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국화 아래 노니는 고양이… 비밀스러운 ‘조선의 안뜰’ 속으로
BoA 국내 첫 후원으로 복원된
겸재 정선 ‘화훼영모화첩’부터
신사임당 ‘초충도’ 등 77점 공개
김홍도의 중년·노년 그림 비교
매화나무 위에 똑같이 ‘새’ 그린
조속 - 지운 부자의 작품도 눈길
대구=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지난해 개관특별전 ‘여세동보-세상 함께 보배 삼아’로 큰 사랑을 받은 대구 간송미술관이 첫 기획전 ‘화조미감’을 선보이고 있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소장품 중 국보·보물을 집중 소개한 ‘여세동보’는 22만4000여 명이 다녀가며 역대 대구 지역 전시 관람객 수 3위를 기록했다. 블록버스터급 특별전의 흥행세를 소규모 기획전이 이어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그렇다’. 지난 9일 이랑 책임학예사와 함께 전시를 둘러봤다. 겸재 정선을 비롯해 김홍도와 신사임당, 장승업 등 한국인이 사랑하는 조선 화가들의 화조도 77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붓끝을 좇다 보니 어느새 꽃 피고 새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연을 품고 행복을 염원했던 그림들 속으로 들어가 본다.
◇겸재 하면 진경산수화? 진경화조화도 탁월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겸재 정선의 ‘화훼영모화첩’이 2년여의 수리·복원 작업을 마치고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는 것. 겸재는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 화첩은 그가 화조도에도 탁월했다는 걸 보여준다.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관찰을 통해 발견한 대상의 특징을 극대화하는 ‘진경’의 의미를 생각하면, 겸재의 화조도는 말 그대로 ‘진경화조’라고 할 수 있다.
8폭으로 구성된 화훼영모화첩은 겸재가 말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화려하고 힘찬 산수화와 달리 그의 화조화는 섬세하고 정겹다. 호랑나비, 갈대꽃, 오이밭, 개구리, 들쥐, 수박, 가지밭, 두꺼비, 닭, 맨드라미, 매미, 방아깨비, 고양이 등이 등장하며, 이에 따라 ‘석죽호접’ ‘과전전계’ ‘하마가자’ ‘추일한묘’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겸재의 붓끝을 따라가다 보면, 노년이 된 거장의 부쩍 여유로워진 마음이 읽힌다. 대작은 아니지만, 대작을 그리는 자만의 절제미가 느껴진다. 특히, 이 작품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예술 작품 보존 프로젝트’를 통해 복원된 것이어서 더 의미가 깊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10년부터 루브르 박물관, 보스턴 미술관 등에서 세계적인 작품의 수리·복원을 후원하고 있다. 국내에선 정선의 화훼영모화첩이 첫 지원작이 됐다.
수리·복원 과정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상시 공개되고 있다. 그 과정을 촬영한 영상이 전시실 내 QR 코드를 통해 제공된다. 또, 미술관은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작업에 사용된 안료를 소개하고 있다. 전면 통창으로 설계된 복원실 밖에서 관람자들은 마이크를 켜고 질문할 수 있으며, 실제로 수리·복원 중인 전문가들이 수시로 이에 답해 인기를 끌고 있다.
◇아버지 vs 아들, 김홍도 vs 김홍도= 이번 전시는 두 작품씩 짝을 지어 나란히 진열한 것도 큰 특징이다. 예컨대, 아버지 조속의 ‘고매서작’과 아들 조지운의 ‘매상숙조’는 똑같이 매화나무 위에 앉은 새를 그린 것인데, 색의 농담이나 붓끝에 서린 기운, 필치의 감각이 모두 달라 흥미롭다. 조속이 그린 까치는 짙고 과감한 붓터치로 인해 상서롭다. 문인정신을 담던 조선 중기의 화풍을 반영한다. 반면, 조지운의 새는 졸고 있는데, 그 모습이 부드럽고 친근하다. 이랑 학예사는 “새와 꽃을 보는 부자 화가의 같고도 다른 시선을 읽을 수 있고, 아버지가 나은지 아들이 나은지 감상자 나름의 비교도 가능해 흥미로운 관람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홍도의 작품들은 특별히 ‘단원의 방’을 꾸려 소개한다. 이 공간은 김홍도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는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화조도8폭병’이 펼쳐지는 게 장관이다. 여기에, 단원의 중년과 노년의 그림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쌍치화명’과 ‘향사군탄’을 나란히 배치한 것도 돋보인다. 전자는 꿩 한 쌍이 소리를 주고받는 모습이며, 후자는 날아가는 새의 뒷모습을 그리는 독특한 시선을 보여준다. 이랑 학예사는 “일반적으로 새의 뒷모습을 그리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김홍도는 넓게 펼쳐진 여백과 화면 밖으로 날아가는 새를 즐겨 그렸다”며 “작은 새가 만들어내는 여운이 그림의 한계를 벗어난다”고 단원을 상찬했다.
전시는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지나, 어미 닭이 병아리 떼를 먹이는 풍경을 그린 장승업의 ‘계포군주’ 등으로 이어지며 16~19세기 화조화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문인정신을 녹여내던 조선 중기, 서정미로 황금기를 맞이한 후기, 탐미적 미감을 강조한 조선 말기까지, 시기별 대표작을 모두 만나는 묘미가 있다. 전시는 8월 3일까지, 관람료는 1만1000원(성인 기준)이다.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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