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학교가 드러낸 교육행정의 허상 [왜냐면]


정성호 | 한국정부회계학회장
늘봄학교 사태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극우 민간단체가 공교육에 들어와 프로그램을 운영한 사실이 드러났고, 교육부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단순한 위탁 실수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교육부 비대화, 중앙 중심 설계의 현장 괴리, 교육행정의 책임 구조 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직은 있었으나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고, 정책은 존재했으나 책임은 실종돼 있었다. 늘봄학교는 교육행정의 구조적 허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책은 중앙이 설계하고, 예산은 지방교육청이 집행하며, 책임지는 주체가 없는 구조가 반복된다. 교육부는 지방교육청의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특별교부금의 경우 실제로는 세부 사업 기준과 성과 목표까지 정하고 이를 지침으로 하달한다. 지방교육청은 국비 보조를 받기 위해 중앙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고,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은 학교와 교육청에 전가된다. 리박스쿨 사태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중앙 사업이라 판단할 여지가 없었다”고 해명한 것, 교육부가 “지방교육청 소관”이라며 선을 그은 것 모두 이 왜곡된 구조를 방증한다.
예산 구조도 문제다. 학생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내국세는 증가하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과잉 상태에 가까워졌다. 지방교육청은 예산을 쓰기 위해 집행 가능성 위주로 사업을 짠다, 반복적으로 민간 위탁을 활용한다. 정책이 예산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예산을 쓰기 위해 정책이 만들어지는 역전된 구조다.
여기에 더해, 교사들이 정책 참여를 꺼린 것도 구조적 원인이다. 행정 부담이나 역할 증가에 대한 우려로 늘봄학교 운영을 회피한 결과, 교육청은 사업 추진을 민간 위탁이라는 방식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교사는 없고, 좋은 직장만 있다”는 냉소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책 설계의 책임과 함께, 실행 주체로서의 현장 수용성 문제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
한편, 교육부는 정책을 설계하지만 예산은 지방교육청 몫이라는 구조적 분리가 존재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법정 비율로 자동 배분되기 때문에 교육부는 재정적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지침이나 공모 사업 등 간접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정책과 예산이 따로 놀고, 집행과 책임도 분리되는 이원적 구조가 고착화됐다.
이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내국세 일정 비율을 자동 배분하는 현행 방식은 시대적 한계에 봉착했다. 지방교육청의 기본적인 교육 여건을 보장하되, 성과와 수요를 반영한 차등 배분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방교육재정은 지방자치의 핵심 기반이지만, 그만큼 투명성과 책무성도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재정의 흐름이 통제되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결국 표류하게 된다.
이와 함께 교육부의 조직과 기능은 전면적으로 축소·재편해야 한다. 초·중등교육 정책의 설계와 운영은 지방교육청에 이관하고, 교육부는 고등교육, 법·제도 정비, 국가교육전략 수립에 집중하는 전략 부처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교육부는 늘봄학교 사업을 추진하면서 늘봄복지지원국과 늘봄학교정책과 같은 전담 조직까지 신설했지만, 그로 인해 사전 검증이나 관리를 강화한 것도 아니었다. 국과 과를 만들고 일률적인 지침을 반복적으로 내려보내는 방식은 중앙집권적 구시대 행정의 잔재다. 정책의 유연성과 현장 수용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도 잃게 만든다.
교육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자신이 맡아야 할 기능과 내려놓아야 할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고, 중복된 역할에 대해서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가교육위원회와의 기능 중복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가 차원의 교육 비전과 중장기 전략은 위원회가 담당하고, 정책 집행과 조정은 교육부가 책임지는 식의 명확한 역할 분담과 기능 조정이 절실하다. 조직이 아닌 구조를 바꿔야 한다. 늘봄학교는 그 판단의 기준이 되기에 충분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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