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마와 김세은이 다시 돌아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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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당시 나는 외국에서 박사 논문을 쓰고 있었다.
지난 반년 한국의 제도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았으니 더더욱 그렇다.
방송3법을 논하는 국회에 이용마 기자가 나오는 것을.
윤석열 정권에 단 하나 고마운 점이 있다면 그들이 언론에 있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극단의 반면교사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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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민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근혜 정권 당시 나는 외국에서 박사 논문을 쓰고 있었다. 아이를 맡기고 도서관에서 한창 공부를 하고 있는 오전 10~11시쯤 울리는 전화는 한밤중 한국에서 오는 것이었다. 공정 보도를 요구하다 해직 혹은 좌천된 기자들, 자리를 지켰지만 사는 게 지옥이라고 말하는 언론인들.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이들 중 여럿이 세상을 떴다. 암 투병이 많았다. 이용마(1969-2019) 문화방송(MBC) 기자같이 투병 중인 걸 알면서도 병문안도 못 간 이들이 여럿이다. 알량한 연구를 한답시고 한국을 떠나 편히 먹고사는 사람으로 염치가 없어서다. 죽음은 좌우를 가리지 않지만 한겨레 등 진보 언론에서 유독 일찍 세상을 뜬 이들이 많았다.
한국 언론은 동아투위와 조선투위뿐만 아니라 80년대 이후 학번인 그들의 주검 위에도 서 있다. 현장을 지키는 언론인들 그리고 학계로, 시민사회로, 정계로 흩어진 언론계 출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식으로 말하면 운이 좋아서 살아남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계엄과 탄핵을 넘어 새 정권이 출범했고, 우리는 역시 안다. 문화방송과 한국방송(KBS), 연합뉴스 같은 공영 언론의 정치 후견주의를 극복하고 최소한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부여하기 위한 개혁에 이번 같은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안다. 권력의 속성은 한번 잡은 힘을 쉽게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반년 한국의 제도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았으니 더더욱 그렇다. 언론 개혁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은 이유다. 그래서 이 시점에 미안하지만 돌아가신 이들을 다시 소환하려 한다.
상상해본다. 방송3법을 논하는 국회에 이용마 기자가 나오는 것을. 투병 중 야윈 모습이 아닌 현장 취재기자로 뛸 때 조지 클루니 같은 풍채였던 그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장으로 성큼 걸어와 이렇게 말한다면. “정치권이 공영방송 임원진 선임 과정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합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논하면서 왜 정치권의 이사 추천이라는 굴레에서는 벗어나지 못합니까.”(2017년 이용마 책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참고)
또 상상해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 파업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노조의 손을 잡아줬던, 기자보다 더 기자 같았던 김세은 강원대 교수(1964~2020)가 뉴스통신진흥회로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면. “뉴스가 높으신 분들이 ‘하필이면 딱 봐도’ 괜찮을 것들로 채워지고 있는데, 그것도 기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 맞나요. 언론의 자유는 권력에 복종할 자유가 아닙니다.”(2016년 10월14일치 한겨레 ‘미디어 전망대’ 칼럼 참고)
이용마와 김세은이 원했던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이 소환되지 않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파업이나 해직의 기억이 없는 젊은 언론인들이 거침없이 취재하고 혁신과 실험을 거듭하는 세상.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전세계 미디어 연구자들이 찾아오는 나라.
윤석열 정권에 단 하나 고마운 점이 있다면 그들이 언론에 있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극단의 반면교사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 정권에서 언론 개혁의 운전대를 거머쥔 위정자들에게 미셸 오바마의 격언을 나누고 싶다. “그들이 비열하게 가도 우리는 근사하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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