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돌아갈 혜택 훼손하는 세력 : 방어입찰의 함정

최아름 기자 2025. 6. 11. 10:2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LH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경매 활용한 차익 활용 시도
피해자 보증금 반환에 활용
방어입찰로 물거품 되기도
법적으로 막기는 어려워
보증금 최소보장선 마련해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피해주택'을 경매를 통해 사들이고 있다. 감정가보다 저렴하게 사들여 공공임대주택으로 사용하고 차익은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문제는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걸려 있는 채권의 주인들이 낙찰가격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LH에 돌아올 차익을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방어입찰이란 전략적 꼼수를 통해서다.

전세사기피해주택이 경매에 나왔을 때 LH는 저렴하게 낙찰받아 감정가와 낙찰가의 차익을 이용한다. [사진 | 뉴시스]

전세사기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제시했던 대안 중 하나는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경매'를 이용하는 거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피해자에게 최대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채권자들에게 흘러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매 구조가 태생적으로 잘못 짜인 탓에 엉뚱한 곳으로 돈이 유입되고 있다는 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진행하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방안은 이렇다. 전세사기 피해주택이 경매로 나갈 땐 감정가를 평가받는다. 경매에서 이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을 받을수록 LH의 이익이 커진다.

무슨 말일까.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렇게 사들인 주택은 일단 공공임대주택으로 사용한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임차인에게 우선 공급하고 임차인이 다른 집을 원하면 다른 공공임대주택으로 연결해준다.

해당 임차인이 경매로 사들인 주택에 살지 않아도 괜찮다. 공공임대주택 재고로 남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이 나간다면 필요한 다른 임차인에게 공공임대로 내주면 된다.

그렇다면 감정가와 낙찰가 사이의 차익은 어디에 쓸까. 이 차익은 공공을 위해 사용한다.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살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해당 주택에 계속 거주를 원한다면 LH가 얻은 차익을 공공임대의 보증금으로 쓰거나 월세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주거비를 대신 내주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참고: 다만 감정가는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라 매입했을 때 소요됐을 금액인 감정가를 말한다. 공공임대주택으로 사용하니 당장 매각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차익이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LH는 매각을 했다고 가정하고 차익을 계산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전세사기 주택을 매입해달라고 신청한 건수는 올해 5월 기준 1만1733건이다. 그중 절반가량인 6270호는 심의 중이다. LH가 매입한 주택은 669호로 심의 중인 사건의 10% 수준이다. 피해 보증금 중 가장 많은 보증금이 1억원대라는 걸 감안하면 적게 잡아도 수백억원의 자금이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에 사용됐다는 얘기다.

문제는 언급했듯 LH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매입하는 데 사용한 돈 중 일부가 다른 곳으로도 흘러들어간다는 점이다. 이 낯선 구조를 이해하려면 전세사기 피해주택이 발생한 이유부터 살펴봐야 한다. 건물주라 불리는 임대인이 제대로 된 재산 없이 빚으로 집을 사들이고 또 사들여 발생하는 게 결국 전세사기다.

[사진 | 뉴시스, 자료 | 국토교통부]

이 과정에서 전세사기 주택은 다른 집을 사들이거나 혹은 그 집을 사들이기 위한 담보물로 쓰인다. 빚, 다시 말해 채권이 생긴다는 거다. 이렇게 채권을 보유한 채권자들은 전세사기 피해주택이 매각될 경우 그 대금을 받아 채권금액을 회수한다.

예컨대 경매에 나온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감정가가 2억원, 걸려있는 채권은 1억7000만원이라고 가정해보자. 낙찰가가 1억6000만원이라면 LH는 4000만원의 차익을 예상할 수 있지만 채권자인 금융기관은 1000만원을 손해볼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낙찰가가 떨어질수록 채권자들은 채권액 회수가 어려워진다는 거다.

이럴 때를 대비해 돈을 빌려준 채권자, 대표적으로 은행들은 채권을 팔아 넘긴다. 부실채권(Non Performing Loan·NPL)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에게 해당 주택에 걸려 있는 부실채권을 매각한다. 이 회사들은 낙찰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방어입찰'을 단행한다. LH가 제시한 가격에 최대한 맞추거나 이를 웃도는 가격으로 입찰을 붙인다. 자칫 회사 측에서 낙찰을 받으면 곧바로 취소한다. 일종의 꼼수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회사들이 방어입찰을 해서 결과적으로 LH가 차익을 크게 볼 수 있는 상황을 막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하려는 돈이 결국 NPL을 이용한 채권자나 투자회사들에 들어가고 있다. 방어 입찰이 실패하는 경우에는 일반인들은 어려운 입찰 취소까지 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NPL을 이용한 투자 자체는 막을 수도 없고 불법도 아니다. 일반 경매 사건에서 자기 재산의 가치를 방어하는 것도 합법이다. 현행법을 어긴 부분이 없기 때문에 규제하거나 선을 긋기도 어렵다.

시민단체 연대체인 '주거권네트워크' 관계자는 "일부 회사는 방어 입찰 수준이 아니라 LH의 주택 매수를 방해한 후 보증금을 못 받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퇴거시키고 있다"며 "경매 차익이 나지 않아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기 어려운 경우 보증금 50% 이상을 보장하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LH가 경매에서 전세사기 주택을 사들일 때 투입되는 비용은 국가·지자체의 돈이거나 주택도시기금의 돈에서 나온다. 공공임대 마련과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해 사용해야 할 돈이 채권자들의 채권 회수에 들어간다는 건 역설적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마련한 해결책은 적재적소에 제대로 쓰일 수 있을까.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울리는 '방어입찰', 한번쯤 생각해볼 이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