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스마트폰은 마약일까 그네 놀이일까

이상원 기자 2025. 6. 1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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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기기를 쓰는 아이가 급증하고 있다. 그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부모는 아이의 간청을 끝까지 이겨내지는 못한다. 개인 차원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아동의 모습.ⓒ시사IN 이명익

양육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아이가 스마트기기와 최초로 접촉하는 순간은 부정적 의미에서 특별하다. 이를테면 이유식 준비를 마친 어느 날 아침, 아이에게 돌아선 부모는 불길한 놀라움을 맛본다. 스마트폰 액정에 앙증맞은 엄지, 검지손가락을 대고 ‘줌인, 줌아웃’을 시도하는 모습을 맞닥뜨리는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집안에서는 스마트기기를 사이에 둔 전쟁이 벌어진다. 다투는 건 부모와 자녀이지만 승자는 없다. 소수의 기술 기업만 득을 보고, 어른과 아이 모두 깊이 상처 입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놓인 상황을 보자.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한국미디어패널조사에 따르면 2015년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다고 답한 10세 미만 아동은 약 21%였다. 2024년 같은 조사에서 이 수치는 62%로 뛰었다. 열 살 미만 아이 셋 중 둘은 제 스마트폰을 가진 셈이다. 범위를 ‘스마트폰’이 아니라 ‘스마트기기’로 넓히고, 가족의 기계를 빌려 쓰는 것까지 포괄한 조사도 있다. 지난해 9월 〈시사IN〉과 초록우산의 ‘아동·청소년 스마트폰 기반 생활 현황 조사’다. 응답자 절반 가까이가 ‘6세 미만부터 스마트기기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학생 1287명과 보호자였다. 스마트기기를 처음 접하는 나이가 갈수록 어려지는 추세로 미뤄보아, 현재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쓰는 6세 미만 아이들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눈에 띄는 사회문제는 ‘과의존’, 속칭 중독이다. 아동과 청소년은 여기에 특히 취약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는 현저성, 조절 실패, 문제적 결과라는 기준으로 과의존 여부를 가린다. 국제보건기구(WHO) 등 세계 정신의학계에서 ‘행위 중독’을 판가름하는 조건이다. 가족·친구와 대화하는 것보다 유튜브 시청이 더 중요한 일상이라면 그것은 ‘현저’한 문제 행동이다. 스마트폰 게임에 몰두하느라 오늘까지 마쳐야 하는 업무를 절반도 하지 못했다면 ‘조절 실패’다. 스마트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매일 밤 인스타그램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는 것이 ‘문제적 결과’다. 2015년 스마트폰을 쓰는 유아(10세 미만) 중 이런 과의존 위험군에 드는 비율은 12.4%였다. 2024년 조사에서는 25.9%로 늘었다. 같은 해 청소년(10~19세) 통계는 더욱 놀랍다. 청소년 스마트폰 이용자 42.6%가 과의존 위험군이다. 2024년 성인 과의존 위험군(22.4%)의 두 배에 가깝다.

스마트폰 과의존은 나쁜가? 21세기 초엽 기술 예찬론자들은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스마트폰 때문에 아이가 학습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학습’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말은 미국 교육학자 마크 프렌스키가 2001년 창안했다. 프렌스키에 따르면 디지털은 단순한 기술이나 여가 생활이 아니라 새로 이룩된 ‘세계’다. 성인이 되어 이 세계에 닿은 기성세대는 ‘이민자’다.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기술과 함께 살아온 젊은 세대야말로 그 ‘원주민(native)’이라고 그는 봤다. 프렌스키는 오늘날 교육이 새로운 세대에 맞지 않는다며 게임 기반 학습, 디지털 이용 교육과정 등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아이들에게서 전자기기를 빼앗는 것은 무의미하다” “경험이 중요한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등이 그가 주장하는 골자다.

<중독되는 아이들>을 펴낸 박성열 서울마음숲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시사IN 박미소

그러나 신기술을 어려서부터 체험한 이들이 기성세대와 전혀 달리 사고하고, 더 나은 결과를 내놓으리라는 전망은 근거가 부실하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멀티태스킹에 능하다’는 편견이 있다. 어려서부터 웹서핑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한꺼번에 여러 일을 능률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경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증명해왔다. 2010년대 이후 다양한 국가와 연구기관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멀티태스킹’이라는 용어 자체가 틀렸다고 본다. 우리가 한 번에 여러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믿는 동안, 두뇌는 그저 여러 일을 빠르게 ‘전환’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이들이 멀티태스킹에 특별히 능하지도 않고,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도 다수 있다.

일각에서는 아동·청소년의 스마트폰 과의존을 외부 요인의 ‘결과’라고 본다. 한국 청소년은 적절한 놀잇감이 없고, 사교육이 과도해 여가 시간이 불충분하기에 스마트기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시사IN〉·초록우산 조사에서도 학생들은 스마트폰 과의존 원인 1위로 “폰보다 재밌는 게 없어서”를 꼽았다. ‘스마트기기가 우울증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 우울한 사람이 스마트기기에 빠져든다’는 주장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게임 과몰입 논쟁에서도 등장했던 논지다.

아이들이 스마트기기에 빠져드는 진짜 이유

이러한 ‘결과론’은 두 가지 논거로 반박된다. 첫째, 이 현상은 한국 특유의 것이 아니다. 한국만큼 사교육이 과하지 않고(한국과 같은 국가는 드물다), 놀이공간이 충분한 사회에서도 청소년의 스마트폰 과의존은 심각한 문제다. 둘째, 스마트폰과 그 콘텐츠 일부는 중독을 유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스마트폰보다 재밌는 게 없다’는 학생의 말 중, ‘재밌는 게 없다’가 아니라 ‘스마트폰’ 자체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의미다. 아동과 청소년의 두뇌 발달 과정을 살피면 이들이 유독 스마트폰에만 눈이 번뜩이는 데에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

지난 4월 국내 소아정신과 전문의 8명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기획에 따라 책 〈중독되는 아이들〉을 펴냈다. 아동·청소년을 포괄한 인간의 뇌 발달 과정을 설명하고 스마트기기가 어떻게 아이를 끌어당기는지 적었다. 공저자인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박성열 서울마음숲정신건강의학과 원장에게 ‘ADHD·우울증이 스마트폰 과의존을 유발하는지, 아니면 스마트폰 과의존이 질환의 원인인지’ 묻자 “둘 다 정답”이라고 말했다. 우울한 사람이 가상 세계에 더 몰입하는 현상은 분명히 관찰된다. 그런데 먼저 디지털 미디어에 빠져들면서 이후 사회관계가 단절되고 우울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것은 교육 환경 탓일까? 박 원장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ADHD가 있거나 스마트기기에 특히 취약한 아이 부모에게는 ‘어릴 때부터 시간을 비워두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교육을 조장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면 아이를 예체능 학원에라도 보내는 게 낫다. 혼자 집에 있으면 많은 아이가 디지털 미디어에 빠지기 쉽다.” 자녀의 여가 시간을 디지털 미디어로 채우느니 차라리 학원에 맡기는 편이 낫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태엽 서울아산병원 교수.ⓒ시사IN 신선영

스마트기기는 아동과 청소년 두뇌의 맹점을 직격하도록 고안되었다. 사람의 두뇌는 만 6세 이전에 성인의 90%까지 발달한다. 이 시기 두뇌가 건강하게 발달하기 위해서는 갖가지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스마트기기가 제공하는 미디어는 인류가 수만 년 이상 반복해온 유아기의 다양한 활동을 저해한다. 성장에 필수적인 수면 시간이 줄어든다. 보호자와 애착 형성을 통한 언어 발달 적기를 놓친다. 능동적이고 모험적인 신체 활동을 방해한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자란 사람은 집중하는 법을 좀처럼 깨우치지 못한다. 의도적으로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화면이 빠르게 전환되는 디지털 미디어 영상은 아동이 능동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부여되는 ‘보상’이다. 여기 익숙해진 뇌는 끈기 있게 무언가에 골몰해 성취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하고 주의 집중을 유지하는 것보다 직관적인 보상만 좇는 사람으로 자라나기 쉽다.

청소년기가 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뇌의 각 영역 발달 속도에 편차가 벌어지면서 갈등이 커진다. 장기적 목표를 설정하고 충동을 억누르는 ‘생각하는 뇌’ 전두엽은 20대 중반이 돼야 완성된다. 반면 보상을 통합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강화하는 ‘반응하는 뇌’ 변연계는 청소년기에 먼저 급속도로 발달한다. 이 ‘발달의 불균형’이 곧 사춘기다. 변연계가 발달하면서 보상에 강렬한 열망을 느끼는데 이를 제어할 전두엽은 미완성이라 쉽게 분노하고 불안해한다. 박성열 원장은 “아동의 뇌는 찰흙과 같다. 빚기에 따라 변하지만 일단 굳어지면 바꾸기 쉽지 않다. 아동 시기 디지털 미디어를 오용해 전두엽 발달이 덜 되었다면 성인기에도 문제가 남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대부분 아동과 청소년이 스마트기기를 원하는 이유는 네트워크다. 반 친구 모두가 하는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홀로 떨어져 나올까 봐 두려운 것이다. 청소년의 두뇌는 예로부터 또래집단의 인정을 최상의 보상으로 여겼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모이는 ‘하트’야말로 우리 시대 아이들이 가장 갈망하는 보상이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지난해 펴낸 책 〈불안 세대〉에서 “실리콘밸리의 플랫폼 설계자들이 심리학적 체계를 정조준했다”라고 적었다. 이 책에 따르면 SNS는, 단순히 학업에 몰두할 시간을 빼앗기에 나쁜 것이 아니다. 정신 건강 악화의 직접적 원인이다. 하이트는 ‘동조 편향’과 ‘권위 편향’으로 청소년의 SNS 집착을 풀이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르는 동조 편향은 대부분 환경에서 안전한 선택이다. 많은 사람이 높이 평가하는 바를 좇는 권위 편향은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효율적이다. 인간은 수천 세대 이상 두 편향을 문화적 전략으로 삼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실리콘밸리의 기획자들은 이제 본능으로 자리 잡은 이 행동 양식을 극도로 자극하는 도구로 SNS를 개발했다.

SNS는 동조 편향을 수상한 방향으로 강화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보편타당한 행동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SNS 플랫폼에서는 매우 빠르게, 수치(‘좋아요’ 개수 등)로 알 수 있다. 보상에 목마른 청소년이 집착하게 만든다. SNS는 또한 권위 편향을 왜곡한다. 현실 공동체에서 성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 대신, ‘팔로어’를 끌어모으는 데 탁월한 사람의 행동양식을 따르는 게 더 즉각적 만족을 준다. 아이가 우러러보는 새로운 롤모델은 보정 앱으로 신체를 고쳐 전시하는 또래 친구일 수도 있고,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인플루언서 말썽꾼일 수도 있다. SNS가 강화하는 편향은 청소년을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고 그들의 자존감을 낮춘다.

책은 특히 어린 여성들의 정신 건강을 우려한다. 스마트기기 과의존이 그렇듯 이른바 ‘조용한 학살’도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안 세대〉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10세에서 14세 사이 미국 여성의 응급실 방문 자해 환자 수는 188%가 늘었다. 같은 기간 동 연령대 남성 환자는 48% 증가했다. 이 시기 미국 여성 청소년 자살률 증가 비율은 167%이다. 남성 청소년 자살률은 91% 증가했다. 1982년 이래 30여 년간 일정한 범위 내에서 오르내리던 수치가 2010년부터 갑자기 뛴 것이다. 영국·오스트레일리아·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 서구 국가 다수에서 같은 시점에 비슷한 추이가 생겨났다.

“화성 이민처럼 미지의 위협”

하이트는 2010년 발매한 아이폰4가 최초로 전면 카메라 기능을 장착했고, 같은 해 인스타그램이 스마트폰 전용 앱으로 개발된 사실을 짚었다. 사소한 사건처럼 보였지만 실은 변곡점이었다. 자신을 전시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는 자괴로 이어지기 쉽다. ‘자신에게 만족한다’고 응답한 미국 여성 청소년 비율은 2010년까지 30년간 65~70%였으나, 그 이후 50%대로 내려앉았다. ‘사회 비교’에 여성이 더 취약하다는 하이트의 주장은, ‘어린 여성 개인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구조적 문제다. 본래부터 여성 청소년은 ‘완벽해야 한다’는 개인적·사회적 압박에 짓눌려 있었다. SNS는 최근 그들이 짊어지게 된 가장 무거운 벽돌이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특히 여성 청소년이 SNS의 해악에 취약하다고 말한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해악을 알았으니 이제 부모는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자녀의 스마트기기 사용 시간을 더 줄이고, 특히 딸아이는 소셜미디어 접속을 차단하면 해결될까. 불확실하다. ‘만 2세 미만 모든 종류의 미디어 금지’ 원칙까지는 세계 소아정신의학계에서 합의된 다수 의견이다. 아이가 더 크면?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로 스마트기기를 허용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확립된 기준이 없다. 스마트기기가 우울증을 유발할 수는 있지만, 일정 연령 이상의 아이는 스마트기기나 SNS 접속 기회를 박탈당했을 때 그 이상의 불행을 호소한다. 〈중독되는 아이들〉 공저자인 이태엽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마다 편차가 너무 커서 연령에 따른 일률적 조치를 권하기 어렵다. 성장 과정과 상황을 보면서 조율할 수밖에 없다. 제한은 두되 어느 정도 성장한 자녀와는 타협과 의견 교환도 필요하다.”

제도로 차단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프랑스와 미국 일부 주는 아동·청소년의 SNS 가입을 막는다. 허용 시기는 14~16세쯤으로, SNS를 금지했을 때와 허용했을 때의 연령별 득실을 견주어 설정한 기준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소아정신과 의사들 가운데에는 ‘아동 SNS 금지법’에 유보적인 이들이 적지 않았다. 〈중독되는 아이들〉 공저자들 역시 비슷하면서 다른 견해를 보였다. 이태엽 교수는 “예민한 문제고 아이들이 싫어하겠지만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 개입, 법이 아니라도 사회적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고 본다. 기술 기업은 절대 먼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성열 원장은 “무조건적으로 ‘몇 세 이하는 안 된다’라는 방식의 규제에는 반대한다. 과학적 근거가 있고 교과서적으로 옳은 방향일 수는 있지만 인간의 자율권, 부모의 양육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집안마다 벌어지는 다툼의 근원은 무엇보다 무지에서 비롯된다. 부모 개개인뿐 아니라 현대인 모두가 스마트폰의 본질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은 불과 30년 전의 일이고, 스마트폰의 역사는 15년에 지나지 않는다. 담배의 해악을 명확히 규명하는 데까지 500년이 걸렸다. 스마트기기가 해로울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그 위험성이 마약과 그네 놀이 중 어느 쪽에 얼마나 더 가까운지는 전문가들마저 확답하기 어렵다.

조너선 하이트는 〈불안 세대〉 서문에 디지털 미디어 접촉이라는 ‘모르는 위협’을 “아이를 화성에 이민 보내는 일”에 빗댔다. 부모는 아이보다 위험성을 더 빨리 파악하고, 알지 못하는 위협이 더 심각할 수도 있다고 짐작한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의 아이들은 날마다 부모를 붙잡고 미지의 땅으로 떠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애원과 드잡이, 감시와 거짓말이 반복되는 끝에 부모는 아이의 ‘화성행’을 허락하게 된다. 그렇게 전 세계의 가정은, 모두 같은 이유로 어느 정도씩 불행해지고 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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