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개심사와 백제의 미소...마음을 여는 서산 여행
개심사의 휘어진 기둥과 외나무 다리의 서정
해미읍성 순교터의 아픈 기억
서산으로 차를 몰았다. 교과서에서 보던 ‘백제의 미소’가 있는 곳. 마애삼존불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고, 개심사로 가 ‘아, 저렇게 살아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닮고 싶은 얼굴이었다.
그곳은 내가 만든 ‘말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나는 아픈 다리를 잠시 쉬기도 하면서 흰 수증기가 피어 오르는 굴뚝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내 속에 쌓인 후회와, 원망, 질투의 말들을 수증기와 함께 날려 보낸다. 그렇다고 다 날려 보내지는 않고 딱 글로 쓸 만큼은 남겨 둔다. 어떨 땐 굴뚝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을 때도 있고, 어떤 날엔 한 번 스윽 바라만 보고 돌아오기도 한다. 아무튼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와 아침을 먹는다.
백제의 미소 앞에서 풀어지는 마음
마애여래삼존상은 백제 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큰 암벽 중앙에 높이 2.8미터의 석가여래입상이 있고,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 왼쪽에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있다. 볼에 가득 번진 미소가 너그럽고 온화해 ‘백제의 미소’라 일컫는다. 두툼한 얼굴에 커다란 눈과 반원형 눈썹, 넓고 얕은 코, 도톰한 볼살 등이 어우러져 우리가 흔히 보는 위엄 가득한 불상과 거리가 멀다. 옆집 아줌마 아저씨를 닮은 평범한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천 년이 훌쩍 넘은 세월 동안 바람과 비를 맞고도 여전히 온화하게 웃고 있는 이 미소는, 단순한 돌의 표정이 아니라 백제의 마음이자 우리 민족의 이상적인 ‘사람됨’의 표정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말없이 서 있곤 한다. 누구는 자신이 품은 슬픔을 조용히 풀어놓고, 누구는 어깨에 진 무게를 잠시 내려둔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이도 있지만,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바라보다 돌아서는 이들도 많다. 그건 아마도 이 불상이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다만 ‘있어 주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릇 진정한 위로란 말이 아니라 ‘가만히 바라보는 연민의 얼굴과 표정’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 물놀이하기도 좋은 곳
마애여래삼존상에서 가기 전 용현계곡이 펼쳐진다. 이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용현자연휴양림에 닿는다. 길이는 약 2.7킬로미터. 용현계곡은 가야산이 품은 수려한 계곡으로 가야산 줄기인 석문봉 아래 옥양봉과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북동쪽 능선과 일락산에서 상왕산으로 연결되는 북서쪽 능선 사이에 길게 자리 잡았다. 수량이 풍부하고,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는 붉은박쥐(황금박쥐)와 수리부엉이, 가재와 반딧불이 등이 서식할 만큼 깨끗하다.
계곡 끝에 용현자연휴양림이 자리한다. 산등성이와 계곡 주변으로 숲속의집과 산림문화휴양관이 들어섰다. 산림문화휴양관은 3인실부터 6인실까지 객실 크기가 다양하고, 숲속의집은 6~10인이 숙박할 수 있다. 나무 목걸이 만들기, 독서대 만들기 등 다양한 목공 체험과 숲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휴양림에 가기 전에는 서산 보원사지(사적)가 눈에 띈다. 거대한 절집이 있던 터에 지금은 당간지주(보물)와 법인국사탑(보물) 등이 쓸쓸하게 남았다.
서산에는 해미읍성이 있다. 읍내 한가운데 우뚝 선 성이 인상적이다. 조선 태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해 세종 3년(1421)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높이 5미터, 둘레 1.8킬로미터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다. 우리나라 읍성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었다고 평가받는 해미읍성은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읍성’이라 불린다.
읍성 안에는 동헌과 객사, 민속 가옥 등이 있다. 초가지붕을 이고 있는 민속 가옥에서는 서산 지역 노인들이 재현하는 다듬이질이며 짚공예 등을 볼 수 있다. 남쪽의 정문 격인 진남루에서 동헌으로 가는 길 중간에는 둥근 담장을 두른 옥사(감옥)도 있는데, 이 옥사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들었다. 서산과 당진, 보령, 홍성, 예산 등 서해 내륙 지방을 내포(內浦) 지방이라 일컫는데, 조선 후기 서해 물길을 따라 들어온 한국 천주교가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싹틔웠다. 19세기 이 지방에는 주민 80퍼센트가 천주교 신자였을 정도다.
순교의 역사를 뒤로하고 바라보는 오늘날 읍성은 평화롭기만 하다. 읍성 안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는데, 벤치에 앉아 휴식을 즐기는 주민과 관광객의 모습이 유적지가 아니라 공원에 들어선 느낌이다.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 노는 아이도 있고, 투호나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을 즐기는 가족의 모습이 마냥 정겹다.
마음이 환하게 열리는 절, 개심사
해미읍성에서 나온 길은 운산면 목장 지대를 지나 개심사로 이어진다. 산속에 숨어 있는 듯한 이 절은 마치 ‘찾아가는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진 곳 같다. 일주문에는 ‘상왕산 개심사’라는 편액이 걸렸다. 이응노 화백의 스승인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일주문을 지나 10분 정도 솔숲을 걸어가면 무심한 듯 서 있는 절집을 만난다.
개심사에는 외나무다리 말고 눈길 끄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각 가람을 받치는 기둥이다. 하나같이 굽었고 배가 불룩하며, 위아래 굵기가 다르다. 지금까지 봐온 매끈하고 다듬어진 기둥이 아니다. 나무를 전혀 손질하지 않고 원래 모습대로 썼다. 해탈문이며 범종각, 심검당 등이 대부분 그렇다. 특히 범종각 지붕을 받치는 네 기둥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이 모습이 오히려 파격적이다. 굽은 나무로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었을까?
개심사에서 내려와 서산을 나와 집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차 안에서 나는 때때로 백미러를 보았다. 나는 언제쯤 그런 미소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또 그런 얼굴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말을 참으면, 더 걸으면, 더 깊은 눈동자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백미러에 비친 사내는 씨익 웃었다. 그 사내는 내일 새벽에도 말들의 무덤을 향해 걸어가리라.
서산 여행의 종착점은 대산읍 삼길포항이다. 낚싯배를 빌려 당일치기로 낚시를 즐겨볼 수도 있고, 부두에 정박한 어선에서 맛보는 회도 별미다. ‘게국지’는 서산, 태안 지역에서 겨울 밑반찬으로 먹던 토속음식이다. 게장을 담갔던 국물에 묵은김치와 배추 등속을 넣어 끓여 먹는다. 서산시청 앞 진국집이 유명하다. 해미읍성 앞에 자리한 읍성뚝배기는 소머리곰탕으로 유명하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82호(25.06.03) 기사입니다]
Copyright © 시티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