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환삼덩굴 쌈을 먹으며

김재원 동화작가 2025. 6. 1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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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동화작가

나는 쌈을 좋아한다. 평소에 별 반찬이 없어도 상추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된장과 고추장을 반씩 섞은 뒤에 멸치나 표고버섯 가루를 넣고 쌈장을 만들어 놓으면 어떤 쌈이든지 좋다. 혼자 등산을 가는 날에도 도시락 싸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다. 밥과 상추에 참치캔 하나만 챙기면 그만이다. 녹음이 짙은 숲속에서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참치를 넣고 상추쌈을 싸 먹으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우리만큼 쌈을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학자에 따라 고구려 시대부터 쌈을 먹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공식적인 기록은 조선 헌조 15년 (1849)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에 남아 있다. 여기에는 대보름날 밥을 나물 잎에다가 싸서 먹으며 복을 기원했다는 ‘복쌈’이라는 쌈이 기록돼 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쌈을 먹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에는 장렬왕후의 밥상에 상추가 올랐다고 하니 왕실에서도 쌈을 애용한 것이 분명하다. 쌈은 남녀나 지역에 차별이 없고 재산의 많고 적음에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취향대로 손쉽게 쌈을 즐길 수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건강을 최고의 미덕으로 손꼽는 웰빙 시대에는 쌈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건강식이다. ‘기적의 밥상’을 쓴 조엘 펄먼 박사는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패스트푸드나 공장에서 만든 주스 햄 소시지 어묵과 기름에 튀긴 요리 대신 신선한 채소와 과일 콩 종류를 많이 먹으라고.

쌈의 재료는 상추 말고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얼핏 떠올려 보아도 열 가지가 넘는다. 머위 배추 양배추 깻잎 갓 케일 치커리 신선초 당귀 호박잎 미역 김 다시마 곰피 등.

내가 주말마다 가꾸는 텃밭에는 다양한 쌈 재료가 자라고 있다. 남들이 잘 먹지 않는 차조기 양고추냉이 천궁 메꽃까지 밥상에 올린다. 늘 보던 식재료에 조금 변화를 주면 일상이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쌈밥을 맛있게 먹고 텃밭을 가꾸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베어낸 뽕나무에서 작은 가지들이 무수히 돋아났다. 산장을 처음 만들 때 몸에 좋다는 뽕나무를 12그루나 심었는데 몇 년 뒤에는 거인처럼 자라서 밭을 다 가렸다. 어쩔 수 없이 세 그루만 남겨 놓고 다 베어냈지만, 뽕나무는 숨바꼭질하듯이 계속 살아났다. 뿌리채 뽑아내지 않는 한 좀처럼 죽지 않는다. 이걸 보고 뽕나무가 얼마나 끈기 있는지를 깨달았다. 생명력이 강하면 그만큼 몸에도 좋지 않겠는가!

뽕나무 못지않게 끈질긴 식물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환삼덩굴이다. 환삼덩굴이 막 돋아날 때는 실처럼 작고 약해 보인다. 저게 자라서 뭐가 될까 싶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지금쯤은 칡덩굴처럼 큰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 있다. 어릴 때는 그토록 여리여리하더니 자랄수록 밧줄처럼 굵어져서 나중에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 줄기를 걷어내려다가 팔에 긁히기라도 하면 옻이 오른 것처럼 피부가 벌겋게 변한다.

꽃이 피고 나면 씨를 또 얼마나 많이 퍼뜨리는지 마치 밭에 씨앗 폭탄을 터뜨려 놓은 것과 같다. 봄에 환삼덩굴 싹이 한 군데서 무더기로 솟아오르는 걸 보면 몸에 전율이 생길 지경이다. 환삼덩굴 씨를 말리려고 틈나는 대로 뽑아내지만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어느새 나무를 타고 올라가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고 있으니!


이처럼 생명력이 강한 환삼덩굴이라 분명히 좋은 성분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어 검색해 보니 고혈압과 피부질환 당뇨에 효험이 있단다. 그래서 시험 삼아 환삼덩굴 잎을 따서 쪄낸 뒤에 쌈을 싸 먹어보았다. 맛이 의외로 괜찮았다. 전혀 거부감이 없고 모르고 먹으면 호박잎과 비슷했다. 그 뒤부터는 종종 환삼덩굴 잎을 싸 먹고 있다. 푹 데쳐서 나물로 무치면 고춧잎과도 닮았다. 건강한 식재료를 먹으면서 골칫거리인 잡초까지 제거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지금은 환삼덩굴에 적응이 되었는지 피부를 긁혀도 전혀 표가 나지 않는다. 환삼덩굴 쌈을 먹으며 은근히 바란다. 사방으로 들불처럼 퍼져 나가는 그 강인함이 나에게도 오롯이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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