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붓질로 시간을 넘어…'불멸을 그리다'

이성현 기자 2025. 6. 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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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브라반트를 닮은 마을에서 시작된 70일간의 열정
초상에서 풍경까지, 감정과 고요의 언어로 남긴 유작의 기록
영원을 향한 마지막 붓질…반 고흐 ⑤오베르 시기(Auvers-sur-Oise Period)

1888년의 아를, 1889년의 생레미를 지나 고흐는 1890년 5월, 파리 북쪽의 시골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한다.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이곳은 번잡한 도시와 결별하고 싶었던 그에게 고향 브라반트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정착한 라부 여관의 다락방, 새로 만난 가셰 박사, 그리고 조용한 들판은 한동안 그를 그림에만 몰두하게 만들었다. 불과 70일간의 체류였지만 그는 80점이 넘는 유화를 남기며 생의 마지막을 불태웠고, 들판을 향해 나선 발걸음은 끝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고흐의 오베르 시기는 가장 짧고 가장 고요했으나, 그 어떤 순간보다 밀도 높았던 유작의 시간이다.

꽃이 핀 밤나무(Blossoming chestnut trees), 63.3 x 49.8㎝, 1890. 5, 고흐가 오베르 도착 3일 만에 그린 첫 풍경화. 흰 꽃이 듬성하게 남은 나무 가지 위로 푸른 하늘이 번지듯 얹히고, 굵은 윤곽선이 나무의 형체를 강하게 고정한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Kroller-Muller Museum) 제공

◇ 브라반트를 닮은 오베르, 고흐의 마지막 안식처

1890년 5월 20일,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한다. 이 지명은 '우아즈강 근처 오베르'라는 뜻으로 조용한 동네였으나, 1886년 샤퐁발역이 개통되면서 파리까지 가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아 주말이면 전원 나들이, 보트 놀이를 즐기기 위해 파리지앵이 몰렸다. 특히 이 곳은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와 피사로, 세잔이 거쳐 갔던 예술가들의 터전이었다. 고흐는 고향 브라반트와 닮은 이 마을의 분위기에서 회복을 기대했고, 피사로가 소개한 가셰 박사의 진료 아래 라부 여관 다락방에 정착했다.

도착한 지 불과 3일 만에 '꽃이 핀 밤나무' 등 네 점의 그림을 완성했고, 70일간 80여 점의 유화를 그려냈다. 오베르의 들판과 농가, 좁은 길과 흐린 하늘은 이전과는 다른 색채를 담기 시작한다. 남프랑스에서 그려졌던 황금빛의 강렬한 색조는 옅어지고, 녹색과 청색 계열의 차분한 색으로 대체됐다. 그는 편지에서 남부의 태양은 내 병을 악화시켰고, 북쪽의 공기가 나를 고쳐줄 것 같았다고 남긴다. 실제로 그는 오베르에서 이전보다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며 더 높은 집중력으로 작업에 몰두했지만, 정신적 균열은 점점 더 깊어졌다.

가셰 박사의 초상(파이프를 든 남자)(Portrait of Dr Gachet ('L'Homme a la pipe'), 32.4 x 25㎝, 1890 6, 고흐가 오베르에서 주치의로 만난 가셰 박사는 단순한 모델 이상의 존재였다. 그를 예술적 동지로 여겼고, 정신적으로도 깊은 연대를 느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Kroller-Muller Museum) 제공

◇ 감정 담은 얼굴, 다시 초상화를 꿈꾸다

고흐는 오베르에 머물며 다시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초상화란 단순히 사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을 그리는 일이며, 자신이 원하는 그림은 백 년 뒤에도 환영처럼 느껴지는 인물, 시대를 초월해 감정을 건네는 얼굴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오베르에서 주치의로 만난 가셰 박사는 단순한 모델 이상의 존재였다. 고흐는 그를 예술적 동지로 여겼고, 정신적으로도 깊은 연대를 느꼈다. 가셰는 파리 의학계에서 퇴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인상파에 깊은 애정을 가진 아마추어 화가이자 판화 애호가였다. 가셰 박사를 모델로 한 초상화는 두 점의 유화와 한 점의 에칭으로 남았다. 뺨을 괴고 책상에 기대앉은 그의 모습은 단순한 인물 묘사를 넘어 인간의 감정을 압축해 그려낸 고흐식 초상화의 전형이었다. 울트라마린 계열의 짙은 옷과 붉은 얼굴빛은 대비를 이루며 감정의 진폭을 강조했고 고흐가 가셰의 내면을 읽고 상징적으로 배치한 장치이기도 했다.

이러한 실험은 라부 여관 주인의 딸 아들린 라부의 초상에서도 계속됐다. 파란 리본을 단 소녀는 파란 배경 앞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지만, 그 눈빛은 현실에 있지 않다. 배경과 옷의 색채는 서로 번지듯 이어지고, 윤곽은 명확하지 않다. 이는 고흐가 의도적으로 추구한 감정의 해체이자,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 실험이었다.

아들린은 훗날 회고록에서 당시엔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느껴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지만 몇몇 방문객은 그 그림을 보며 놀라운 예언성과 미래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고흐는 그 짧은 여름 동안 세 점의 아들린 초상을 남겼고, 이 인물들은 모두 색채와 감정, 그리고 시간에 대한 고흐의 탐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아들린 라부의 초상화(Portrait Of Adeline Ravoux), 72.5 x 73.5㎝, 1890 6, 파란 리본을 단 소녀는 파란 배경 앞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지만, 그 눈빛은 현실에 있지 않다.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 풍경에 남긴 감정의 윤곽

붓이 앞섰던 화가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풍경에 남겼다. 오베르에서 고흐는 직사각형의 수평 캔버스를 도입하며 들판과 농가, 밤나무와 하늘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꽃이 핀 밤나무'는 도착 3일 만에 그린 첫 풍경화였다. 흰 꽃이 듬성하게 남은 나무 가지 위로 푸른 하늘이 번지듯 얹히고, 굵은 윤곽선이 나무의 형체를 강하게 고정한다. 고흐는 같은 장면을 드로잉으로도 남겼고, 두 그루의 줄기가 엇갈려 엮인 듯한 구도는 그가 나무를 단순한 자연이 아닌 감정의 덩어리로 보았음을 보여준다. 단순한 기록이 아닌, 나무가 있는 자리의 공기, 냄새, 흔들림을 함께 담으려는 시도였다.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자주 언급되는 '까마귀 나는 밀밭'도 이 시기 그려졌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작품을 그의 유언처럼 받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사망 직전의 정확한 작업 시점이나 고흐의 의도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한가득 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들판 위, 거친 하늘과 검은 까마귀 떼가 솟구친다. 단선적인 수평 구도에 짙은 청색과 황금빛의 대비, 검은 새들의 움직임은 한순간 정지된 듯한 공포와 불안을 동시에 전한다.

까마귀 나는 밀밭(Korenveld met kraaien), 103 x 50㎝, 한가득 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들판 위, 거친 하늘과 검은 까마귀 떼가 솟구친다. 반 고흐 미술관 소장

◇ "슬픔은 영원히 지속될거야"

1890년 7월 27일 일요일, 고흐는 여느 때처럼 그림 도구를 챙겨 들판으로 향했다. 낮에는 평소처럼 그림을 그렸고, 식사 시간에 맞춰 라부 여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저녁 무렵, 그는 다시 밖으로 나갔고, 그날 밤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여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시골에서 가능한 치료는 제한적이었고, 고흐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이틀 밤을 버텨낸 끝에 7월 29일 새벽 1시 30분,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슬픔은 영원히 지속될 거야"였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에도 슬픔은 예술로 승화됐고, 그의 작품은 더 많은 이에게 빛을 전했다. 동생 테오 역시 형의 죽음 이후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다 반 년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훗날 두 형제는 오베르 언덕 위 나란히 묻히게 된다.

그의 붓은 멈췄지만, 그림은 여전히 살아 있다. 흔들리는 하늘, 휘몰아치는 밀밭, 정면을 응시하던 푸른 눈동자. 그가 남긴 형상들은 지금도 관람객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린다. 짧은 생애, 단 10년간의 창작에도 불구하고 빈센트 반 고흐가 '불멸의 화가'로 남은 이유는 그의 그림이 고통과 열망, 인간 존재의 진실을 담은 가장 강렬한 언어였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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