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근 칼럼] 대한민국은 이어달리기다
정권 교체도 바통처럼 인수인계 중요
5년마다 리셋 말고 이어 달려야 역전극

대선 직전이라 묻히긴 했지만 지난달 31일 체육계에선 큰 경사가 있었다.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남자 400m 이어달리기팀이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것. 1973년부터 2년마다 열린 이 대회에서 우린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날 경북 구미에서 서민준(21) 나마디 조엘진(19) 이재성(24) 이준혁(24) 선수는 한국 신기록(38초49)을 세우며 우승까지 차지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도 떨쳤다.
사실 이어달리기는 많은 국민에게 익숙한 경기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운동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 계주다. 직접 선수로 뛰지 않아도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하게 된다. 드라마는 주자들이 원통형의 막대기인 바통(배턴)을 주고받을 때 속출한다. 1등으로 달리던 팀도 바통을 떨어뜨리거나 뒤엉켜 넘어지는 순간 꼴찌로 추락한다.
이는 이어달리기가 단체전이라는 데에 기인한다. 다른 모든 육상 경기는 개인전이다. 나 혼자 잘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릴레이 경주는 각 선수들의 기량은 물론 구성원 사이의 단합과 호흡까지 완벽하게 맞아야 한다. 선수들도 바통을 주고받는 훈련을 가장 많이 한다. 바통을 줘야 하는 선수는 다음 선수가 속도를 맞출 수 있도록 미리 출발 신호를 줘야 하고, 다음 선수는 정확한 때 손을 뒤로 뻗어 바통을 받아야 한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도 이어달리기다. 국민들은 헌법에 따라 5년간 달릴 선수(대통령)를 뽑는다. 이렇게 정권을 잡은 이는 항상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치지만 사실 대한민국은 그때마다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 게 아니라 전임자가 멈춘 지점에서 이어달리기를 한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의 바통 주고받기는 매끄럽지 못했다. 전임자와 후임자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인수인계가 안 된 경우가 많다. 넘겨야 할 바통을 꼭 움켜쥔 채 장기 독주한 일, 국민들이 뽑은 적도 없는 선수가 바통을 탈취한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국민들은 다시 적법한 선수를 뽑아 이어 달리도록 했다. 그렇게 한강의 기적과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이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느닷없이 역주행을 한 경우다. 앞으로 달려야 할 선수가 궤도를 이탈해 거꾸로 달렸다. 보다 못한 국민들이 그를 퇴장시킨 뒤 회수한 바통을 다시 맡길 새 선수를 뽑은 게 이번 대선이다.
이제 대한민국 이어달리기 선수는 이재명 대통령이다. 그는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한다. 새 출발을 강조한 것이나 이전 정부의 것은 모두 부정하고 싶은 뜻도 엿보인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이어달리기가 돼야 한다. 5년마다 처음부터 리셋만 반복하면 우린 영영 제자리뛰기만 하다 끝날 수 있다. 리셋이 아닌 축적의 지혜가 필요하다. 더구나 전임자의 역주행 탓에 경쟁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진 상태다. 바통을 잡은 순간부터 전력 질주해도 추격이 쉽지 않은 판에 전임자 탓을 하고 단죄에 시간을 허비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400m 계주에서 당초 유력한 우승 후보는 중국이었다. 그러나 중국팀은 바통을 넘겨 주는 구간에서 선수들 호흡이 안 맞으며 버벅대다 실격 처리됐다. 한국 육상 400m 계주팀이 팀워크로 금메달을 딴 것처럼 대한민국도 정권 교체기에 바통을 잘 주고받는 게 중요하다. 전 정부에 몸담았던 이들은 인수인계를 잘해주고, 새 정부도 지난 정부 정책 중 계승할 건 계승할 줄 아는 도량이 필요하다. 나라와 가계의 빚이 과도하지 않게 관리하고, 우리가 강한 반도체와 원자력 등 산업 경쟁력도 이어가야 한다. 인재는 실력만 보고 널리 구해 써야 한다. 바통을 오른손에 쥐었는지, 왼손에 쥐었는지 따져 내편 네편을 가르는 건 어리석다. 그래야 ‘모두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저만치 앞서간 미국 중국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 대한민국 이어달리기의 대역전극을 보여줘야 한다.

박일근 수석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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