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러브리-잠뱅이...제주 지하상가 재도약 ‘꿈틀’

김정호 기자 2025. 6. 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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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공히 제주 쇼핑 1번지 원도심 위기 
공실 활용 ‘숨비마루’ 문화공간 재탄생

광복 이후 제주 근대 상업활동의 시작은 동문시장이었다. 제주항과 가까운 남수각 일원에 자연스레 상설시장이 만들어졌다. 이후 오일시장이 문을 열며 곳곳에 터를 잡았다.

1970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등장하면서 산업화를 통한 공산품이 제주에도 밀려들었다. 1973년 칠성로에는 제주 최초의 대형 매장인 아리랑백화점까지 들어섰다.

사람과 물자가 몰리면서 중앙로와 칠성로(옛 칠성통) 일대는 단번에 지역 최대 상권으로 성장했다. 1980년에는 도내 최초이자 유일한 지하상가 건설 계획까지 등장했다.
1987년 3월 제주시 동문로 방향(동문시장)에 중앙지하상가 2단계  터파기 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 가운데 조일약품(조일약국) 건물이 보인다.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1987년 3월 제주시 동문로에서 관덕로로 이어지는 중앙지하상가 2단계 터파기 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 우측에 조일약국, 좌측에 옛 국민은행(현 다이소) 건물이 보인다.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제주 최초 지하상가의 등장

당시 ㈜미화개발은 중앙로의 상권 개발과 교통혼잡 완화를 내세워 수익형 민자사업(BTO)을 제안했다. 20년간 운영권을 보장받고 이후 제주시에 시설을 기부채납하는 방식이다.

1982년 11월 중앙로 남북방향 88m 구간에서 첫 삽을 떴다. 1년의 공사 끝에 연면적 3815㎡, 192개의 점포가 조성됐다. 당시 공사비로 35억3100만원이 투입됐다.

3년 뒤인 1986년에는 동문시장 방향, 동문로 153m 구간 2단계 공사가 시작됐다. 1990년 3단계 공사가 모두 마무리되면서 연면적 1만87㎡, 382호 규모의 지하상가가 완성됐다.

제주 유일의 지하도와 상가가 등장하면서 내방객들이 밀려들었다. 스톰(STOM=292513)과 닉스(NIX), 잠뱅이 등 엑스(X) 세대의 패션을 책임지는 의류 브랜드가 즐비했다.

제주 최초의 햄버거 전문점인 '러브리'도 1983년 지하상가에 문을 열었다. 롯데리아보다 앞선 시점이었다. 2014년 폐업하면서 현재는 '도니버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제주시 중앙지하상가의 모습. 당시 칠성로와 지하상가는 패션의 1번지로 불릴 만큼 의류전문점이 즐비했다.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2025년 6월 현재 제주시 중앙지하상가의 모습. 원도심 상권 붕괴와 온라인 판매 전환으로 각 점포마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출처-제주시  사진DB] 

#제주 쇼핑 1번지 원도심의 몰락

시대가 변하면서 중앙상가 방문객도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인구 유출로 원도심이 쇠락하고 외곽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서 도민들의 마음에서도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대형 의류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에 이어 모바일 커머스의 등장은 상권 몰락을 가속화 했다. 지하상가는 물론 칠성로와 중앙로 상점가도 직격탄을 맞았다.

매출 감소는 폐점으로 이어졌다. 일부 점포들이 장기 휴업에 나서면서 지하상가의 분위기는 더욱 어두워졌다. 관광객의 발길마저 끊기면서 신규 고객 유치에도 애를 먹었다. 

상인들은 방문객을 유도하기 위해 시설개선에 나섰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고 휴식공간을 확충했다. 곳곳에 공기청정기도 설치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최근에는 의류점에서 벗어나 음식점 유치에도 나섰다. 이는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동시에 제공해 쇼핑객들의 방문을 유도하고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함이다.
9일 오후 4시 제주시 중앙지하상가 8번 출구 공실 점포에서 문화예술 전시공간인 숨비마루 개소식이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9일 오후 4시 제주시 중앙지하상가 8번 출구 공실 점포에서 문화예술 전시공간인 숨비마루 개소식이 열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어둠 속 공실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경기침체는 공실 발생을 야기했다. 빈 점포가 늘면서 지하상가 분위기도 침침해져만 갔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공실을 활용한 문화예술공간 조성이다.

이를 위해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시, 제주중앙지하상가진흥사업협동조합, 제주특별자치도상인연합회, (사)한국미술협회제주도지사회, 제주도립미술관이 힘을 합쳤다.

올해 2월부터 문화공간 조성 회의를 열고 4월부터는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4개의 공실을 하나로 통합해 최근 연면적 36.5㎡ 규모의 '갤러리 숨비마루'를 준공했다.

숨비마루는 예술과 상권이 결합된 새로운 상생모델이다. 행정과 민간, 예술계가 힘을 합쳤다. 공간 확보부터 리모델링, 전시작품 설치까지 채 4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전시공간에는 안진희 작가의 '지키지 못한 침묵'을 비롯해 작품 10점을 선보였다. 향후 제주 최초로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아트 전시도 이뤄질 예정이다.
9일 오후 4시 제주시 중앙지하상가 숨비마루 개소식에 참석한 오영훈 제주도지사(왼쪽)가 전시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목관와와 제주우체국 방향에 위치한 제주중앙지하상가 11번 출구. 해당 구간에는 이동약자를 위해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다. ⓒ제주의소리

#원도심 활성화 새로운 상생 모델

숨비마루 운영에 맞춰 9일 오후 4시 현장에서 개소식도 열렸다. 현장을 찾은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전했다.

오 지사는 "원도심 상권의 공실 문제는 항상 고민이었다. 숨비마루가 방문객을 유도하고 도민과 관광객들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도 제공하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구 의원인 한권 제주도의원(일도1동·이도1동·건입동)은 "원도심 상권 활성화를 위해서는 매력도를 높여야 한다. 숨비마루가 이런 변화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정호 중앙지하상점가조합 이사장은 "공실 증가로 지하상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될까 걱정이었다"며 "숨비마루가 상생과 연린 공간으로 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숨비마루는 중앙지하상가 8번 출입구(소통협력센터 방면) 인근에 위치해 있다. 문화예술 전시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상시 운영된다. 법정공휴일은 휴관이다.