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4.3에 큰 빚을 졌다”...민주정부 계보 이어받은 이재명의 4.3

"대한민국과 이 땅의 민주주의는 제주 4.3 희생자들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제주4.3을 단순한 지역적 아픔이 아닌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과제로 규정해왔다. 12.3내란으로 촉발된 이번 선거를 '제3의 제주4.3을 청산하는 선거'라고 규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제주동문시장 앞 탐라문화광장에서 가진 총력유세 중 "제주4.3은 대한민국 최초의 비상계엄 사건으로, 도민 10분의 1이 학살당한 사건"이라며 "4.3에 대해 우리가 더 빠른 시간에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엄중하게 물었더라면 광주 5.18은 없었을 것"이라며 명확한 관점을 제시했다.
특히 국가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해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고, 민사적 책임까지 끝까지 묻는 제도개선을 시사했다. '내란 척결'이라는 이번 대선의 시대적 과제를 강조함과 동시에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이 대통령의 철학이 담긴 공약이다.
역사적으로 4.3은 민주정부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뒀다. 1988년 김대중 정부는 제주4.3해결을 위한 정치적·제도적인 출발점으로, 오랜 침묵과 금기의 시대를 깬 주체로 평가된다. 제주4.3은 처음으로 국가 차원에서 공론의 장에 올랐고,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된 것과 제주4.3평화공원의 설립 기반이 마련된 것도 이 시기다.
김대중 정부가 진상규명의 초석을 다졌다면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제주4.3의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는 역사적 분기점을 만들어냈다. 정부 공식 문서로 4.3의 성격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로 규정했으며, 대통령이 직접 4.3유족과 제주도민에 고개를 숙여 사과한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근 10년의 터울을 두고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전 민주정부의 성과를 계승하면서 구체적인 성과물을 도출했다는데 의미가 부여된다. 4.3특별법 개정으로 정부 차원의 추가 진상조사가 가능하도록 했고, 4.3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근거를 마련했다. 특히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특별재심을 통해 명예회복의 길을 열었다.
이 대통령도 "제주4.3에 대해 우리 더불어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참으로 많은 진척을 이뤄냈다. 진상규명도 했고, 사과도 했고, 법을 만들어 보상도 했다. 제주에서 이 성과에 대해 오랜 시간 기억해 주시리라 믿는다"며 '후광 효과'를 내세우기도 했다.
적잖은 정치 구력을 지닌 이 대통령은 그간 4.3과 관련한 크고 작은 연을 맺어왔다. 성남시장 재직 당시에도 4.3희생자추념식을 찾았고,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에는 추경에 4.3창작오페라 지원 예산을 편성하며 이목을 끌었다. 제주도 외의 타 지자체 중 4.3 관련 예산을 반영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공식적으로 명시한 4.3관련 공약은 '제주4.3아카이브 기록관 건립'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과 맞물려 4.3기록물의 체계적인 보전과 활용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는 3단계에 걸쳐 추진중인 제주4.3평화공원을 완결짓는 사업과 궤를 같이 할 것이란 기대감이 표출된다. '제주4.3평화공원 활성화'로 명명된 이 사업은 현 4.3평화공원 길 건너 유휴부지에 국제평화문화센터와 트라우마치유센터를 건립하는 내용으로 추진된다. 4.3아카이브 기록관 역시 장소를 같이 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시설 조성에 그친 이 대통령의 공약이 다소 피상적인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4.3의 핵심 과제는 실질적인 추가 진상규명과 배보상 등에 남겨졌다는 목소리다. 또 최근 논란이 된 4.3 폄훼·왜곡 세력에 대한 처벌 근거 마련과 4.3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정명(正名) 작업 역시 더이상 미뤄져서는 안되는 과제로 꼽힌다.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선대위는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정책제안에 "4.3정의 규정 등 4.3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고, 유족 결정 간소화와 보상금 조기 지급으로 신속한 명예회복을 실현하겠다"고 답변하며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4.3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이 대통령이 약속한 제도개선과 정책 이행이 진정한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진심을 증명할 수 있을지, 민주 정부를 비롯한 대한민국이 쌓아올린 역사 앞에 책임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