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나공간] 밀양 시니어카페 ‘진장올래’

장유진 2025. 6. 1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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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거리 문화 잇고 세대 벽 허무는 ‘소통 사랑방’

청년 입주 사업가 아트 갤러리
지난해 말 동네 카페로 재탄생
외관 곳곳 작품 흔적 고스란히

청년·시니어 파트너 10여명
메뉴 개발·공간 운영 함께해
음료도 청년·노년 맞춤 겨냥

‘세대 간 문화 플랫폼’ 자리잡아
“진장 청년거리 찾는 사람 늘려
우리 지역 살리는 게 꿈이에요”

청년 이야기를 할 때면 대개 하늘이나 풀잎의 푸릇한 색채를 떠올리게 된다. 지역 청년들의 창업 터전으로 조성된 밀양의 ‘진장 청년거리’에도 환한 쪽빛 벽화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고장에서 꿈을 펼치는 젊은이들의 곁에, 인생의 가장 푸른 시기를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카페가 나란히 서 있다. 청년거리 나들목 새파란 벽화 속 이정표가 가리키는 시니어클럽 카페 ‘진장올래’다.

밀양시 삼문동 진장 청년거리의 시니어카페 ‘진장올래’를 운영하는 시니어클럽 김승희(앞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파트너, 김철오 관장 ,김소현 청년매니저, 허영경 팀장이 카페 마루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다.

밀양 진장 청년거리는 진장마을의 빈집들을 재활용해 청년들이 가게를 열 공간을 만든 업사이클링 거리다. 그 복판에 노년의 실버 바리스타들이 꾸려가는 카페가 있다는 말에 이질적인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겠거니 싶었다. 섣부른 착각이었다. 화살표를 따라가다 마주한 ‘진장올래’는 따뜻한 감성 한 방울이 섞인 트렌디한 외관으로 다른 청년들의 가게와 형제처럼 어우러졌다.

구옥을 개조해 만든 이곳에는 우리네 옛집의 구조가 고스란하다. 대문을 지나면 마당이 나오고, 마당을 지나면 음료를 주문하고 만드는 ‘사랑채’ 격의 손님맞이 공간에 들어설 수 있다. 여기서 쪽문을 열고 한 겹 더 깊이 들어가면 손님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채’ 같은 별관으로 이어진다. 쪽마루와 디딤돌까지 예스러운 면모가 가득한데, 외벽에는 독특한 모양의 미술 작품들이 걸려있다.

진장올래가 운영되고 있는 이 건물은 이전까지 또 다른 청년 입주 사업가들의 아트 갤러리로 사용됐다. 카페 기획에 참여한 밀양시니어클럽의 허영경 팀장은 “인테리어 공사 당시 직원들이 외벽에 걸린 작품들을 철거하겠느냐고 물어봤지만, 의미 있는 흔적이라 생각해 그대로 뒀다”고 말했다. 황혼 바리스타들의 카페는 지난해 말 청년들의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이 터에 싹을 틔웠다.

‘진장올래’ 카페 전경.

그 후 반년여가 넘게 흐른 현재, 진장올래는 세대 간 문화가 한데 모이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카페 ‘진장올래’는 공간이 주는 의미와 꼭 닮은 두 축의 사람들이 가꿔 나간다. 한 축은 ‘밀양시니어클럽’의 젊은 사회복지사들과 청년 매니저, 다른 한 축은 막내가 64세고 맏형이 79세인 14명의 ‘시니어 파트너’ 바리스타들이다.

직원들뿐 아니라 손님들의 연령대까지 천차만별인 이곳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평일엔 한동네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랑방이 되고, 주말엔 바쁜 일상 속 색다른 공간을 찾아 떠나는 젊은 관광객들의 휴식처가 된다.

카페 근무자 중 유일한 젊은 세대, 김소현 청년 매니저(27)는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나누러 카페를 찾는 할머니, 할아버지 단골들의 모습이 여전히 신기하고 정겹다고 말한다. 거의 날마다 카페에 방문하는 손님도 있고, 어쩔 땐 그의 근무 스케줄보다 먼저 와 담소를 나누며 김 매니저를 반겨주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한창 쑥이 제철이었을 땐 손님들이 쑥을 캐다 만들었다면서, 쑥버무리 한 상자를 가져와 다 같이 나눠 먹기도 했어요. 딱 옛날의 사랑방 문화 같은, 넘치는 정을 느낄 수 있었죠.”

커피를 만들고 있는 김승희(오른쪽) 파트너와 김소현 청년매니저.

김승희 시니어 파트너 단장(66)에게는 진장 올래가 ‘요즘 사람’들의 삶을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김승희 단장은 외지에서 온 젊은 관광객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어느 때보다 즐겁다며 웃었다. “우리가 시니어라고 해서 나이가 있으신 분들만 올 것 같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데, 실제로 보면 오히려 젊은 분들이 더 많이 와요. 젊은 사람들이 쉬는 날 진장 청년 거리가 궁금해서 외곽으로 놀러 왔다가 저희 매장에도 들러 보시는 거죠.”

김소현 매니저와 김승희 단장은 우연 같은 필연으로 진장올래에 모였다. 김 단장은 10년 전 TV 속 바리스타들의 모습에 매료돼 인생 제2의 꿈을 갖게 됐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막상 가게를 차리려니 위험 부담이 커 꿈을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수년 동안 아쉬움을 간직해야 했던 그에게 이 카페는 못다 이룬 꿈을 펼칠 무대가 됐다.

“자격증을 몇 년째 묵혀만 두고 있다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꺼내게 됐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죠. 저를 포함한 시니어 파트너들은 다 ‘내가 사장이다’하는 마음으로 일해요. 여기서는 우리가 가게 운영 아이디어도 주체적으로 내고 있으니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요.”

꿈을 키울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온 건 시니어 파트너들만이 아니다. 김소현 매니저는 전임 청년 매니저였던 친구의 소개로 진장올래에 합류했다. 친구는 카페에서 오래 일해본 경험이 있는 김 매니저의 능숙하고 빠른 일손이 어르신들께 큰 도움이 될 거라며 차기 매니저직을 권했다.

“제 손이 필요한 일자리가 있다면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함께하게 됐어요. 이곳에서 어르신들과 일하다 보면 우리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동료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요. 심정적으로는 정말 그만큼 가깝게 느껴져서 호칭만 다를 뿐이에요. ‘할머니!’가 아니라 ‘파트너님!’이라 부르는 차이죠.”

마흔 살에 가까운 나이 차가 무색하게도, 이들은 서로를 믿음직한 동료로 대하며 의지한다. 진장올래를 기획한 밀양시니어클럽의 사회복지사인 김철오 관장은 이 카페의 콘셉트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이라 말했다. 직원들은 함께 기획하고, 함께 실행하며, 함께 새로운 동네의 문화를 만들어간다.

조형물이 눈에 띄는 카페 외관 벽면.
일반 주택을 개조해 가정집 분위기를 연출한 카페 공간.

소통의 물꼬는 시니어 파트너들이 터줄 때가 많다. 매장에서 직접 고객들을 마주하는 바리스타 어르신들이 “신메뉴 음료 개발이 필요하다”거나 “디저트 종류를 늘려야 할 것 같다”며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회의는 시작된다. 이들이 아이디어를 던지면 김철오 관장과 밀양시니어클럽의 또 다른 젊은 사회복지사인 허영경 팀장, 김소현 청년 매니저가 시니어 파트너들과 같이 생각을 구체화한다.

“한 시니어 파트너님께서 요즘 젊은 손님들이 카페인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를 자주 찾는다며 신메뉴를 개발해 보자고 제안하셨던 적도 있어요. 그때 만든 게 석류에이드인데, 청년층인 저희와 어르신들 입맛이 다를 수 있으니 석류즙과 설탕 시럽의 비율까지도 시니어 파트너님들과 다 같이 시음하며 의견을 모아 정했죠.”

이날 김승희 단장과 김소현 매니저가 손을 모아 만든 진장올래의 주력 메뉴, ‘알로에주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음료다. 건강한 이미지로 노년층에게 반응이 좋은 식재료 알로에에, 젊은 세대가 친숙하게 느끼는 ‘아이스티’ 맛 시럽을 섞었다. 청년 거리 위의 시니어클럽 카페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이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들어가는 알로에는 밀양 시니어클럽의 알로에 농장 어르신 농부들이 길러낸 작물이다. 그 밖에도 카페 메뉴판엔 밀양 딸기가 들어간 딸기크림 찹쌀떡이나 밀양 사과, 대추 등 고장 과일을 넣어 구운 ‘굿바비 샌드’처럼 한 고장에서 난 농산물로 만든 제품들이 가득하다. 이들의 세대 경계를 허무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고향을 향한 애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카페의 꿈은 이곳의 손님이 늘어 진장 청년 거리를 찾는 발길도 늘어나고, 밀양에 오는 사람도 늘어나는 거예요. 평생을 살아온 곳이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지역이 살아났으면 좋겠어요.”

손님을 맞이하며 웃음 짓는 눈가와 원두 그라인더를 쥔 손에는 주름이 세월의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들이 꿈을 꾸는 마음과 고향을 아끼는 마음, 세대를 넘어 소통하려는 마음은 영영 주름지지 않는다. 한자가 지닌 의미대로, 청년(靑年)이라는 말이 나이가 아닌 푸른 마음을 뜻한다면 ‘진장올래’는 누구보다 더 청년거리에 어울리는 공간이다.

글= 장유진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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