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구현된 안네 프랑크의 80여년 전 은신처

“수많은 친구와 지인이 끔찍한 목적지로 떠난다. 밤마다 녹색 또는 회색 군용 차량이 지나가면서 종을 울리며 유대인이 살고 있는지 묻는다. 숨어 있지 않으면 아무도 운명을 피할 수 없다.” (1942년 11월 19일)
어두컴컴한 방에 들어서자 검은색 벽 위에 흰색 글씨로 이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42년 6월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은신처에 숨어 산 안네 프랑크가 쓴 일기의 한 구절이다. 안네는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독일계 유대인으로, 가족이 함께 숨어 지낸 암스테르담 은신처가 결국 발각되면서 체포돼 1945년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안네는 1942~1944년 은신처의 일상, 가족과 관계, 성장기 소녀의 내면 등을 일기에 기록했는데, 이 내용은 전쟁 후 ‘안네의 일기’라는 책으로 출간돼 현재까지 7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3000만부 이상 팔렸다.
암스테르담 ‘안네 프랑크 하우스 박물관’은 고증을 통해 치수까지 실제와 똑같이 구현한 ‘안네의 집’을 지난 1월부터 미국 뉴욕 유대인 역사 센터에 선보이고 있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은신처를 전시장으로 개조한 곳이다. 암스테르담엔 여러 명소가 있지만 관림이 가장 어려운 곳이 이곳이다. 그만큼 표를 구하기 쉽지 않다. 박물관 측은 “‘안네의 집’을 암스테르담이 아닌 미국에서 그대로 구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 측이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을 기념해 시작했다. 뉴욕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약 110만명)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보니 안네에 대한 관심도 많다. 10일 뉴욕시는 안네의 96번째 생일이 되는 오는 12일부터 ‘안네의 일기’ 1만부를 일반인들에게 배포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1952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안네의 일기’ 초판 전시로 시작된다. 초판에는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영부인이자 인권운동가로 활동한 엘리너 루스벨트의 서문이 실려 있다. 이후 안네의 부모에 대한 설명과 시대적 배경, 안네가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나치 정권의 부상, 안네 가족이 네덜란드로 이주해 1944년 체포될 때까지의 상황이 자세히 묘사된다.

실제 안네의 손길이 닿은 유물 100여 점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안네가 친구들의 시집(詩集)에 손으로 쓴 구절들, 안네의 첫 번째 사진 앨범, 집에 와서 함께 영화를 보자고 친구에게 보낸 초대장 등이 포함된다. 박물관 측은 “네덜란드를 방문할 기회가 없는 관람객을 위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라고 했다. 전시 하이라이트는 안네가 숨어 지내던 은신처로 들어가는 두꺼운 책장으로 위장한 ‘비밀의 문’이다. 문으로 들어가면 창문은 온통 가려져 집안이 어두컴컴했는데 “나치가 안에 있는 유대인들을 찾아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안네 가족은 창문을 막아 놓고 생활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전시 마지막 부분에는 안네 가족을 숨겨준 미프 히스 여사 영상이 나온다. 그는 안네가 잡혀간 뒤 일기를 보관하고 있다가 안네의 아버지에게 주게 된 과정을 담담하게 얘기한다.
4월까지만 열리기로 했던 이 전시회는 관람객이 어마어마하게 몰리면서 오는 10월까지로 기간을 연장했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 전무이사 로널드 레오폴드는 “역사는 우리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고 뉴욕에서 나타나는 엄청난 관심은 안네의 말이 세대를 넘어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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