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혐오 조장하는 인사청문회... 도덕성·능력은 별도 검증하자 [이재명 정부 이것만은]

정지용 2025. 6.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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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책임지는 새 정치문화를
편집자주
역대 정부는 예외 없이 권력의 함정에 빠졌다. 절제하지 않고 권한을 남용하거나 협치의 중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소불위 대통령제의 한계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달라야 한다. 기회를 살리되 위험 요인은 줄여 박수받고 임기를 끝내길 바란다. 그래서 제언한다. 이것만은 꼭 지켜달라고. 5회에 걸쳐 구성해봤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5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11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개회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겠다."

정부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야당에서 나오는 대체적 반응이다. 대통령이 고른 인사를 낙마시켜 정부의 국정운영을 떨어트릴 기싸움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강하다. 후보자의 자질이나 능력을 검증하기보다, 정부여당 흔들기에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야권이 인사청문회 때마다 "장이 섰다"며 후보자에 대한 먼지털기식 신상 검증에 나서는 이유다. 이에 질세라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결과를 무시하는 '임명 강행'으로 맞서기 바쁘다. 능력 있는 사람을 선별하기 위해 도입된 공개 인사청문회 제도가 정치 혐오만 부추기는 진흙탕 싸움으로 전락한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1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해 노력해준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노무현 3명→윤석열 33명

정치권에서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불거진 지는 오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12·3 불법 비상계엄으로 무너지기 전까지 29명의 고위공직자를 국회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했다. 인사청문회 자체를 실시하지 않고 임명한 4명의 후보까지 포함하면 33명이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한 것이다. 역대 정부를 거치며 '임명 강행' 규모도 가파르게 늘었다. 노무현 정부 3명→이명박 정부 17명→박근혜 정부(중간 탄핵) 10명→문재인 정부 34명에 달한다. 국회 인사청문회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셈이다.

대통령은 장관급 인사의 경우 여야 합의 없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이에 정부로서는 "야당에 밀리지 않겠다"는 정치적 이유로 인사를 강행하며 힘겨루기를 벌이기도 한다. "차별금지법을 만들면 공산주의 혁명으로 이어진다" "진화론은 과학적 증명이 없다고 본다" 등의 종교적·반공 가치관으로 논란이 됐지만 임명된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대표적 사례다. 윤 전 대통령은 측근인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을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장관으로 밀어붙였다.

문재인 정부 '장수 장관'으로 무려 42개월 동안 국토부 장관을 했던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서재훈 기자

장수 장관부터 차관 실세까지

야당의 모욕 주기식 인사청문회를 피하기 위해 '인사청문회 우회'에 나서기도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부담으로 장관 교체를 꺼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42개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43개월) 등 '장수 장관'을 선호했고, 윤석열 정부는 차관 중심의 국정운영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적당한 시기에 적재적소 인사로 교체하지 못하면서 국정운영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인사청문회가 정쟁의 도구로 변질된 탓에 여야 모두 불만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6월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자 "종합적인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비판이 반복돼서 많은 분들이 고사를 하거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이 됐다"고 청문회 정쟁화를 문제 삼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20년 10월 "공직 후보자 지명을 타진하면 대다수가 망신주기 청문회 때문에 거부한다. 개선책을 모색해 주면 좋겠다"고 당부한 바 있다. 도덕성 검증을 이유로 재산·병역·가족·경력 사항을 들추다 보면 후보자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의 사생활까지 노출되고, 이에 능력 있는 인재들이 고위 공직을 꺼린다는 문제 의식이다. 실제 청문회 신상털기가 굳어지면서, 다수의 후보자들이 공직을 맡기를 두려워해 인재난이 극심해졌다는 평가가 많아졌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후보자의 직무 역량과 도덕성을 '분리'해서 검증하자는 의견에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도덕성 검증의 경우 '비공개'로 진행해 인사청문회가 직무 역량 검증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도덕성·정책능력을 별도로 검증하자는 법안이 수차례 발의됐으나 여야의 무관심으로 폐기됐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야가 합의해 후보자의 도덕성에 관한 1차 비공개 청문회를 열고, 후보자의 정책적 능력과 중대한 결함은 2차 공개 청문회에서 논의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후보자의 치명적 문제가 발견되면 여권도 스스로 지명을 철회하도록 해서 인사청문회를 엄중한 검증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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