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코카서스의 머나먼 평화 [오늘, 세계]

2025. 6. 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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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알쓸신잡' 정보를 각 대륙 전문가들이 전달한다.

이곳에서는 평화에 이르는 길이 왜 이토록 험난할까.

깊은 늪에 빠져 있던 분쟁이 평화적 종결을 향해 나아가다 결국 멈춰 섰다.

올해 3월, 양측이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하며 마침내 역사적인 종지부를 찍는 듯했으나, 양국 모두 내부사정으로 협정 서명을 미루며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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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편집자주
우리가 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알쓸신잡’ 정보를 각 대륙 전문가들이 전달한다.
지난 2023년 9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아르메니아계 난민을 실은 차량들이 아르메니아 국경을 향해 줄지어 서 있다. 아제르바이잔군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재탈환하기 위해 전격적인 군사작전을 벌인 뒤, 지역을 탈출하는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의 행렬은 급속히 대규모 탈출로 번졌다. 나고르노-카라바흐=로이터 연합뉴스

이곳에서는 평화에 이르는 길이 왜 이토록 험난할까. 깊은 늪에 빠져 있던 분쟁이 평화적 종결을 향해 나아가다 결국 멈춰 섰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분쟁이다. 두 나라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두 차례의 전쟁을 포함해 30여 년 넘게 충돌과 대치를 반복하고 있다. 올해 3월, 양측이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하며 마침내 역사적인 종지부를 찍는 듯했으나, 양국 모두 내부사정으로 협정 서명을 미루며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다.

분쟁의 시작은 소련 해체 과정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벌어진 제1차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의 지원을 업은 아르메니아가 승리하며 1994년 휴전했다. 따라서 이 지역 수복이 이후 아제르바이잔 정권의 정통성 및 민족주의적 열망과 연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군사적 열세와 외교적 고립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던 아제르바이잔에 반전의 기회는 예상보다 이르게 찾아왔다. 바로 카스피해 유전 개발이었다. 소련 시절 과잉 생산과 관리 부실로 침체되어 있던 카스피해 유전은 1994년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세기의 계약’을 통해 외국 석유회사의 투자를 유치하며 에너지 산업의 부흥을 이뤄냈다. 아제르바이잔이 2020년 6주간의 제2차 전쟁의 승리와 2023년의 기습 공세를 통해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역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었다.

남코카서스 지역은 역사적으로 터키, 이란, 러시아의 이해가 교차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역내 안정성이 필연적으로 주변 강대국의 움직임에 민감한 구조다. 이번에 무너진 힘의 균형도 강대국의 영향력 변화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2020년 휴전 협정의 보증자였던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남코카서스를 사실상 방관했고, 2023년 아제르바이잔의 군사 공세도 묵인했다.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며, 드론 등 결정적 군사 자산을 지원받아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양측은 3월 평화 협정안에 동의를 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의 헌법 개정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민스크 그룹 해체를 추가로 요구하며 평화협정 서명의 발목이 잡혀있다. 반면 더 굴욕적인 평화는 아르메니아 국내 정치가 수용하기 어렵다. 남코카서스의 지정학적 요소의 중장기적 향방도 미지수다. 힘의 경쟁은 끝났지만 정치적 합의에 도달하는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김인욱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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