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충현씨가 버텨온 9년의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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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4일: 화력발전소 비정규직노조 지회장의 부고. 임금·단체협약을 잠정합의한 날 삶을 등졌다. 유서는 없었다."
그리고 4년이 흘러 대선 전날(6월 2일), 고 김충현(50)씨가 그 화력발전소에서 또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용균씨 사망 후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까지 꾸려져 제안했던 권고안(정규직화, 위험작업 2인 1조)이 7년 동안 지켜지지 않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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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씨 사망 후 직접고용 약속
휴지조각 되고 '기만'으로만 남아

“2020년 12월 14일: 화력발전소 비정규직노조 지회장의 부고. 임금·단체협약을 잠정합의한 날 삶을 등졌다. 유서는 없었다.”
2021년 한국일보가 보도한 ‘중간착취의 지옥도’ 시리즈에 이런 문장이 담겨 있다. 2018년 고 김용균(당시 25세)씨가 사망했던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의 임금 중간착취 문제를 취재하던 중 “장례를 치러야 해서 취재 약속을 미뤄야 한다”는 노조 측 연락을 받은 후배가 그 자살 소식을 내게 전해 주던 때가 생각난다.
기자는 한발 떨어져 그저 기록으로 현실을 전하는 입장인데도, 그때 취재와 기사로 그렸던 하청의 풍경은 무척 슬펐다. 그리고 4년이 흘러 대선 전날(6월 2일), 고 김충현(50)씨가 그 화력발전소에서 또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용균씨 사망 후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까지 꾸려져 제안했던 권고안(정규직화, 위험작업 2인 1조)이 7년 동안 지켜지지 않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내 기준에서 보면, 늦은 기사고 어찌 보면 무책임한 기사다. 4년 전 취재와 보도를 통해 이미 권고안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누군가 죽고서야 이 문제를 다시 보도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언론이라면 매년 혹은 매달, 아니 매일매일 이 중차대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하고 또 보도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인간의 얄팍한 본성은 즐길 거리를 찾듯 ‘문제’조차 새로운 것을 찾고, 언론과 여론도 다를 바 없다. 이 지점이 수많은 사회적 좌절을 형성하는 자양분이다. 사회 분야 취재를 하다 보면, 여러 문제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기사를 내보내고 잠깐의 희망에 부풀어도 금세 잊히고 문제가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법의 부재에 따른 구조의 문제일수록, 그리고 기득권의 이익과 반대에 서 있는 경우 특히 해결이 되지 않는다.
작년에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는 분을 인터뷰한 후에 그에게서 몇 달 후 전화를 받고 고민을 나눈 적이 있다. 의견을 구하길래, 내 기자로서의 신조를 담아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꾸준히 하시되, 기대는 하지 마세요. 꾸준히 해야 마음은 편하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하세요. 그런데 기대를 하시면 힘들 거예요. 기대를 안 해야 꾸준히 할 수 있어요.”
그가 혹시 포기하고 손을 놓을까 걱정됐고, 한편으로 너무 기대감을 가지고 임했다가 낙담할까 봐 걱정됐다. 예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비리를 폭로했던 한 신부님은 결국 해결하지 못한 그 문제를 나중엔 언급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기대와 희망이 클수록, 꺾인 마음에 새싹이 돋진 않는가 보다.
하지만 희망이란 건 도무지 완전히 버려지지가 않는 것이어서, 때로 재우고 무시하면서도 어느새 함께한다. 충현씨 사무실 책상에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다룬 책이 펼쳐져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나름대로 다스려 온 희망의 모양을 보는 듯했다. 2016년 태안화력 발전설비 정비 업무를 시작해 소속 하청업체만 8번 바뀌었다는 충현씨 삶에서 희망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새 정부가 들어서고 고통받는 자들의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 이때,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얼마나 기만으로 끝났는지 또한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약자의 삶의 조건에 대한 약속(공약)일수록 그 무거움을 알고 엄중히 지켜지길 바란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0414160005287)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0515010000443)
이진희 사회정책부장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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