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늘면 3심 당연해져… 헌재 4심까지 하면 국민은 소송 지옥”

더불어민주당 박희승(62) 의원은 10일 본지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이른바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단순히 대법관 수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사법부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대법관 증원 문제는 충분한 숙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으면 개혁이 아니라 개악(改惡)이 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대법관을 현행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박 의원은 당시 소위 심사에 참여해 “대법관 증원은 사법부 구조 개편과 연동해 논의돼야 할 과제로 좀 더 시간을 갖고 다양한 논의와 숙의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박 의원은 “대법원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법관을 늘리는 것보다 1·2심 재판을 충실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대법관 대폭 증원만 이뤄지면 사법 체계가 흔들리고, 3심 사건이 더 늘어나 소송 비용과 부담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판사 출신인 박 의원은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다.
-대법관 증원은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는데.
“증원에 앞서 대법원 구조와 역할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대법관은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이다. 그런데 대법원엔 대법관뿐 아니라 재판연구관이 100명 넘게 있다. 재판연구관 대부분이 판사다.”
-독일 등과 비교해 대법관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있다.
“독일·프랑스 모델을 본받아 대법관을 늘리자는 주장이 있는데, 독일·프랑스는 대법원 판사 상당수가 배석판사다. 그런 식으로 치면 한국도 대법원 판사가 114명 이상 있는 셈이다. 미국은 대법관이 9명, 영국은 12명, 일본은 15명이다.”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법을 계속 추진할 태세다.
“숙의(熟議) 과정이 필요하다. 국민적 동의와 여야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공청회도 필요하고, 법원 측 동의도 받아야 한다. 국회가 사법부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은 헌법기관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대법관 업무가 과중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1·2심은 사실심이고 3심은 법률심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많은 사건을 끌어안고 있게 된 것은 사실상 사실심을 대법원으로 끌고 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교묘하게 ‘채증(採證) 법칙 위배’를 따진다는 명분으로 대법원을 사실심으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대법원이 많은 사건에 손을 대야 권한이 세진다고 보는 것 아닌가.”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면 법원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법관을 늘리면 보조 인력과 재판연구관도 늘어야 한다. 지방법원·고등법원 판사를 대법원으로 끌어올리면 지법·고법이 부실해진다. 하급심을 보강해야 대법원으로 오는 사건을 줄일 수 있는데 거꾸로 가는 것이다. 대법관이 많아지면 전원합의체 구성이 쉽지 않아 법령 해석 통일도 어려워진다. 1·2심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 사법 체계 전체를 흔들게 된다.”
-대법관이 늘면 대법원 심리가 충실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대법관이 늘면 3심까지 가는 사건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1·2·3심을 다 거치게 하면 비용이 늘고 소송도 길어진다. 지금 헌법재판소가 4심 역할을 하는 법안도 제출돼 있다. 대법관 증원으로 3심이 당연시되고 4심까지 가면 국민은 ‘소송 지옥’에 빠질 것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심급(審級)이 많을수록 돈 많은 사람에게 좋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건 1심을 충실히 해서 당사자들이 승복하고 끝내는 것이다.”
-현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있는데.
“소송을 하면 어느 한쪽은 패소한다. 이긴 사람도 100% 이기긴 쉽지 않아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법관들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문제도 있다. 대법관 증원 주장도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사법의 정치화로 촉발됐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많은 기소를 당했는데 법원이 지켜주지 않았다면 대통령 후보가 됐을까.”
-민주당 원내 지도부가 대법관 증원법 추진에 신중을 기할까.
“대법관 증원법에 대해 법원행정처에서 나와서 반대 발언을 하는데도 강행하려는 걸 보고 ‘아직 야당에서 여당으로 모드 전환이 안 된 것 아닌가’ 생각했다. 법원을 설득하고 야당과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민주당이 최근 처리한 3대 특검법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내란 특검 등 3대 특검을 가동하더라도 잘못된 부분만 빠르고 정확하게 도려내는 게 필요하다. 최소 범위 내에서만 (수사)하고 빨리 국민 통합의 길로 나아갔으면 한다.”
☞박희승 의원은
1963년 전북 남원 출생. 전주고와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같은 사법연수원 18기로 노동법학회 활동을 함께했다. 1992년 판사로 임용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안양지원장 등을 지냈다. 2015년 퇴임하고 이듬해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됐고 작년 총선 때 전북 남원·장수·임실·순창 선거구에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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