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로 충분한데… 왜 트럼프는 LA 시위에 군대까지 투입했나

권경성 2025. 6. 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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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의 지사 배제한 주방위군 동원
지역 경찰 충분한데 개입… “권력 남용”
불리 전세 역전 정치적 노림수 있는 듯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집회를 열고 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진압을 위해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2,000명을 LA에 투입하라고 행정부에 명령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민자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자국 서부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LA)에 군대를 투입했다. 논란이 불거질 게 뻔한 상황에서 불사한 강경 대응이다. 시위가 산발적인 데다 규모가 크지 않았고 주지사의 지원 요청도 없었다. 치안은 경찰 몫이다.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방위군 배치 뒤 커진 시위

CNN방송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이민자 체포·추방에 반발하는 시위대 수천 명이 8일(현지시간) LA 시내 중심가 연방 구금센터 주변에서 LA 경찰과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등으로 구성된 당국 요원들과 대치했다. 구금센터는 최근 체포된 이민자 상당수가 수감된 곳이다.

시위는 이날 오전 주방위군 300명이 LA에 도착한 뒤 더 격해졌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야당 민주당 소속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의 시위 대응이 미흡하다고 비난하며 주방위군 2,000명을 LA에 투입해 연방 요원 및 자산을 보호하라고 행정부에 지시했다.

미국 연방정부가 주방위군을 시위 진압에 동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대통령이 주지사 동의 없이 주방위군을 투입한 것은 1965년 민권 시위대를 보호하겠다며 앨라배마주에 군대를 보낸 린든 존슨 대통령 이후 60년 만이다.

군이 나설 만큼 위협적인 시위는 아니었다고 한다. 시위가 촉발된 것은 6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연방수사국(FBI)이 다운타운의 의류 도매시장과 홈디포(주거용품 소매 체인) 매장을 급습해 이민자 44명을 체포·구금하면서였다. 7일에는 ICE 단속 현장과 구금센터, 패러마운트의 히스패닉계 이민자 거주 지역 등 여기저기서 시위대 수백 명이 당국과 충돌했다.


“트럼프 개입 전엔 문제없었다”

예상대로 논란이 빚어졌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 22명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을 “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버니 샌더스(무소속·버몬트) 연방 상원의원은 미국 CNN방송에 “그(트럼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 행정부에 주방위군 철수를 요구했다. 엑스(X) 글에서 “트럼프가 끼어들기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조치는 주 자치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소송전도 예고됐다. 엘레니 쿠날라키스 캘리포니아 부지사는 이날 CNN에 “지역 법 집행기관이 충분히 대응 가능한 시위대 400명의 진압을 위해 주방위군을 소집할 권리가 그(트럼프)에게는 없다. 내일(9일) 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멕시코 국기를 들고 불타는 쓰레기통 옆을 지나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추가 병력을 투입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 글에서 국토안보부·국방부·법무부 장관에게 LA를 이민자 침공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이민자 시위를 끝내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 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가능성을 시사한 해병대 파견 여부에 대해서는 취재진에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면 뭐든 보내겠다”고 했다.

수긍할 만한 행보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과장되고 무의미한 위협”이라고 평가했다. 해병대 투입은 여당 공화당 내에서조차 터무니없다는 반응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머스크 대신 마스크 시위대

논란을 무릅쓰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단 ‘주의 분산’이다. 영국 가디언은 “(부진한 관세 협상 등) 정책 실패와 일론 머스크(테슬라 최고경영자)와의 불화에 대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의도”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증오·분노·공포를 조장할 ‘내부의 적’을 찾았다고 짚었다. 애틀랜틱은 “머스크와의 기이한 관계를 다룬 기사가 차를 불태우는 복면 시위대의 영상으로 대체되는 것보다 트럼프에게 더 기쁜 일은 없다”고 봤다.

지지층 선동을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폭력적인 시위 영상과 더불어 멕시코 등 외국 국기를 흔드는 시위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외세 침략의 증거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정적인 뉴섬 주지사에 대한 공격 차원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인 마이크 존슨 (공화·루이지애나) 하원의장은 이날 미국 ABC방송 인터뷰에서 “뉴섬은 필요한 일을 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진짜 리더십”이라고 옹호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주 대상 연방 자금의 대폭 삭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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