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장에서 장벽 없애는 문화 공간으로… 佛 라 빌레트의 실험 "韓과도 나누고파"

김나인 2025. 6. 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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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예술"… 라 빌레트의 문화 민주화 실천
장애와 경계를 허무는 포용적 공연 실험
프랑스 ‘컬처 패스’, 청소년 문화접근성 넓혀
5월 28일 열린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에서 실베스트르 고즐랑 라 빌레트 문화예술교육 및 접근성 책임자가 토론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프랑스 파리의 라 빌레트(왼쪽 사진)와 리틀 빌레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5월 28일 열린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에서 쟈스민 프랑크 리틀 빌레트 매니저가 발표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28일 열린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에서 쟈스민 프랑크 리틀 빌레트 매니저가 전문가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28일 열린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에서 실베스트르 고즐랑(왼쪽) 빌레트 문화예술교육 및 접근성 책임자와 쟈스민 프랑크 리틀 빌레트 매니저가 발표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도축장에서 아이들을 위한 문화 예술 중심지로.'

1987년 프랑스 파리 북동부 외곽의 옛 도축장이 공공문화 실험실로 탈바꿈했다. 도시 재생의 상징, 문화예술교육의 실험장인 '라 빌레트(La Villette)'다. 이곳에 어린이 전용 공간으로 뿌리내린 '리틀 빌레트'는 자연과 예술, 건축이 어우러진 환경에서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아이들은 이 공간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간다. 도심에 머무르는 아이들도 리틀 빌레트에 마련된 정원과 농장에서 흙을 만지고 동물들과 가까이 호흡하며 자연을 체험한다.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열린 학교'에서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의 주도하에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탄생한 라 빌레트는 문화·과학·자연 복합공간으로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꼽힌다. 1980년대 미테랑 정부의 국가 주도 문화 인프라 프로젝트인 '그랑 프로제' 일환으로 1860년대 도살장과 정육 시장이 모여있던 육류 유통 중심지를 재생해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공원으로 조성됐다.

라 빌레트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난달 28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세계 문화예술교육 주간 및 한국 문화예술교육 정책 2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제6회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 참석을 위해 최근 한국을 찾았다.

◇ 장벽 없애는 문화 공간= 라 빌레트의 실베스트르 고즐랑 문화예술교육 및 접근성 책임자는 디지털타임스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문화 민주화'의 기치에 따라 라 빌레트에서 진행하는 모든 활동의 목표는 사람들과 예술 프로그램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포용적이고 접근가능한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한국과도 경험들을 교류하고 상호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매 시즌 팀과 함께 서커스, 힙합 댄스, 연극 등 100여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 공연 관람의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패럴림픽 개최 당시 국가별 하우스인 '클럽 프랑스'를 운영해 장애인들의 접근성 향상에 힘쓰기도 했다.

라 빌레트는 다양한 민족 공동체들이 거주하는 서민 지역에 위치해 사회적·지역적·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 발을 딛도록 한다. 극장이나 미술관, 박물관의 방문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은 문화예술 공간을 처음 접하면 낯설어하거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비웃거나 거부하거나 심하면 공격적인 반응도 보인다. 그는 "라 빌레트의 모든 활동이 이같은 긴장을 완화해 아이들과 문화예술과 만남을 돕는 것이 목적"이라며 "문화예술의 코드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위화감 없이 공간과 예술을 경험하도록 단계적 프로젝트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라 빌레트의 세 가지 핵심 활동은 △예술가와의 창작 체험 △공연 전후 예술가와의 만남 △관객으로서의 공연 감상이다. 그는 "리허설 현장에 직접 참여하거나 무대 뒤 직업군을 만나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예술을 자기 일처럼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정신장애 아동과 가족들을 위한 '릴렉스' 공연도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공연 도중 말을 하거나 퇴장해도 문제없는 환경을 제공하고 좌석 위치, 휴식 공간까지 섬세하게 설계했다. 지난 4월에는 1200명 관중 중 50여명의 청각장애 청소년들이 참가한 '골든 스테이지' 힙합 댄스 공연이 성공을 거뒀다. 소리를 진동으로 바꿔주는 진동 조끼로 무대의 열기를 함께 느꼈다. 진행자 중 한 명도 청각·언어장애인으로 무대에 올라 포용적 공연을 이끌었다. 라 빌레트는 매 시즌마다 음성해설, 상단자막, 무대 촉각 체험 등 접근성 확보에 힘쓴다. 내년에는 스마트 안경도 도입할 예정이다.

◇ 자연과 예술 공간서 배우는 아이들 = 2016년부터 라 빌레트의 정원과 농장을 포함해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전용공간인 '리틀 빌레트'를 이끈 자스민 프랑크 프로젝트 매니저는 "리틀 빌레트의 노하우는 우리 기관을 방문하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자극하고 프로그램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데 있다"며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아이들이 경이로움을 느끼고 자아실현을 이뤄 자유롭게 자신의 창의력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틀 빌레트에서는 '등불 축제', '리틀 시네' 등 다양한 인원을 수용하는 행사와 공간도 제공한다. 등불 축제 전 아이들은 종이와 나뭇가지로 직접 자신만의 등불을 만들고 축제 당일 공원에 모여 행진을 한다. 아이들의 등불로 공원의 밤을 밝히는 순간, 그들은 시적인 순간의 주인공이 된다. 어린이영화 상영 프로그램인 리틀 시네는 온라인 예약 없이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놀이 테이블, 독서 라운지, 블록 놀이 등 가족과 함께 노면서 즐기는 소규모 프로그램도 강사들의 주도하에 열린다.

교육용 정원과 함께 도시형 농장도 운영한다. '자연'이라는 교육 자원을 기반으로 출신과 환경과 관계없이 아이들이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배움의 장'을 지향하기 위해서다. 아틀리에는 외부에서 진행하는 활동을 포함하거나 '스트리트 아트' 아틀리에로 배경으로 활용한다. 프랑크 매니저는 "아이들은 정원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연말이 되면 직접 키운 채소로 음식을 만든다"며 "이는 생명의 순환을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 "문화는 움직이는 것…더 크게 봐야" = 라 빌레트는 단순 체험의 장이 아니다. 감각적이고 집단적인 참여를 통해 아이들이 '창의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종의 문화적 실험실이다. 라 빌레트는 교육자, 예술가, 참여자와 협력해 프로그램을 설계한다. 특히 사회적 소외계층에 주목해 문화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한다. 문화가 뒤섞이는 상황에서 문화는 '살아있는 것, 변화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서커스, 힙합 댄스, 현대 예술로 '움직이는 문화'를 반영하기 위해 힘쓴다.

프랑스 정부의 문화예술 교육 정책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1년에는 '컬처 패스'를 도입해 청소년뿐 아니라 교사도 공연, 전시, 교육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청소년에게 일정 규모의 금액을 지원해 책이나 악기를 사거나 영화관, 극장, 박물관의 표를 살 수 있다. 고즐랑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크게 봐야 한다"며 "프랑스와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팬데믹, 전쟁, 인플레이션과 같은 최근 위기를 온전히 겪어낸 만큼 그들의 삶에 다시 기쁨을 선사하고 어깨에 올려진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라 빌레트는 이번 방한 기간 어린이 대상 문화예술교육 전용공간 조성사업 관련 실무 협의를 비롯해 해외전문가 연수에도 참여해 국내외 관계자들과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철학과 미래 지향점을 공유했다.

방한 일정 중 한국의 고궁과 박물관, 교육 현장을 방문한 이들은 "수준 높은 콘텐츠와 열정적인 전문가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고즐랑은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 안내가 좀 더 직관적이고 친근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라 빌레트에서는 '읽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문(FALC)'을 따로 제작하며, 공연에 앞서 어린이용 안내지와 포스터도 배포한다.

한편, 이번 포럼을 개최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라 빌레트를 비롯해 영국 어셈블, 이탈리아 레지오 칠드런 등 해외 기관과 협력해 어린이 및 미래세대를 위한 예술교육 공간 조성 관련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국제적 협업 기반 위에서 실험적인 예술교육 모델을 구축할 방침이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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