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은 잃어도, 당권은 못 잃어? 국민의힘 ‘집안 싸움’ 속내는

박성의 기자 2025. 6. 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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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비대위 ‘9월 전대’ 주장에 친한·친윤계 갑론을박
친한계 “전대 더 빨리해야” 친윤계 “비대위? 자격 없어”
“자성 대신 당내 해게모니 싸움” “이러니 져” 정치권 비판도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국민의힘이 내홍 위기에 휩싸였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전당대회 개최'를 포함한 당의 쇄신안을 들고 나오자 당내 중진들이 잇따라 반기를 들고 나서면서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김용태 비대위의 존속 기간 및 대안 등을 두고 격론이 오가기 시작했다. 당의 쇄신을 외치는 젊은 지도부와, 이를 견제하는 기성 권력 간 충돌이 지도체제 개편 문제로 이어지면서 사실상 '내전' 국면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모델' 따르나…반성문 사라진 野

통상 대선에서 패한 정당은 자연스럽게 지도부 해체 수순을 밟는다. 동시에 대선 후보는 백의종군을 선언하는 게 정가의 불문율이다. 이 오랜 관례를 깬 건 다름 아닌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그는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 패한 뒤 3개월 만에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인천 계양을 지역에 출마해 배지를 달았고, 같은 해 8월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권을 쥐었다. 그러자 당시 보수뿐 아니라 진보 진영 일각에서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주문 삼아 현실에 안주하려는 유혹"(2022년 3월10일, 한겨레 사설) 등의 비판이 나왔다.

오답으로 불렸던 행보였으나 최근에 와선 묘수였단 시각도 있다. 당에서 멀어지는 대신 당권 강화에 나섰던 이 대통령이 21대 대선에서 정권을 잡는데 성공하면서다. 이 대통령이 지난 대선 후 여의도 입성 대신 유학 등을 택했다면, 그래서 당권을 비명(非이재명)계에게 넘겨주었다면, '대선 후보 이재명'을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이 때문일까, 대선이 끝난 지금 국민의힘에서도 '이재명 모델'이 회자되는 모습이다. 대선에서 패배한 김문수 전 후보가 반성문 대신 출사표를 매만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실제 김 전 후보가 최근 나경원·안철수 의원과 연이어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행보가 차기 전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동시에 당 내부에선 차기 당권을 잡으려는 계파 간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특히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전당대회'를 포함한 당 쇄신안을 제시한 뒤, 당내에선 "벌써부터 차기 지도체제를 놓고 기싸움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확산하고 있다. '윤석열 책임론'을 업고 '빠른 전당대회 개최→당권 쟁탈'을 노리는 친한(親한동훈)계와, '역풍'을 피해 전당대회를 최대한 미루고 싶어하는 친윤(親윤석열)계가 '9월 전대론'에 상반된 인식을 드러내면서다.

이날 국회 본관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국민의힘 4선 이상 중진 회의에 참석한 친한계 좌장 조경태 의원은 '9초 전대' 방안과 관련해 "9월이면 정기국회가 열리지 않나. 8월(말)까지는 새 지도부가 구성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정기국회 이전에 새 지도부를 통해 일신하는, 개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라며 더 빠른 전대 개최에 힘을 실었다.

반면 같은 회의에 참석했던 김도읍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이 재임을) 더 하려면 전국위원회에서 임기 연장을 해줘야 하지 않나"라며 "절차는 본인 맘대로,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전국위의장이 전국위를 안 열어주면 못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비대위원 사퇴를 선언했던 최형두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 "전당대회 일정과 의제 모두 당원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선출된 가운데 경쟁자였던 한동훈 전 대표가 옆에서 축하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당 망쳐" "정권보다 헤게모니인가" 비판도

전당대회 개최 시기 등을 두고 당내 격론이 오가는 가운데, 일각에선 이들이 '보수의 재건'이 아닌 '계파 영향력 유지'에 더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쥐는 쪽이 '포스트 윤석열' 시대 당내 주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음 당 대표가 내년 전국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등 총 243개 자리에 대한 공천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지역의 개발 인허가권 등을 지닌 지방자치단체장은 다음 총선(2028년)을 준비하는 계파의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정치권 중론이다.

국민의힘 전 지도부 관계자는 "전당대회는 정당과 한 후보의 명운이 아닌 그 사람을 지지하는 수 십 명 의원들의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지지자들의 자존심이 걸린 생사결의 장"이라며 "당연히 룰(rule)과 시기, 판을 짜는 사람들에 계파의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당권 투쟁 조짐에 당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문수 전 대표의 당권 도전설' 등에 대해 "이게 소위 말하는 '이재명 모델'이다. 사실 그 모델은 성공할 수 없고, 성공해서도 안 되는 모델이었고, 그게 민주당을 망친 가장 큰 요인"이라며 "많이 비판했던 내용들인데 결과적으로 잘 됐다고 우리도 고스란히 따라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예상보다 선전하면서 '패자의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12·3 비상계엄 논란 등 악재가 겹쳤음에도 불구하고 40%대 득표율을 기록하자, 일종의 '졌잘싸' 착시가 당 내에 퍼졌다는 분석이다. "졌지만 나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쇄신과 책임의식을 무디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패배 원인 분석도, 지도부 재정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당권 경쟁에만 혈안이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지난 4일 방송된 시사저널TV 《시사끝짱》에 출연해 "한동훈 전 대표 등이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지만, 결국 지도부는 그대로 그 안(내란 프레임)으로 들어갔다. 그건 도대체 뭐냐"고 반문한 뒤 "왜 그랬을까. 그 사람들은 애초에 대선에서 진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중요한 건 대선 승리가 아니라 헤게모니(주도권)를 지키는 것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조 보수'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대선 전인 5월19일 시사저널과 만나 대선 후 국민의힘 변화 전망에 대해 "힘들 것이다. 한참 걸릴 것"이라며 "보수가 집결하는 만큼 시민의 보수가 새로 태어나는 것은 방해가 된다. 새로운 보수의 탄생을 막고 있는 것이다. 죽을 땐 명예롭게 깨끗하게 죽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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