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어요] “도전정신 있으면 농촌에서도 할 일 많아요” | 디지털농업
이 기사는 성공 농업을 일구는 농업경영 전문지 월간 ‘디지털농업’6월호 기사입니다.
“하는 일이 다양해서 우스갯소리로 인력 사무소장이라 부르라고 말하곤 해요. 요즘 말로 ‘로컬 크리에이터’쯤 되지 않을까요? 지역의 자원과 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사실 2019년 처음 영천에 왔을 때와 지금은 하는 일이 많이 달라졌어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일을 계속하게 됐거든요.”

정 대표의 본래 직업은 디자이너였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많이 쓰이는 자막과 특수 효과, 실제 인물과 그래픽의 합성 등 모션그래픽을 주로 다루는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것. 도시 생활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직업군에 속했던 그녀가 어쩌다 영천까지 내려와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지 그간의 일이 궁금해졌다.
“처음 계획은 어릴 때 꿈꿨던 문구 디자인을 하며 굿즈(기념 상품)를 제작해 사업화하는 것이었어요. 여기에 이전에 하던 모션그래픽 일을 병행하면 얼추 회사 운영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죠. 특히 문구와 굿즈 디자인에 영천의 스토리를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관련 설화를 모티브로 ‘영천 프렌즈’라는 캐릭터도 만들었습니다. 댕견·수달·삽살개·뱁새·호랑이 캐릭터를 개발해 문구와 굿즈를 제작했어요.”

이 밖에도 정 대표는 영천의 특산물인 복숭아와 포도, 별 보기 좋은 영천 밤하늘 등 지역 자원을 소재로 다양한 캐릭터를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굿즈와 문구를 선보였다.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1년 정도 지나자 반응이 왔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수작업 제품을 판매하는 아이디어스 등에서 그가 만든 상품이 인기를 끌며 팔렸고, 지역 업체에서도 디자인 의뢰가 들어왔다.
“의도치 않았는데 어느새 영천 홍보대사가 돼 있더라고요. 뜻밖의 수확은 예쁜 농산물 패키지를 원하는 농가가 많다는 점이었어요. 요즘은 온라인 직거래로 농산물 판매를 많이 하기 때문에 농가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담은 로고·패키지는 물론 브로슈어까지 제작하고 있어요.”
“농가를 대상으로 한 디자인은 복합적인 능력을 요구해요.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에서부터 판매까지 농가의 눈높이에 맞춰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서 충족시켜야 하거든요. 저 역시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 농가만의 정체성, 즉 ‘친환경’ 혹은 ‘가족농’ 등 특성을 파악해 로고나 디자인에 반영하고 있어요. 또 손상 없이 농산물을 택배 배송할 수 있는 기능성 패키지도 개발했고요.”
그 결과 입소문이 퍼져 영천은 물론 인근 지역에서도 패키지 디자인 의뢰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그는 특유의 도전 정신을 발휘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쇼핑몰 등 웹디자인까지 영역을 넓혔다.

2021년엔 지역의 또래 청년들과 함께 ‘영천 청년네트워크 두레반’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또래 친구들이 없는 것에 갈증을 느끼는 청년들이 만남을 통해 연대하기 위해 시동을 건 것이다. 이후 두레반 멤버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문화우리-영천 노포 기록 프로젝트’와 ‘경북 청년 공동체 활성화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에 사는 청년 친구들과 지역의 문화를 기록하고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일을 함께 추진했다.
이 밖에도 그는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판로가 막혀 전전긍긍하던 청년 창업가들을 모아 ‘청년고리 로컬마켓’을 열었다. 45세 이하 로컬 크리에이터를 모아 동사무소 마당 등을 돌며 장터를 마련해 직접 재배한 농산물·가공식품·공예품 등을 판매한 것.
“등록된 창업가가 150팀이 넘어요. 해마다 영천시 지원으로 30~40팀이 창업을 하고, 많은 수가 폐업을 하기도 해요. 생존한 창업가들이 모여 함께 장터를 열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거죠. 다행히 지역 주민들과 어르신들의 호응이 좋아 지속적으로 행사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최근엔 경북 지역의 청년 창업자 인터뷰 영상을 제작해 대구 KBS에 납품했어요. 이게 가능한 건 영천을 넘어 경북 지역의 청년 창업가 1200여 명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창업가들의 직업은 농부나 카페 사장, 문화예술인, 촬영기사 등 다양하죠. 작은 플리마켓을 시작으로 점점 큰 지역 행사를 맡아 진행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어요. 또 그들이 스태프로 다시 참여함으로써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고요.”

인맥을 넓힌 것 못지않게 그는 로컬 크리에이터로서도 성장을 거듭해왔다. 농산물 패키지 디자인을 하며 자연스럽게 농산물 마케팅을 배웠듯 크고 작은 행사를 진행하며 기획력과 진행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
“다양한 일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지역 사회라는 특성 때문인 거 같아요. 대도시라면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겠죠. 따라서 로컬은 누군가에게 좋은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로컬 크리에이터들도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도록 저희 회사가 거점 시설이 됐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정 대표는 더 많은 사람이 영천을 찾을 수 있도록 재밌고 할 일 많은 곳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몇 년 후 정 대표가 로컬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꼭 확인해보고 싶다.
글 이소형 | 사진 현진·만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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