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혁의 슬기로운 문학생활] [8] 찬쉐와 천쉐

문지혁 소설가 2025. 6. 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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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얼마 전 전자책 서점을 둘러보다가 찬쉐가 쓴 글쓰기 관련 책이 보여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덜컥 구매 버튼을 눌렀다. 찬쉐라면 ‘중국의 카프카’로 불리는 거장 아닌가. 발표하는 작품마다 찬사를 받으며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솔직히 나는 찬쉐의 작품을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가 쓴 작법서에 먼저 마음이 갔다. 마치 거기엔 거장이 된 그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아서. 마침 오래 비행기를 탈 일도 있어 나는 도토리를 쟁여 놓은 늦가을 다람쥐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그런데 막상 고요한 기내에서 책을 펼쳐보고(실제로는 그냥 화면을 터치했을 뿐이니 이는 일종의 은유다) 몹시 당혹스러워졌다. 책의 저자는 찬쉐가 아니었다. 천쉐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깨닫기 위해 나는 꽤 긴 시간을 들여야 했다. 알고 보니 중국의 찬쉐만 있는 게 아니라 대만의 천쉐라는 작가도 있었다. 당연히 나는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작가였다. 하지만 어쩌랴.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일단 읽기 시작했다. ‘오직 쓰기 위하여’. 적어도 제목은 알고 고른 책이었고, 그 제목이 나를 매혹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읽게 된 그 책에서 나는 많은 감명을 받았다. 전자책이지만 밑줄을 너무 많이 그어 책 전체가 빨갛게 보일 정도였다. 가난과 싸우는 퀴어 작가로서, 그는 밤새 야시장에서 티셔츠를 팔고 원고료를 협상하며 배송 트럭에서 소설을 구상한다. 시장에서 누가 그를 알아보고 ‘혹시 천쉐 작가님 아니에요?’라고 묻자 기를 쓰고 아니라고 대답하는 모습에서는 나 자신의 일부를 보는 것도 같았다.

독서든 인생이든 우리는 실수도 하고 오해도 한다. 하지만 삶이 정답만을 맞히며 나아가는 시험일 수는 없다. 문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어쩌면 정반대의 얘기다. 한번 틀려봐. 그럼 더 근사한 일이 생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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