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없으면 시민권자도 일단 구금…한인사회, 다시 희생양 될까 우려”

[인터뷰] 스티브 강 L.A. 한인회 이사장

스티브 강 로스앤젤레스 한인회 이사장이 10일(현지시각) 한겨레 등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대대적인 이민자 단속이 로스앤젤레스(L.A.) 한인사회 전반에 공포와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이민세관단속국(ICE·아이스)이 로스앤젤레스 내 한인 업체가 다수 포진한 자바 시장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 한인타운까지 타깃 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아직 한인 체포 사례는 없는 거로 알려졌지만 한인 커뮤니티는 상당히 위축된 상태다. 스티브 강 로스앤젤레스 한인회 이사장은 “30일간 단속을 이어간다는 얘기가 있다”라며 “한인타운에까지 단속국이 오면 시위대도 따라오고, 약탈도 일어날 수 있어 걱정이 크다”라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10일(현지시각) 한겨레 등과 인터뷰에서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때처럼 한인사회가 또다시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트럼프 주니어의 엑스 포스팅 때문에 단속국이 ‘한인도 이민자가 많다’는 인식을 갖게 돼 한인타운까지 단속에 나설 수 있다”며 “한인회 차원에서 공식 규탄 성명을 발표했고, 사과와 삭제를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인 사회는 이미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강 이사장은 자바 시장 내 대형 의류 업체 단속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계 미국인이 운영하는 업체로 한인 직원도 많다. 이 업체에서 남미계 노동자 등 총 14명이 체포됐다”며 “현재까지는 한인 체포자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자바 시장에 한인 업체가 매우 많기 때문에 한인 커뮤니티가 간접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부터 이어진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대적인 이민자 단속으로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자바 시장의 상점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지난 6일부터 이어진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대적인 이민자 단속으로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자바 시장의 상점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단속국의 대규모 단속 이후 자바 시장과 인근 상권은 출근 거부와 임시 휴업 등으로 ‘유령도시’가 된 상태다. 이날 자바 시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조셉(58)은 “서류미비 직원들이 매우 많은데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계속 단속을 나오자 사장들이 가게 문을 닫아버렸다. 직원이 체포되면 서류미비 직원을 고용한 사장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식당이나 서비스 업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강 이사장은 “요리사나 서빙 직원도 서류 미비자들이 많아서 업소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인 타운에서 30년간 일식당을 운영 중인 마크 킴은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갖춘 이들은 식당 일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장 문을 닫지는 않았지만 손님이 줄어 영업시간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단속 방식이다. 강 이사장은 “외양이나 말투로 판단해 체포하는 경우도 있다”며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은 시민권자조차 일단 구금된 뒤 확인 후 풀려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시민권자인 가족이 함께 구금되거나, 아이가 시민권자인데 부모가 추방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선출됐는데 취임 뒤엔 ‘백인 우월주의’적인 정책들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서류 미비자’에 대한 인식 전환도 강조했다. 그는 “‘불법 체류자’라는 표현보다는 ‘서류 미비자’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며 “많은 서류 미비자들이 납세자 번호(ITIN)를 발급받아 세금을 내고 있으며, 시민권자인 자녀와 오랫동안 가정을 이루며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을 단순히 ‘불법이민자’로 보는 것은 단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 정부와 협력해서 범죄를 저지른 불법이민자들은 얼마든지 체포가 가능하다. 그런 분들에 집중해서 단속해야 하는데 지금은 범죄자도 아닌 서류 미비자들까지 체포하고 있다”며 “한인사회는 힘없는 소수 커뮤니티로서 항상 중간에 끼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로스앤젤레스/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