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독후감 일반부 수상작] 금상 강정희씨

정유진 기자 2025. 6. 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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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왔다; 치밀하게 직조한 태피스트리, 안개꽃 책

"사랑해."

"얼마나 사랑해?"

"산에 들에 돋아난 나뭇잎과 풀잎 수만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은 계절, 5월이다. 첫날은 비가 왔다. 빗물에 샤워하고 반짝이는 초록이 황홀하다.

'비가 올 것 같아.'

첫 문장에 잿빛 구름이 드리우고, 등 뒤에서 물기 머금은 바람 한 자락이 불어온다. 총 대검 쇠몽둥이 탱크 들이 사나운 힘으로 연약한 생명을 쫓고 겨누어 끝내 짓이기고만, 진저리치는 그해 5월의 회고를, 작가는 가느다랗고 여린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은 그러나 오래도록 동호의 음성으로 독자의 귓가에 남는다. 바람이 구름을 몰고 와 비를 뿌리는 들판에 젖은 채로 서 있는 듯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자리에서 쉬이 일어날 수 없다.

표지에 조그맣고 하얗고 보송한 안개꽃이 가득하다. 꽃송이들은 보일 듯 말 듯 가느다란 줄기에 서로 연결되어있다. 들여다보면 머금은 꽃망울들이 점점이 달려있다. 밤일까. 배경이 어두워 꽃들은 우주에 떠 있는 별처럼 보인다. 겉장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곧 검은 군화와 장갑차와 탱크가 들이닥쳐 으깨어 버리고 말 텐데 어쩌나. 네 귀퉁이를 오려내고 조그만 그림으로 장식한 주황색 네모 안에 세로로 적힌 제목 다섯 글자를 나는 '소년이 운다'로 종종 오독한다.

216쪽 301g, 안개꽃 책은 서가에 꽂혀있어도 자주 눈길을 붙든다. 연필로 밑줄을 그은 초판본 책을 꺼내어 다시 읽는다. 그 안에 그들이 살고 있다. 동호와 정대와 정미와… 다시 볼 수 없는 머나먼 어드메서도 함께 모여있을 그들을 작가는 손짓하여 '너는, 당신은'이라고 2인칭으로 부르며 말을 건넨다. 다정하고도 나직한 현재형 문장들이 조곤조곤 우리를 이끌어 그들 곁으로, 45년 전 그날로 데려간다. 카메라도 아니고 붓과 물감도 아닌, 단지 자음과 모음의 부호만으로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섬세한 세밀화로 그려내 고화질 동영상으로 재생해 보여준다. 세상의 많고 많은 것 가운데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기록하는 그의 글을 읽는 일은 또한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이 비극이 어서 끝이 나기를 바라면서도 남은 책장이 점점 얇아지는 걸 아쉬워하며 읽는다.

종이 위 활자를 읽는 일이 이럴진대 작가는 어떻게 썼을지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다. 작가는 더듬이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우리를 대신하여 가장 먼저 아파하고 혼자 울며, 뒤따라가는 우리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숙명을 맡은 이가 작가이다. 900명의 구술이 담긴 5월 민중항쟁 자료집을 읽는 일은 또 어땠을까.

동호 정대 정미 은숙 선주, 그들과 동행하여 상무대에서 그날 그곳들- 양림동 기독병원 금남로 전일빌딩 중흥동 계림동 시청 도청 충장로를 수없이 왕래했으리라. 글을 쓰는 동안과 쓰지 않는 모든 순간, 꿈속에서도 거리와 건물과 골목을 서성였으리라. 동호가 되었다가 정대가 되었다가 은숙이와 선주와 진수가 되었다가, 그들의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가, 마침내 동호 엄마가 되어야 했을 때 모두를 안고 마지막 문장을 적었으리라. 아무리 강인한 내면을 지녔다 하더라도 몇 번을 무너지고 주저앉았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작가의 두 손을 부여잡고 어깨를 다독이며 안아주고 싶다.

동호 아버지 문건양 씨가 생전에 읽고 읽고 또 읽던 안개꽃 책을 봤다. 거의 모든 행에 붉은색과 검은색 잉크로 줄을 긋고, 42쪽에서 '동호'는 바로 당신 아들이라고, '문재학'이라고 아들 이름을 적어 놓았다. 줄줄 흐른 눈물에 어룽져 밑줄 친 잉크가 번지고 종잇장은 부풀어 울룩불룩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책, 이 책을 광주시에 기증하고 그 역시 먼 곳으로 떠났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제1장 어린 새'를 읽는다.

'광주'는 그냥 도시 이름이 아니다. 우리 발목을, 기억을 붙들고 있어 외면하려야 외면할 수 없는 이름이다. 천추에 각인되어 도무지 옅어지지 않는 처연한 고유명사다. 아니 지금 이순간도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에서 자행하는 반 생명, 반 인간, 반평화, 반민주에 항거하는 숭고한 정신의 다른 이름 보통명사가 되었다. 지구별에서 광주와 무관한 이가 있을까. '도청' 또한 그냥 행정기관으로서의 보통명사가 아니다. '5월'은 그냥 4월 다음에 오는 달이 아니다. 겉으로는 별일 없이 일상을 사는 듯 보여도 일 년 열두 달이 내내 5월인 사람들이 있다. 빈 나뭇가지에 잎보다 일찍 당도한 성급한 봄꽃을 봐도 5월, 지루한 장마가 이어지고 사나운 태풍이 치는 한여름도 5월, 눈바람에 살이 에이는 겨울은 더욱더 5월인 사람들이 있다. 그날 이후 숨 쉬는 모든 날이 5월인 사람들이 있다.

어디 광주뿐이랴. 순천 여수 함평 거창 부산 마산 제주…, 삼천리 비단 강산 마을마다 골마다 눈물과 붉은 피 서리지 않은 곳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이 시대 시인과 소설가는 원통한 땅 곳곳을 더듬어 무고한 영혼을 불러 제례를 올리고 기억하자고, 더 잘 기억하자고 노래한다. 떠난 자와 남은 자를 위무하는 시를 짓고, 서사를 기록한다.
 

금상 강정희 씨

그해 나는 대학생이 되어 이 도시로 왔다. 영문도 모르고 교정에서 친구들과 매운 최루가스를 피하여 학생회관으로 숨어들고, 노란 버스에 실려 금남로 분수대로 가곤 했다. 그러나 정작 그 기간, 그들이 도청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싸우는 동안 나는 계림동 집에 숨어있었다. 숨죽이며 숨어있었다. 도청으로 모이자는 절절한 음성의 가두방송을 이불 속에서 들었다. 낮에는 시청 앞에 나가서 시내버스에 타고 이동하는 시민군을 구경했다. 엄마는 골목 안에 있는 작은 부식 가게에서 산 얼갈이 시래기로 된장국을 매일 끓였고 김치를 조금씩 꺼내 상을 차렸다. 야만의 시간이 지나고 금남로에 나가 아스팔트에 밴 핏자국을 보았다. 내가 그렇게 집안에 숨어있는 동안에 동호와 정대는…. 그들의 순박함 순정함 무구함에 나는 다시 나도 모르는 곳에 숨고 싶다.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세상의 모든 엄마가 자기 속으로 낳은 아들딸에게 하는 말을 남기고 동호 엄마는 도청에서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먼먼 꿈으로만 여겼던 노벨상, 지난해 10월 10일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울며 환호했다. 환호하며 울었다. 상은 작가에게 주는 것이지만 동호와 함께 산화한 많은 '동호들'이 함께 받는 것이기에…. 명치에 걸려있던 만년 된 얼음덩어리가 눈물로 녹아 흘렀다. 위기마다 마음을 모아 헤쳐나온 우리는 큰 경사 앞에서도 함께했다. 비록 어떤 이들은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수상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어쩌랴, 그들 또한 가엾은 이들.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장 폴 사르트르는 그다운 멋진 이유를 언명하며 상 받기를 거부했지만, 높은 권위와 제도의 인정이 큰 의미와 위안이 되는 경우도 있다.

공교롭게도 노벨 주간 이틀 전 우리 나라는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스톡홀름에서 격조 있게 진행되는 축제를 멀리서 지켜보았다. 작가가 환하게 웃어서 나도 따라 웃었다. 작가의 차림새 음성 표정은 우아하고 소감 내용은 그대로 완결된 작품이었다. 보고 또 보아도 흐뭇한 광경, 작가가 노벨 박물관에 기증한 옥색 찻잔마저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줄을 서서 책을 구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밤새워 인쇄기를 돌렸다. 이제 집집마다 책장마다 안개꽃 책이 있다. 우리는 읽는다. 골방에서 홀로 읽고, 가족이 거실 소파에 모여 함께 읽고, 학교 교실에서는 시간을 정해서 읽는다. 도서관과 카페에서 같은 표지의 책을 들고 읽는 우리는 이미 서로 잘 아는 사이다. 낭독을 하고, 윤독을 하고, 필사를 하고, 리뷰를 적고, 나눔을 한다. 먼저 읽은 이와 더 깊이 읽은 이는 행간에 숨은 은유와 플롯의 묘미와 작가의 의도를 찾아 나중 읽는 이에게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 도와가며 읽는다. 안개꽃 책은 인물과 시대와 역사적 사건들을 치밀하게 직조한 한 장의 태피스트리다. 치명적인 고통을 직면하여 그리면서도 우리를 꽃핀 쪽 환한 쪽으로 이끄는 책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 곁에 왔다. 우리가 비록 이모티콘을 보내 안부를 물을 수도 없고 선물하기를 할 수도 없지만 확실하게 우리 곁에 왔다. 지구별 많은 나라에서 읽고 있으니 그들은 이제 세계가 알아주는 유명인이다.

다시 5월, 금남로 가로수 은행나무 새순이 돋아 푸릇푸릇 녹음이 진다. 우리나라는 어쩌면 45년 전 그때와 나아진 게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서 봄이 왔다고 화사한 아웃도어를 꺼내 입고 철쭉 그늘로 꽃놀이도 가고, 반려 강아지와 호수공원 산책도 하고, 붉은 카네이션 꽃바구니와 두유 세트 사 들고 늙으신 어머니 아버지 면회도 가고, 그런 5월 가정의 달이다.

국가와 국민은 가족을 확장한 넓고 큰 가족, 그러므로 가정의 달 5월에 어머니 같고 아버지 같은 국가를 꿈꾸어 본다.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등불 아래서 따뜻한 저녁을 먹는 나라, 환한 쪽으로 한 뼘 가까이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