우쳐 미-중 갈등 사이에서 한-미 동맹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로 한국의 운신 폭이 좁아지고 역대 정부가 일관되게 유지해온 균형 외교의 기반도 약화됐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대신할 다자적 공동 안보 체제 구축을 위해 다자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경제 협력이라는 실리주의 접근에 정치·군사 협력이라는 접근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한·중·일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형종 연세대 미래캠퍼스 교수는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 속에 한·미·일 협력에 의존하는 편협한 외교 정책은 대북 정책 경직화와 갈등 유발 요인이 되고 있다. 다자 외교를 주도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연대와 공동 책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반도의 갈등 해소와 평화 정착,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다층적이고 유연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를 만든 참여연대의 이지현 사무처장은 “계엄과 내란이란 긴 터널을 지나 새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 앞에 놓인 과제가 많고 무겁다. 어떻게 지혜를 보탤까 고민하다가 이 보고서를 만들게 됐다”고 취지를 말했다. 이 처장은 “내용을 정리해보니 회복과 통합, 참여가 핵심이었다. 민주주의와 경제 회복, 불평등 완화와 사회통합, 시민의 참여와 주권 강화였다. 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전달하고 사회적 토론도 열겠다. 새 정부가 이런 전략과 과제를 잘 실행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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