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충현씨가 버텨온 9년의 낮과 밤

이진희 2025. 6. 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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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4일: 화력발전소 비정규직노조 지회장의 부고. 임금·단체협약을 잠정합의한 날 삶을 등졌다. 유서는 없었다."

그리고 4년이 흘러 대선 전날(6월 2일), 고 김충현(50)씨가 그 화력발전소에서 또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용균씨 사망 후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까지 꾸려져 제안했던 권고안(정규직화, 위험작업 2인 1조)이 7년 동안 지켜지지 않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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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해고·중간착취의 슬픈 풍경
김용균씨 사망 후 직접고용 약속
휴지조각 되고 '기만'으로만 남아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대책위원회'가 사고 바로 다음 날인 3일 촬영한 김충현씨의 업무 책상. 사고 직전까지 이재명 대통령의 기본소득 정책과 정치 철학을 다룬 책인 '이재명과 기본소득'을 읽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진일 대책위 상황실장은 "보통 공작기계(절삭 등 기계를 만드는 기계) 업무가 쇳가루가 날려서 굉장히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는 일인데 김충현씨 책상은 굉장히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 돼 있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대책위 제공

“2020년 12월 14일: 화력발전소 비정규직노조 지회장의 부고. 임금·단체협약을 잠정합의한 날 삶을 등졌다. 유서는 없었다.”

2021년 한국일보가 보도한 ‘중간착취의 지옥도’ 시리즈에 이런 문장이 담겨 있다. 2018년 고 김용균(당시 25세)씨가 사망했던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의 임금 중간착취 문제를 취재하던 중 “장례를 치러야 해서 취재 약속을 미뤄야 한다”는 노조 측 연락을 받은 후배가 그 자살 소식을 내게 전해 주던 때가 생각난다.

기자는 한발 떨어져 그저 기록으로 현실을 전하는 입장인데도, 그때 취재와 기사로 그렸던 하청의 풍경은 무척 슬펐다. 그리고 4년이 흘러 대선 전날(6월 2일), 고 김충현(50)씨가 그 화력발전소에서 또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용균씨 사망 후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까지 꾸려져 제안했던 권고안(정규직화, 위험작업 2인 1조)이 7년 동안 지켜지지 않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내 기준에서 보면, 늦은 기사고 어찌 보면 무책임한 기사다. 4년 전 취재와 보도를 통해 이미 권고안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누군가 죽고서야 이 문제를 다시 보도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언론이라면 매년 혹은 매달, 아니 매일매일 이 중차대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하고 또 보도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인간의 얄팍한 본성은 즐길 거리를 찾듯 ‘문제’조차 새로운 것을 찾고, 언론과 여론도 다를 바 없다. 이 지점이 수많은 사회적 좌절을 형성하는 자양분이다. 사회 분야 취재를 하다 보면, 여러 문제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기사를 내보내고 잠깐의 희망에 부풀어도 금세 잊히고 문제가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법의 부재에 따른 구조의 문제일수록, 그리고 기득권의 이익과 반대에 서 있는 경우 특히 해결이 되지 않는다.

작년에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는 분을 인터뷰한 후에 그에게서 몇 달 후 전화를 받고 고민을 나눈 적이 있다. 의견을 구하길래, 내 기자로서의 신조를 담아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꾸준히 하시되, 기대는 하지 마세요. 꾸준히 해야 마음은 편하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하세요. 그런데 기대를 하시면 힘들 거예요. 기대를 안 해야 꾸준히 할 수 있어요.”

그가 혹시 포기하고 손을 놓을까 걱정됐고, 한편으로 너무 기대감을 가지고 임했다가 낙담할까 봐 걱정됐다. 예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비리를 폭로했던 한 신부님은 결국 해결하지 못한 그 문제를 나중엔 언급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기대와 희망이 클수록, 꺾인 마음에 새싹이 돋진 않는가 보다.

하지만 희망이란 건 도무지 완전히 버려지지가 않는 것이어서, 때로 재우고 무시하면서도 어느새 함께한다. 충현씨 사무실 책상에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다룬 책이 펼쳐져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나름대로 다스려 온 희망의 모양을 보는 듯했다. 2016년 태안화력 발전설비 정비 업무를 시작해 소속 하청업체만 8번 바뀌었다는 충현씨 삶에서 희망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새 정부가 들어서고 고통받는 자들의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 이때,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얼마나 기만으로 끝났는지 또한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약자의 삶의 조건에 대한 약속(공약)일수록 그 무거움을 알고 엄중히 지켜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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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사회정책부장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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