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은 단순한 휴일 아닌, 나라위해 생명 바친 분들께 경의표하는 날" [현충일특집] 송태현 광복회 대의원

김국 PD 2025. 6. 1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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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정신 계승...충분한 예우 갖춰야"
"인천서 임시정부 태동시킨 '만오 홍진선생' 추모사업 추진"
"일제감정기 독립운동정신 살려 안보와 애국심 고취시켜야"
              송태현 광복회 대의원(경인방송 독립운동사 해설위원)

■ 방송 : 경인방송 라디오 <굿모닝 인천, 이도형입니다> (FM 90.7MHz 오전 7~9시 방송)  

■ 진행 : 이도형 앵커

■ 인터뷰 : 송태현 광복회 대의원

[현충일특집 방송 다시듣기▶클릭]

*인터뷰 저작권은 경인방송 라디오에 있습니다. 인용 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이도형 : 경인방송FM 90.7MHz 굿모닝 인천, 이도형입니다. 오늘은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며 그들의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되새겨 보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누구보다도 이날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계신 분 모셨습니다. 광복회 대의원이자 독립유공자 후손인 송태현 선생님과 함께합니다. 대의원님 안녕하세요?

◇ 송태현 : 네, 안녕하십니까? 

◆ 이도형 : 먼저 오늘 현충일인데요. 현충일이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송태현 : 네. 현충일이란 말 그대로 충렬을 드러내는 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날입니다. 매년 6월 6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법정공휴일 중 하나입니다. 이날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이들의 희생을 되새기고, 국민 모두가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책임을 되돌아보는 의미 깊은 날입니다. 

◆ 이도형 : 현충일의 유래 그리고 제정 배경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죠?

◇ 송태현 : 현충일의 제정은 한국전쟁 직후 국가안보와 국민통합의 필요성이 높아지던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1953년 6월 25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방부는 군인과 경찰 등 전몰자에 대한 국가차원의 추모의 예우를 논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6년 4월 19일 국무회의에서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하자는 결의가 통과되면서 법정기념일이 되었고 1956년 6월 6일 첫 공식 현충일 추념식이 열렸습니다. 날짜는 조선시대 제례일인 음력 4월 보름, 양력으로 6월 초순에 조상 제사를 지낸 전통에 착안해 6월 6일로 결정되었습니다. 

◆ 이도형 : 현충일의 유래와 제정 배경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는데요. 근데 사실 젊은 세대들 현충일을 그냥 휴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좀 이야기 들어볼까요? 

◇ 송태현 : 우리가 그 일제강점기 전 민족의 독립운동궐기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또 우리가 해방 후에는 남북분단 후 조국의 전쟁 참화가 있었고, 국가수호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에 의해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절대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전몰 순직 순경 등 인물들은 국가보위를 위해 순직한 이름 없는 제복 입은 영웅들이었기에 나라에서 충분한 예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의무입니다. 그 현충일에 기억나는 우리가 인물들 개개인이 아닙니다. 그 제복을 입고 국가보위를 위해 헌신하고 산화한 애국자들 전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이도형 : 아까 기억해야 될 분들 얘기해주셨는데요. 이번 현충일을 계기로 해서 청년들에게, 우리 또 젊은 세대들에게 꼭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이 있다면 소개 좀 해주시겠습니까? 

◇ 송태현 : 현충일에 우리가 기억하는 인물은 참 많이 있습니다. 제복 입은 우리 선열들, 특히 국방을 위해서 선두에 나서서 국가수호를 위하다가 산화하신 분들, 우리 국가보훈부에서도 쭉 연례적으로 매달 이달의 그 호국보훈대상자를 선정해서 널리 홍보하면서 추념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한 분 한 분 우리가 특별한 분을 거론하는 것보다도 조국수호를 위해서 산화한 분들 전체적으로 우리가 참 그분들을 예우를 하고, 그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 날이 오늘 현충일이다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다. 

◆ 이도형 : 저희가 최근에요 만오 홍진 선생에 대한 얘기 좀 나눠봤는데요. 그 내용도 조금 그분에 대한 소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 송태현 : 네. 우리 만오 홍진 선생은 우리 인천이 낳은 유명한 그 독립운동가 중의 한 분입니다. 특별히 우리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의정원 의장을 하신 아주 법률에 정통한 분입니다. 우리나라 초기에 구한말에 법관양성소를 수련하시고, 또 검사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나라 독립을 해서 국내에서, 해외에서 많은 독립운동이 싹텄지 않습니까? 우리 인천을 중심으로 해서 한성임시정부가 태동이 됐습니다. 거기에 주동으로 하신 분이 홍진 선생이세요. 우리 인천에 만국공원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자유공원이라고 하죠.

이북 12도, 그 우리나라 12도 대표자들이 모여서 거기서 우리 임시정부를 태동하는 그 첫 회의가 열립니다. 거기에 주동하신 분이 만오 홍진 선생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그 임시정부를 세우자는 결의를 하고, 이것이 러시아의 연해주에서도 일어나고, 또 상해에서도 일어납니다. 또 우리 한성에서 본토에서 일어나고. 이 3개 연합이 1919년 4월 달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을 합니다 상해에서 거기에 의정원 3대 의장을 우리 홍진 선생이 했습니다. 

◆ 이도형 : 지금의 국회의장이죠?

◇ 송태현 : 그렇습니다. 세 번, 상해임시정부 기간 동안에 세 번을 의장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조국 통일될 때까지 그때 마지막 또 의정원 의장을 하신 분이 홍진 선생이십니다. 이분이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고국에 돌아와서 그 다음 해 1946년도에 이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여기 우리 인천에 문학동 있지 않습니까? 문학산. 거기에 묻혀 있다가 나중에 현충원으로 이장이 돼가지고 또 아주 특이한 건 우리 국회, 현 국회의사당에 이분 흉상을 얼마 전에 몇 년 전에 세웠습니다. 초대 지금 말하면 국회의장을 하신 거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국회도서관에 가면 이분의 기념흉상도 있고, 뒤에 이분의 그 흔적, 이력을 새겨놓은 게 있습니다. 

◆ 이도형 : 오늘 현충일 맞이해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이야기 나눠보고 있는데요. 앞서 사실 산화됐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잖아요. 특히 6.25전쟁 때 그런 경우가 국군장병들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6.25전쟁 관련한 이야기 좀 들어볼까요? 

◇ 송태현 : 네. 우리가 6.25전쟁을 참 그러니까 다 아시다시피 1950년 6월 25일 불의의 그 북한이 남침을 해서 우리 전 국토, 또 우리 산하가 피로 물들고, 또 우리 국군들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후퇴하고. 여기에 참여한 우리 국군장병들의 산화된 목숨들의 넋이 참 천하 우리 방방 삼천리강산에 다 이렇게 산화돼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1950년도 이렇게 일어나고, 거기에 그 후에 우리 국가에서는 이러한 산화된 우리 국군장병 중심으로 해서 어떻게 그 넋을 참 보존하고 이걸 기리느냐 전 국민한테 이게 우리 현충일의 그 날짜도 정해지고 장소도 정해져가지고 그분들의 그 위패, 또 그분들의 발굴된 시신, 이런 거를 전부 그 당시에는 초기에는 지금은 동작동에 현충원이라는 명칭도 바꾸고 엄청난 규모의 국가시설이 돼 있지만,

1953년도 휴전 이후에 첫 번에 태동됐을 때는 그 명칭이 동작동 국군묘지, 이런 아주 그 명칭부터 소규모로 시작이 됐다가 지금은 국가차원에서 국군만이 아니라 순국선열, 일제강점기 때 항거하다 돌아가신 이런 영혼들도 거기에 다 위패도 모시고, 거기 다 같이 안장이 돼 있습니다. 이게 우리 6.25로 인해서 이게 우리 국립현충원 또 이런 시설이 됐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 이도형 : 대의원님, 현충일 맞이해서 주요 행사를 많이 벌이지 않습니까? 어떤 행사가 있는지 좀 소개할 만한 그런 행사가 있을까요? 

◇ 송태현 : 네. 그 현충일에는 전국적으로 다양한 추모 및 기념행사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리는 중앙추념식입니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주요 인사, 순국선열 유가족, 참전용사, 시민 등이 참석하여 오전 10시에 묵념사이렌에 맞춰 1분간 순국자에 대한 묵념을 합니다. 이 시간에는 전국 어디에서든 차량이 멈추고 국민들이 함께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연출됩니다. 

또한 국립현충원을 비롯한 국립묘지에서는 헌화·분향·참배가 이어지고, 일부 지방단치단체나 학교, 군부대에서도 추모행사를 자발적으로 실시합니다. 

◆ 이도형 : 현충일 주요 행사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셨는데요. 그만큼 현충일이 중요하니까, 의미가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현충일의 의미, 중요성 한번 다시 한 번 짚어주신다면요?

◇ 송태현 : 우리 첫째, 국가수호를 위한 희생의 숭고함을 기리는 것입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며,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평화와 자유가 없었음을 상기하게 됩니다. 

또 두 번째, 안보의식과 공동체정신 고양입니다.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국민들이 되새기고 이를 통해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다지게 합니다. 

세 번째 역사의식과 애국심 교육의 계기가 됩니다. 특히 학생들에게 현충일은 역사교육과 애국심 함양의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국가의 역사 속 희생자들을 통해 한국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 이도형 : 또 현충일 노래 설명 좀 해주시죠?

◇ 송태현 : 참 그래서 이게 현충일 노래 제가 이걸 하나 좀 기록을 해왔습니다. 하나 제가 이 노래를 가사를 읽어드리겠습니다.

'겨레와 나라 위에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임들은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아 그 충성 새로워라'. 참 뜻이 깊습니다. 

◆ 이도형 : 사실 우리가 묵념하고 그럴 때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이런 얘기도 하잖아요. 근데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것 같은데. 또 아직까지 순국선열, 애국지사, 호국영령, 이게 좀 뭔가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좀 헷갈리시는 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오늘 또 현충일 맞이해서 청취자 여러분들께 좀 이해를 돕기 위해서 좀 설명을 좀 하나하나 해주시죠?

◇ 송태현 : 네.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인천 전 지역의 학교를 참 방문하면서 우리나라 참 독립운동, 또 이렇게 우리 보훈의 이런 달을 맞이해서 또 우리 국가보위 위해 산화한 분들 위해서 교육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전부 다 아시다시피 국가경축일이라든가 또 이런 현충일의 추념식, 이런 때 우리가 그 국민의례를 하지 않습니까? 

국기에 대해서 경례도 하고, 애국가도 우리가 제창도 하고, 그 다음에 순국선열, 또 호국영령, 애국시설에도 묵념, 이렇게 하지만 우리가 이게 기계적으로 매년 하는 거기 때문에. 하지만 참 우리가 순국선열이 뭔지, 애국지사가 뭔지, 또 호국영령이 뭔지 막연하게만 알고 구체적으로 잘 모릅니다. 

참 성인들도 그렇지만 학생들도 교육차원에서도 제가 이런 거를 얘기를 하는데 우리가 순국선열 그러면 분명한 뜻을 알아야 됩니다. 쉽게 말해서 순국선열은 뭐냐 하면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조국독립을 위해서 국내에서, 해외에서 독립을 운동을 하다가 일본 관원이나 경찰에 붙잡혀서 우리가 일본 쉽게 말해서 감옥소에서 고문을 당하시고 갖은 고생을 하시다가 옥살하신 분이나, 또 살아계셔서 계속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이 되기 전에. 우리가 해방이 1945년 8월 15일 날 해방이 됐잖습니까? 

그전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을 우리가 순국선열이라고 그럽니다. 대표적인 분들이 우리가 안중근 의사라든가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여자 유관순 열사, 이런 분들을 우리가 순국열사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다음에 독립운동을 치열하게 하셨지만 광복을 맞이하고 광복 후에 살아계신 분들 김구 선생, 조소앙 선생, 뭐 여러 그 애국지사들, 이런 분들은 우리가 국가에서 독립운동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 건국훈장을 수여를 하고 순국선열도 마찬가지만 그런 분들은 우리가 애국지사 그 후에 돌아가신 분들 일제강점기를 포함해서 우리가 6.25전쟁이라든가 여러 가지 국내에 재난이 있을 때 목숨을 바쳐서 거기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호국영령이라고 그럽니다. 

근래에 우리가 볼 수도 있죠. 나라 재난이 됐을 때 큰 불이 났을 때라든가 이럴 때 소방관들, 이런 분들도 그 진화 업을 하다가 국가를 위해서, 백성들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분들, 이런 분들도 우리가 호국영령이라는 명칭을 씁니다. 

그래서 국가 경사스러운 기념식 때나 또 추념식 때 그런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묵념을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순국선열, 애국지사, 호국영령, 이런 분들의 뜻을 좀 알고 우리가 항상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있고, 또 이렇게 우리가 참 평화롭게 산다는 건 이런 분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 이도형 : 어쨌거나 순국선열, 호국영령, 이를 추념하기 위해서 묵념을 하는 건데요. 오늘 현충일을 맞이해서 송태현 광복회 대의원님과 얘기 나눠보고 있는데요. 오늘 마무리 말씀 듣고 오늘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 송태현 : 현충일은 단순한 휴일이 아닌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능케 한 희생과 헌신의 날입니다.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며 그들의 뜻을 새기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전한 진정한 애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년 6월 6일 단 1분이라도 고개를 숙여 순국선열의 넋을 기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그 출발이 될 것입니다. 

◆ 이도형 :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대의원님 오늘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광복회 대의원이자 독립유공자 후손인 송태현 선생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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