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훈장 3개 받은 호국영웅 묘역 66년 만에 아들이 참배”…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결실

정충신 선임기자 2025. 6. 10. 08:5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6·25전쟁 기간 혁혁한 전공으로 무공훈장을 3개나 받은 호국영웅이 전사 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사실도 빛나는 공적도 모르고 지내다가 6·25무공찾아주기조사단의 노력에 의해 66년 만에 선친의 묘역과 무공훈장을 찾게 된 아들의 사연이 심금을 울리고 있다.

육군인사사령부(인사사)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은 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전쟁에 참전한 고(故) 김진수 대위의 금성화랑무공훈장을 유가족에게 전도 수여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6·25무공훈장아주기조사단, 故 김진수 대위 금성화랑무공훈장 9일 전수
육군, 인사명령·거주표 등 분석 신원 확인…아들, 순직 사실만 알고 묘 위치 몰라
김영철씨 뒤늦게 선친 전공 알고 회한의 눈물
육군인사사령부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이 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한 고(故) 김진수 대위 무공훈장 전도수여식 중 김영철(맨 오른쪽) 씨를 비롯한 유가족이 66년 만에 고인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그 옆으로 주인을 되찾은 금성화랑무공훈장과 훈장증이 보인다. 국방일보 제공

6·25전쟁 기간 혁혁한 전공으로 무공훈장을 3개나 받은 호국영웅이 전사 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사실도 빛나는 공적도 모르고 지내다가 6·25무공찾아주기조사단의 노력에 의해 66년 만에 선친의 묘역과 무공훈장을 찾게 된 아들의 사연이 심금을 울리고 있다.

육군인사사령부(인사사)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은 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전쟁에 참전한 고(故) 김진수 대위의 금성화랑무공훈장을 유가족에게 전도 수여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6·25전쟁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의 결실로 마련된 행사에는 고인의 아들인 김영철 씨를 비롯한 유가족과 황인수(준장) 인사사 인사행정처장, 이철성(대령) 조사단장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황 처장은 이날 66년 만에 아버지와 마주한 김씨에게 무공훈장을 전달하며 고인의 숭고한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김영철 씨는 선친이 군 복무 중 돌아가셨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묘소 위치조차 모르고 지냈다. 66년 만에 아버지 묘역의 존재와 빛나는 전공을 알게 된 김 씨는 이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1949년 7월 20일 입대한 고인은 6·25 발발 직후 국군 6사단 사령부 본부중대에서 병으로 복무 중 전투 공적을 인정받아 훈장 수여 대상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긴박한 전장 상황 때문에 무공훈장을 받지 못했다. 이후 1951년 2월 17일 장교로 임관한 고인은 국군 7사단 8연대 소대장으로 여러 전투에 참전, 2개의 화랑무공훈장을 추가로 받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호국영웅의 기억은 대(代)를 잇지 못하고 사라졌다. 1958년생인 김씨는 자신이 갓난아기였던 1959년 아버지가 군 복무 중 순직했다는 사실만 알 뿐 아버지 없이 성장했다. 뒤늦게 아버지의 행방을 찾았지만, 부친의 공적은 물론 정확한 안장 위치도 알지 못한 채 수십 년이 흘렀다.

김씨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되찾아준 건 조사단이었다.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고인의 자료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단은 병사에서 장교로 신분을 전환한 고인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인사 명령, 빛바랜 거주표, 보훈부 등록사항 등을 자세히 분석했다. 그 결과 병사와 장교, 2명의 ‘김진수’가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김씨는 처음에 조사단 측 연락을 보이스피싱으로 여겨 무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실까지 찾아와준 조사단원들의 정성 덕분에 아버지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 계시다는 것과 3개의 무공훈장을 받은 영웅이란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김씨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군인으로서 국립묘지에 계시다는 것을 66년 만에 알게 돼 기쁘면서도 눈물이 난다”며 “아버지의 존재를 되찾아준 조사단 측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2019년 조사단 출범 이후 원래 주인에게 전달된 무공훈장은 3만4000여 개에 달한다. 황 처장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무공훈장을 전해 드리게 돼 죄송하면서도 영광스럽다”며 “많은 난관이 있지만, 한 분의 공로자도 빠짐없이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충신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